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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국회 최루탄 투척, 어떻게 봐야 하나?

등록 2011-11-25 19:07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학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학
지난 22일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 처리했다. 오랜 시간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던 한-미 에프티에이는 이날 재적의원 295명 중 17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151표로 순식간에 통과됐다. 야당 의원들은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이때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의장석을 향해 최루탄을 투척했다. 매캐한 연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콜록대며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보수단체들은 김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김 의원은 “(최루탄이라는) 지엽적 문제가 아닌 에프티에이의 본질을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미 에프티에이 날치기 과정에서 벌어진 최루탄 투척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까. 두 가지 시선을 소개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투쟁가로서의 과거 경력과
의원으로서의 현재 본분을
혼동한 행위로, 민노당의
대중적 신뢰에 타격 입혔다

2009년 미국 연방의회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회 연설 도중 의원석에서 “당신, 거짓말 마!”라고 소리친 조 윌슨 하원의원에 대한 의회 전체의 비난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 추진으로 민주당과 공화당이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으며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이긴 했어도, 윌슨 의원의 행위에 대한 비판에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다르지 않았다.

“당신, 거짓말 마!”라는 고성 한마디에도 전체 의회의 비난결의안이 채택될 만큼 의회 내 질서 유지에 나름대로 엄격한 규칙을 준수하는 미국 의회이지만, 그 초기의 모습도 이와 같지는 않았다. 연방정부의 역할을 놓고 의회가 분열되었던 1830~40년대의 미국 의회의 폭력 수준은 지금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그 이전부터 의회 내에서 사소한 대립은 목숨을 건 결투로 이어지곤 했다. 건국 초기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이후 부통령이 된) 에런 버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19세기 중후반까지 상당수의 의원들이 의사당 내에서 총을 소지하고 다녔다. 1850년 헨리 푸트 상원의원이 동료 토머스 벤턴 의원을 향해 총격을 가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미국 의사당 내 폭력 사례로 가장 유명한 것은 1856년 프레스턴 브룩스 의원이 동료 의원을 쇠지팡이로 정신을 잃을 때까지 구타한 사례이다. 이때 부상당한 찰스 섬너 의원은 후유증으로 3년간 원내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비방·몸싸움이 없는 신사적’ 미국 의회문화가 자리를 잡는 데는 200년이 넘는 의정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발전 과정을 보면 마치 축지법 쓰듯 200년을 30년에 살아왔다. 그래서 제도의 모습과 틀은 서구의 가장 좋은 것을 따라 갖추어 놓았지만, 200년의 의정 경험과 그 안에 녹아 있는 문화는 단시간에 베끼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국회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해머·드릴이 등장하는 것도 길게 보면 국회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산고로 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며칠 전 국회 본회의장에 최루탄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 최루탄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날치기라는 초유의 일을 벌이고 있던 한나라당을 향해 뿌려졌다. 최루탄을 뿌린 당사자 의원은 농민과 노동자를 아프게 하는 망국적 에프티에이를 절대로 웃으면서 통과시키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고 항변한다. 또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적어도 20분은 그 비준을 지연시키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의원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접어놓고, 그 행위에 공감과 통쾌함을 말하는 목소리도 분명 적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김선동 의원의 최루탄 투척은 투쟁가로서의 자신의 과거 경력과 현재 의원으로서 본분을 혼동한 잘못된 행위임은 분명하다. 또한 그 의도와 효과, 야권 전체에 미치는 결과를 고려할 때 비판을 벗어날 수 없다.


먼저 의도의 측면에서, 과연 무엇을 위한 행동이었는가? 분명 당시에 헌정사상 초유의 통상조약 날치기가 벌어지고 있었다곤 하나, 최루탄의 의장석 투척을 통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하던 여당 지도부의 행위에 ‘날치기하는 여당이나, 최루탄을 뿌려대는 야당이나’라는 식의 양비론이 등장할 여지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결과의 측면에서 김선동 의원의 행위는 본인이 속한 민주노동당은 물론 야권 전체에 상당한 상처를 남겼다. 그간 투쟁의 이미지는 상당 부분 불식하고 대중정당으로서 그리고 향후 수권이 가능한 정당으로서 인식을 넓혀오던 민주노동당은 대중적 신뢰에 일정 부분 타격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판은 한나라당의 에프티에이 날치기와 같은 무게로 놓고 비난하는 양비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분명 한-미 에프티에이의 독소조항은 그대로 남아 있고, 농민과 중소상인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것임은 누구도 부인치 않는다. 무엇보다 2012년 4월 총선 후까지 그 비준을 미루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미국 의회의 비준 때문에 자유무역협정 체결 후 수년을 일방적으로 기다렸으며, 미국 의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원치 않는 재협상까지 했는데 말이다.

김준석 동국대 교수·정치학


‘눈물’을 위한 퍼포먼스였을 뿐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다수당의 폭거는 놔두고
소수당 의원의 퍼포먼스만
쟁점 삼는 건 뻔한 꼼수다

“너희도 한번 울어봐라.” 그게 전부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서민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를 테니 최루가루 때문이라도 울어보라는 의미였단다. 시민들 고통에 마음 아파 울 까닭이 없으니 억지로라도 울게 하고 싶었단다. ‘날치기 저지’도 아니고, 최루가루를 뿌린 까닭치고는 단순했다. 울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을 굳이 울게 만들 까닭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딱 한 번 눈물 흘려봤자, 언제나처럼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갈 게 뻔하다. 그래서 좀 아쉽다.

그러니 테러라는 비난은 터무니없다. 전형적인 흑색선전이다. 테러 운운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에 대한 비난과 저항을 모면하려는 뻔한 꼼수다.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반쯤의 최루가루는 단상의 국회부의장에게 뿌리고, 나머지는 자신이 뒤집어썼다. 그러면 자해 테러? 테러의 핵심은 공포지만, 최루가루는 눈물에서 멈췄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게 테러인지 아닌지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최루가루를 뿌린 직후, 의사당에 앉아 있던 160명쯤 되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몸을 피하는 사람도 없었다. 코앞에서 테러가 발생했는데 앉아서 구경만 하다니! 김 의원을 비난하는 고함이 몇 번 터져 나왔을 뿐이다. 본회의장에 들어와 있던 국회 경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가만있다가, 김 의원이 최루가루로 범벅이 된 저고리를 단상에 털어대자, 그제야 몇 명이 나서 김 의원을 제지한 게 전부였다. 테러는 무슨.

꼭 그런 방법밖에 없었을까.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 때 김두한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똥물’을 퍼부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좀 더 많은 최루탄을 준비해 의사당 곳곳에 뿌려 날치기를 막는 건 어땠을까. 그렇지만 이런 것들은 밖에 있는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에 불과하다. 당시 상황은 예상보다 좀 더 엄혹했다. 경찰은 기자·보좌진은 물론 국회의원의 출입마저 막았다. 허를 찔린 야당은 우왕좌왕했다. 총체적으로 무기력했다. 긴박하나 무기력한 상황. 겨우 30명 남짓한 야당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삿대질과 고함이 전부였다. 최루가루는 그 와중에 벌어진 ‘눈물’을 위한 퍼포먼스였다. 그래서 최루가루 논란은 본질에서 한참을 비껴나 있다. 만약 날치기를 막을 만큼 강력한 무언가가 터졌다면 다르겠지만, 냄새와 눈물이 전부였던 단 한통의 최루가루로는 어차피 역부족이었다.

핵심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다. 홍준표, 황우여, 정의화 등 한나라당 의원들의 날치기 처리가 핵심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얻고 싶은 걸 얻었겠지만, 99%의 시민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가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 그저 경제영토가 넓어진다는 식의 일방적인 선전뿐이었다. 많은 토론이 있었다지만, 찬반 입장은 팽팽했다. 접점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익을 본다는 장밋빛 전망도 있었지만, 피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구체적이었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이혼조차 할 수 없는 결혼’이란 말처럼 협정이 발효되면 한국 경제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이 심대한 영향을 거의 항구적으로 받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 역할은 예상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검토하고 정부에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게 3권 분립의 원칙이다.

절대다수당 한나라당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명분을 쌓기 위한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4년 반을 끌었다지만, 시간을 지체시킨 것은 한국의 소수정당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자기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한 미국의 재협상 요구 때문에 지체되었다. 미국 의회가 비준동의안을 처리한 것은 지난달 12일의 일이었다. 미국이 기다렸다면 그 시간은 고작 달포 남짓이었다. ‘끝장토론’이니 뭐니 말만 요란했지, 국회는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역할에만 충실했다. 대통령이 국회에 다녀갔고, 딱 일주일 뒤 날치기가 감행되었다. 요식절차는 끝났고 결국은 힘을 앞세운 다수당의 횡포만 남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 날치기로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한 다수당의 폭거는 놔두고 소수당 의원의 퍼포먼스만 쟁점이 되고 있다. 정작 핵심은 가루처럼 흩어져 버렸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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