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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판사들의 SNS 발언 어떻게 봐야 하나?

등록 2011-12-02 19:09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기획팀장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기획팀장
최근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한-미 자유무엽협정(FTA)에 비판적인 의견을 담은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대법원은 11월29일 공직자윤리위원회를 열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분별력 있고 신중하게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판사들은 “통제지침”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에스엔에스는 보호받아야 할 사적 영역인지’ 또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대립하는 두 의견을 들어본다.

‘정치중립’ 운운은 입 틀어막기일 뿐

판례 한건 제대로 없는 부분에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니…
판사가 중립의무 위반했다면
FTA 추진했던 관료들은 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된 생각을 페이스북에 밝힌 판사들에 대해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다행히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징계 대상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으나 판사들의 사회적 발언을 제한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정할 계획을 밝혀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우선 이 사건이 벌어진 에스엔에스는 공적인 공간인가, 사적인 공간인가? 사실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을 칼로 두부 자르듯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끼리 고급 술집에서 술을 먹는다면 그곳은 사적인 공간이지만, 유력 정치인 몇몇이 모여 정치적 거래를 주고받았다면 그곳은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반면 대형 건물의 로비나 시내버스는 사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시사적인 문제나 일상에 관해 이야기한 것은 사생활 보호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시내버스나 로비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는 경우에 그 관리에 대한 여러 가지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에스엔에스라는 뉴미디어의 경우 그 구분이 더욱 어렵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각의 서비스마다 성격에 차이가 있다. 일방적으로 구독이 가능한 트위터나 구글플러스에 비해 서로 친구를 맺어야만 구독이 가능한 페이스북은 사적인 성격이 훨씬 강하다.(최근 페이스북에서도 일방적으로 구독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었지만 남들이 어디까지 구독할 수 있는지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사적인 성격이 강하다.) 또한 같은 서비스라고 해도 사람들이 에스엔에스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시대와 사회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우리 사회에서 에스엔에스가 활성화된 것이 불과 1~2년이다. 에스엔에스가 공적인 공간인지 사적인 공간인지 구분하려면 더 많은 사례가 나타나고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결과로 여러 판례들이 정착되면서 비로소 구분의 기준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니 에스엔에스에서의 대화나 표현을 공적인 판단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공론장 중에서도 대표적 공론장의 위상을 가진 신문이 일개 판사가 페이스북에서 한 대화 하나를 보도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하물며 판례 한 건 제대로 없는 영역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는 것은 신중함을 미덕으로 삼는 사법부로서는 너무 성급한 움직임이 아닌가?


한편, 판사가 사회적 사안에 대해 발언을 하면 재판의 공정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판사의 소임을 오해하는 것이다. 판사의 일은 본인의 정치적 견해를 판결에 담는 일이 아니라, 사실과 증거를 살핀 뒤 법률 규정에 부합하는지 어긋나는지를 가리는 일이다. 지금은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빨갱이’라는 매카시즘만으로 판결을 내리고 법률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한-미 에프티에이가 위헌이 아니냐는 헌법재판이라면 모를까, 이명박 정부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한-미 에프티에이에 대한 그들의 견해가 재판에 개입될 이유가 없다.

공직자로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위반된다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에프티에이에 대한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면, 에프티에이를 추진한 모든 행정부 공직자들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것인가? 아니면 에프티에이가 처음에는 정책 과제였으나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이슈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여야의 정쟁 대상이 된 뒤에는 모든 공직자들은 침묵을 지키며 국회의 결론만을 기다렸는가? 이런 식의 정치적 중립이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은 사회적 쟁점에 대해 판사 후보자가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못하도록 한 법관 윤리규정을 위헌으로 판결했다. 여기서 정치적 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로지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를 악용하여 판사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일 뿐이다.

물론 판사라는 공직의 특별한 위치를 생각할 때 조금 더 신중한 처신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처신을 요구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개인의 발언권, 특히 정치적 발언권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있지 않은지를 먼저 신중히 살펴볼 일이다.

박준우 함께하는 시민행동 기획팀장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SNS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다

‘1인 미디어’라고까지 부르는
SNS는 글의 전파력을 전제…
판사에게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된다

대법원이 판사들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과 관련해 ‘신중한 자세를 취해줄 것’을 권고한 것을 두고 찬반 논의가 뜨겁다. 이를 반대하는 분들의 핵심적 논거는 아무리 판사라 할지라도 에스엔에스라는 사적 공간에서 개인적 견해를 밝히는 것까지 규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프라인에서의 물리적 공간은 이른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별이 비교적 용이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구별이 쉽지 않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에스엔에스는 특히 더 그렇다. 비록 개인의 사적 영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게시된 글이 리트위트를 통하여 확산될 때에는 순식간에 실로 엄청나게 전파될 수 있는 것이 에스엔에스 공간이다. 그래서 이를 ‘1인 미디어’라고까지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에스엔에스는 전혀 사적 공간이 아니다. 에스엔에스를 이용하는 자, 특히 글을 게시하는 자는 자신의 글이 전파되기를 적극적으로 바라거나 전파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소셜네트워크’가 아닐 것이며, 자신의 글이 전파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에스엔에스의 속성과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현직 부장판사가 에스엔에스에 자신의 정치적 소회를 밝힌 것은 옳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

십분 양보해서 에스엔에스를 사적 공간으로 인정하더라도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의 행동은 적절치 않다. 범법적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사람 중에 교수나 성직자가 끼어 있으면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이들에게 일반인보다 더욱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판사에게는 매우 높은 수준의 가치중립, 특히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판사는 가치판단이 요구되는 사건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편향적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 부장판사가 에스엔에스에 올린 글은 또 하나의 예기치 못한 문제를 낳을 수도 있다. 그것은 최 부장판사의 이번 글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주장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프티에이를 반대하는 분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의 폐기 및 재협상 논의를 완전히 요원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와도 에프티에이 협상을 할 때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상대국의 사법체계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의구심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상대국의 사법부가 반미 정서를 가지고 자국의 이익만을 강조하여 편향적 판결을 할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든다면 미국은 이 제도를 더욱더 강조할 것이다. 그런데 현직 부장판사가 대놓고 에프티에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올렸으니 미국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사법부의 중립성을 더욱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대한 재협상 문제를 다시 꺼내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극적으로 재협상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미국 쪽이 최 부장판사의 이 글을 문제삼으면서 우리나라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한다면 이에 대한 반론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몇 가지 이유에서 이번 최 부장판사의 일은 우리가 평소 논의하던 ‘표현의 자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직자가 낙태나 난자 제공 등을 합법화하자는 주장을 아무리 사적 공간에서 자연인의 지위에서 한다 한들 허용될 수 없는 것처럼, 교수가 강의실에서 “이것은 교수가 아닌 자연인의 입장에서 사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밝힌다고 해서 그것이 사적 공간에서의 사적 행위로 볼 수 없는 것처럼, 현직 법관이 가치중립적이지 못한 견해를 에스엔에스에 밝히는 것은 결코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법관은 직무 내외를 불문하고 의견 표명을 할 때 자기절제와 균형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법관이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되거나 향후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시킬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라는 대법원 윤리위의 권고에 법관들이 반발하기보다는 법관들 스스로가 직업윤리로 받아들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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