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배 시사평론가
정치의 계절, 바람이 분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안철수 등 시민단체·학계의 저명 인사들이 연대해 ‘열풍’을 일으키자, 선거에 진 한나라당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김난도 서울대 교수, 연예계를 잠정 은퇴한 국민엠시 강호동 등을 영입하겠다고 나섰다. 선거 때만 되면 대중의 인기, 즉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누구든 영입하겠다는 정당의 태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정당정치가 무너져가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대중의 욕망과 이를 이용해 정치를 ‘예능’으로 만들어가는 인기영합주의의 단면을 짚어봤다.
스타 마케팅의 말로
민심과 소통하는 게 아니라
민심을 현혹하겠다는 것…
알몸을 내보이는 게 아니라
양복 빌려 치장하겠다는 것 미국의 레이건도 배우였고, 필리핀의 에스트라다도 배우였다. 그랬던 그들이 자기 나라의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이런 판에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유명인이라고 해서 선거에 나서선 안 되는 이유는 전혀 없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결격사유가 없는 한국인이라면 25살부터(대통령은 40살부터) 피선거권을 갖는다. 지방선거에 나서도, 총선에 나서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피선거권은 국민이 응당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정치적 도전을 막는 건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출마 여부는 그들의 자유의지에 해당하는 문제다. 하지만 결이 달라진다. 논점을 ‘유명인의 자발적 출마’에 놓는 게 아니라 ‘유명인 영입’에 놓으면, 다시 말해 ‘유명인’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놓으면 문제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러면 ‘자유의지’가 아니라 ‘정치공학’이 주되게 부각된다. 정당의 선거전략 말이다. 누가 봐도 뻔하다. 정당이 유명인을 영입해 총선에 내보내려 하는 데에는 두 가지 포석이 깔려 있다. 하나는 후보의 유명세를 앞세워 한 석이라도 더 건지겠다는 계산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인의 이미지를 앞세워 정당 이미지를 가려보겠다는 전략이다.
유명세와 이미지, 이 두 단어를 열쇳말 삼으면 정당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 선거를 인기투표로 몰아가겠다는 것이고, 정책 대결을 이미지로 희석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심과 소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심을 현혹하겠다는 것이다. 알몸을 내보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탁소에서 좋은 양복 빌려 치장하겠다는 것이다. 선거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전의 의정활동을 평가받고 이후의 의정활동 방향을 확인받는 자리가 선거다. 특히 총선은 그렇다. 그래서 치장해서는 안 되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 책임질 건 책임지고 경청할 건 경청해야 한다. 세상사 이치는 같다. 주인공을 비(B)급 배우에서 에이(A)급 배우로 갈아치운다고 해서 죽 쑤던 드라마가 순식간에 뜨지는 않는다. 대본이 형편없으면 국내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배우를 데려다 놓는다 해도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정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스타 마케팅이 아니라 콘텐츠 개발이다. 대의제의 원리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민심과의 소통공간을 열고, 소통의 결과물을 정책으로 다듬을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민생의 실태를 직시하고 민초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을 천거해야 한다. 공천이 곧 대의의 한 양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레이건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에스트라다가 필리핀의 대통령이 된 건 그들의 유명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당인, 또는 기초단체장으로서 정치 이력과 경륜을 쌓았다. 이들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민의 대의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기르는 데 족히 20년 넘는 세월을 투자했다는 점만은 놓쳐선 안 된다. 대의자로서의 경륜을 쌓고 대의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유명인을 공천하는 거야 탓할 일이 아니지만, 단지 유명세만 갖고 있다 하여 영입하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강호에 무림고수는 많다. 낮은 데서 민초의 삶을 어루만지는 사람들, 어떻게든 민권을 조금이라도 신장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빛나지 않지만, 소리도 크지 않지만 소금 같은 사람은,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 대의자의 역할을 맡기면 정치가 발전하고 정당이 산다. 감동만큼 큰 흥행거리는 없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 또한 감동이다. 그런데도 유명인을 앞세워 임시변통만 하게 되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꼴만 연출한다. 헤아려 보라. 정당이 앞장서 선거를 인기투표로 몰고 가면 어떤 화가 미칠지를. 콘텐츠를 개발할 생각은 안 하고 스타 마케팅으로만 일관하면 어떤 결과를 빚을지를. 정당이 죽고 정치인이 죽는다. 면모를 일신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리면 인기가 바닥을 칠 것이 뻔한 일인데, 스스로 인기투표판까지 만들어놓으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정치를 예능으로 만드는 건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기괴망측한 언행만으로도 족하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정당정치 혁신 기회 삼아야
선거마다 나오는 합종연횡의
선거연대로 전락해선 안 된다
진정한 개혁세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 선진화에 기여해야 한국 정치 민주화 사반세기 역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태의연한 작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정계개편 행태이다. 선거를 앞둔 정계개편은 어떠한 명분으로 행해지든 정치권력의 장악과 연계되어 있으며, 결국 그동안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특정 개인이나 정치집단의 사적인 정치이익 추구와 직결되어 있다. 즉, 선거를 통해서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할 민주주의의 핵심적 절차를 흐려놓는 행위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유명인 정당 영입 바람도 선거 승리만을 위한 당리당략과 사적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지 민주주의 심화나 정치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정치사를 훑어보면 이른바 유명인이라는 사람들이 특히 선거 때 영입되어 성공한 사례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공한 유명인들이 정계에 편입되어서는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지기 일쑤였다. 물론 이번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의 도전은 기존의 한국 정치질서를 휩쓸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다. 더욱이 폴리페서, 소셜테이너 등의 인기는 기존의 정치인들을 월등히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과 유명인에 대해 특정한 기준 없이 평면적으로 신뢰도를 조사하는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들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철수 현상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은 한국의 제도권 정치, 특히 기존의 정당정치에 해일과도 같은 충격을 주고 있다. 야당은 야권통합신당을 통해, 여당은 정당혁신을 통해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고, 중도신당·제3신당 등의 출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향하는 정국은 그야말로 혼돈과 혼미의 불예측성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내년 선거가 사활을 건 정치투쟁과 괴담 및 네거티브 캠페인 등의 혼탁선거가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유명인들이 이런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는 기성 정치인 상당수를 물갈이하게 될 것이므로 기회를 얻는 유명인이 다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권을 개혁할 추동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회에서 쌓아온 신뢰와 헌신 그리고 진정성 등이 정치사회에 배태되어 있는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갈등적 찬반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명인들의 정당 영입으로 정치적 흥행은 어느 정도 누릴 수 있겠으나 오늘날 한국 정치가 처한 정치개혁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할 것이다. 정치개혁의 첫째 과제는 정치 리더십의 혁신이다. 진보와 보수정권의 좌우 진동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분열돼왔다. 제각기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그들만을 위한 편협한 정치를 자행해왔다. 선거 때마다 무당파가 40~50%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정치인들은 이념적 요소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념을 도구화하여 극한적 권력투쟁을 일삼고 다수 국민들은 이에 피로감을 보여왔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념적 경쟁에 의한 국민통합과 관용적 리더십이 절실한 때이다. 둘째 과제는 정당정치의 제도적 개혁이다. 정당이란 사회의 균열구조를 적절히 반영하여 다양한 사회요구를 수렴하고 조정하여 정치에 반영해야 한다. 지역 균열구조와 인물 중심의 한국 정당들은 국민의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당리당략과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해왔다. 이제라도 정당들은 과도하게 중앙집권화된 정당 구조를 개혁하여 일반 당원들과 여러 사회집단의 정치이익을 집합적으로 반영하는 정치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상과 같은 과제는 유명인 몇 명의 정당 영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정치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당정치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치에 참여하는 유명인과 신당 및 기존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합종연횡의 선거연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개혁세력으로 등장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선진화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정치학
민심을 현혹하겠다는 것…
알몸을 내보이는 게 아니라
양복 빌려 치장하겠다는 것 미국의 레이건도 배우였고, 필리핀의 에스트라다도 배우였다. 그랬던 그들이 자기 나라의 대통령에까지 올랐다. 이런 판에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유명인이라고 해서 선거에 나서선 안 되는 이유는 전혀 없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결격사유가 없는 한국인이라면 25살부터(대통령은 40살부터) 피선거권을 갖는다. 지방선거에 나서도, 총선에 나서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피선거권은 국민이 응당 누려야 하는 권리이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정치적 도전을 막는 건 명백한 헌법 위반이다. 출마 여부는 그들의 자유의지에 해당하는 문제다. 하지만 결이 달라진다. 논점을 ‘유명인의 자발적 출마’에 놓는 게 아니라 ‘유명인 영입’에 놓으면, 다시 말해 ‘유명인’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놓으면 문제의 성격이 달라진다. 이러면 ‘자유의지’가 아니라 ‘정치공학’이 주되게 부각된다. 정당의 선거전략 말이다. 누가 봐도 뻔하다. 정당이 유명인을 영입해 총선에 내보내려 하는 데에는 두 가지 포석이 깔려 있다. 하나는 후보의 유명세를 앞세워 한 석이라도 더 건지겠다는 계산이고, 다른 하나는 유명인의 이미지를 앞세워 정당 이미지를 가려보겠다는 전략이다.
유명세와 이미지, 이 두 단어를 열쇳말 삼으면 정당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 선거를 인기투표로 몰아가겠다는 것이고, 정책 대결을 이미지로 희석시키겠다는 것이다. 민심과 소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민심을 현혹하겠다는 것이다. 알몸을 내보이겠다는 것이 아니라 세탁소에서 좋은 양복 빌려 치장하겠다는 것이다. 선거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이전의 의정활동을 평가받고 이후의 의정활동 방향을 확인받는 자리가 선거다. 특히 총선은 그렇다. 그래서 치장해서는 안 되고, 회피해서도 안 된다. 책임질 건 책임지고 경청할 건 경청해야 한다. 세상사 이치는 같다. 주인공을 비(B)급 배우에서 에이(A)급 배우로 갈아치운다고 해서 죽 쑤던 드라마가 순식간에 뜨지는 않는다. 대본이 형편없으면 국내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배우를 데려다 놓는다 해도 시청자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정당이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스타 마케팅이 아니라 콘텐츠 개발이다. 대의제의 원리를 충실히 수행하도록 민심과의 소통공간을 열고, 소통의 결과물을 정책으로 다듬을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민생의 실태를 직시하고 민초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을 천거해야 한다. 공천이 곧 대의의 한 양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레이건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에스트라다가 필리핀의 대통령이 된 건 그들의 유명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당인, 또는 기초단체장으로서 정치 이력과 경륜을 쌓았다. 이들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 선정을 베풀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국민의 대의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을 기르는 데 족히 20년 넘는 세월을 투자했다는 점만은 놓쳐선 안 된다. 대의자로서의 경륜을 쌓고 대의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유명인을 공천하는 거야 탓할 일이 아니지만, 단지 유명세만 갖고 있다 하여 영입하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강호에 무림고수는 많다. 낮은 데서 민초의 삶을 어루만지는 사람들, 어떻게든 민권을 조금이라도 신장시키려 애쓰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빛나지 않지만, 소리도 크지 않지만 소금 같은 사람은,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 대의자의 역할을 맡기면 정치가 발전하고 정당이 산다. 감동만큼 큰 흥행거리는 없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 또한 감동이다. 그런데도 유명인을 앞세워 임시변통만 하게 되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는 꼴만 연출한다. 헤아려 보라. 정당이 앞장서 선거를 인기투표로 몰고 가면 어떤 화가 미칠지를. 콘텐츠를 개발할 생각은 안 하고 스타 마케팅으로만 일관하면 어떤 결과를 빚을지를. 정당이 죽고 정치인이 죽는다. 면모를 일신할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리면 인기가 바닥을 칠 것이 뻔한 일인데, 스스로 인기투표판까지 만들어놓으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정치를 예능으로 만드는 건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기괴망측한 언행만으로도 족하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정당정치 혁신 기회 삼아야
양승함 연세대 교수·정치학
선거연대로 전락해선 안 된다
진정한 개혁세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 선진화에 기여해야 한국 정치 민주화 사반세기 역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태의연한 작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정계개편 행태이다. 선거를 앞둔 정계개편은 어떠한 명분으로 행해지든 정치권력의 장악과 연계되어 있으며, 결국 그동안의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특정 개인이나 정치집단의 사적인 정치이익 추구와 직결되어 있다. 즉, 선거를 통해서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할 민주주의의 핵심적 절차를 흐려놓는 행위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유명인 정당 영입 바람도 선거 승리만을 위한 당리당략과 사적 욕구 충족을 위한 것이지 민주주의 심화나 정치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 정치사를 훑어보면 이른바 유명인이라는 사람들이 특히 선거 때 영입되어 성공한 사례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성공한 유명인들이 정계에 편입되어서는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라지기 일쑤였다. 물론 이번 ‘안철수 현상’으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의 도전은 기존의 한국 정치질서를 휩쓸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다. 더욱이 폴리페서, 소셜테이너 등의 인기는 기존의 정치인들을 월등히 능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과 유명인에 대해 특정한 기준 없이 평면적으로 신뢰도를 조사하는 언론이나 여론조사기관들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지만, 기성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안철수 현상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은 한국의 제도권 정치, 특히 기존의 정당정치에 해일과도 같은 충격을 주고 있다. 야당은 야권통합신당을 통해, 여당은 정당혁신을 통해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고, 중도신당·제3신당 등의 출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향하는 정국은 그야말로 혼돈과 혼미의 불예측성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다. 내년 선거가 사활을 건 정치투쟁과 괴담 및 네거티브 캠페인 등의 혼탁선거가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유명인들이 이런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내년 총선에서는 기성 정치인 상당수를 물갈이하게 될 것이므로 기회를 얻는 유명인이 다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정치권을 개혁할 추동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사회에서 쌓아온 신뢰와 헌신 그리고 진정성 등이 정치사회에 배태되어 있는 이해관계를 극복하고 갈등적 찬반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명인들의 정당 영입으로 정치적 흥행은 어느 정도 누릴 수 있겠으나 오늘날 한국 정치가 처한 정치개혁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할 것이다. 정치개혁의 첫째 과제는 정치 리더십의 혁신이다. 진보와 보수정권의 좌우 진동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는 분열돼왔다. 제각기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그들만을 위한 편협한 정치를 자행해왔다. 선거 때마다 무당파가 40~50%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정치인들은 이념적 요소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념을 도구화하여 극한적 권력투쟁을 일삼고 다수 국민들은 이에 피로감을 보여왔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념적 경쟁에 의한 국민통합과 관용적 리더십이 절실한 때이다. 둘째 과제는 정당정치의 제도적 개혁이다. 정당이란 사회의 균열구조를 적절히 반영하여 다양한 사회요구를 수렴하고 조정하여 정치에 반영해야 한다. 지역 균열구조와 인물 중심의 한국 정당들은 국민의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당리당략과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해왔다. 이제라도 정당들은 과도하게 중앙집권화된 정당 구조를 개혁하여 일반 당원들과 여러 사회집단의 정치이익을 집합적으로 반영하는 정치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상과 같은 과제는 유명인 몇 명의 정당 영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은 정당정치에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당정치 혁신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치에 참여하는 유명인과 신당 및 기존 정당들은 선거 때마다 일어나는 합종연횡의 선거연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개혁세력으로 등장하여 한국 민주주의의 선진화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승함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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