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
10월의 마지막 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국회에서 대치하는 가운데 흘러갔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상태에서 야당 의원들과 국회 경위들이 몸싸움까지 벌였고 결국 회의는 무산됐다. 여야는 이날 ‘4인 회동’을 열어 비준안 처리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를 두고 막판 절충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안 처리에 대해 “빠를수록 좋다”는 시각과 “시간을 두고 재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모두 들어봤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시간을 갖고 기초체력 보강하고
ISD 등 독소조항도 걸러내야 한다
한-미 FTA는 안 하는 게 상책이고
2~3년 뒤 고려하는 것이 중책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정오표를 야권에서 요구해 왔다. 결국 밀실에서 의원들만 보기로 했단다. 해서 급기야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 85인이 지난 2주간에 걸쳐 2008년 협정문 국문본과 2011년 것을 비교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번역 오류가 총 2600여개다. 그중 503개는 법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들이다. 예컨대 ‘거래’를 ‘무역’으로 번역했다. ‘군복무자’는 ‘병역의무자’로 오역했고, ‘세금’은 ‘이윤’으로 번역했다. 이런 것들이 자칫 법률이 될 뻔했다는 생각에 기가 막히고, 자꾸 이런 기본적인 것을 중언부언하자니 입이 구차하다. 비준동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본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피해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야 합의문을 보면 농업 관련 장문의 대책이 나와 있다. 얼핏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져 보면 이렇다. 이미 시행중인 것들, 예컨대 ‘축사시설 현대화’를 ‘축산시설 현대화 지원’으로 ‘ㄴ’받침을 더해 대책이라 부르고, ‘과수생산시설 현대화’를 ‘과수고품질시설 현대화’로 세 글자 고쳐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나머지도 거의 마찬가지다. 농어업 피해지원 대책 22조원을 말한다. 하지만 그중 21조는 이전부터 해 오던 것들이다. 입을 열면 뻥튀기고, 내놓느니 꼼수다.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고시하려고 하니까,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고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버젓이 대책으로 들어가 있다. 1990년대 유통개방 이후 국내외 유통대자본에 밀려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된 중소자영업자들은 어찌할 건가.
셋째는 독소조항이다. 내기 보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은 유례가 드문 독소조항의 교과서다. 앞으로 우리보다 약한 개발도상국과 협상할 때, 이 협정문대로 하면 아주 제격이다. 그런데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에 응하지 않을 게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독소조항들은 협정문 요소요소 독버섯처럼 숨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마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중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역진방지 메커니즘, 네거티브 리스트 등은 반드시 걸러내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와 사회의 족쇄가 될 뿐이다. 넷째는 경제효과 문제다. 위에 언급한 모든 것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하게 되면 정부 말처럼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7% 증가한다면 한번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런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표준모형으로 그 경제효과를 추정해 보니 국내총생산의 0.08~0.13%에 불과하다. 그것도 10년 이상치를 다 합한 추정치다. 결론은 이렇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늘어날 일자리는 사실상 없고, 외국인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미무역 흑자는 분명히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하면 성장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최대 수혜업종인 자동차를 보더라도 그렇다. 2010년 현재 현대차는 30만대를 수출했고, 30만대를 현지생산해서 팔았다. 이 말은 자동차 관세 철폐로 얻을 실익이 미미하다는 것이고, 그마저 작년 12월 재협상으로 인해 4년 유예되었다. 나아가 그 부스러기 이익도 사실은 재벌의 보너스지 서민들하고는 무관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결국 1%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다. 99%에게 그것은 양극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섯째, 지금 급한 것은 미국이지 우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르는 것은 수출을 배가시켜 미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오바마의 수출드라이브 전략에 자리 깔아 주는 꼴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기 또한 별로 기대할 정도가 못 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질 구매력은 바닥세다. 그래서 못해도 2~3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초체력도 보강하고 피해대책도 제대로 세우고 재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도 걸러내야 한다. 일각에서 경제영토니 시장선점이니 19세기에나 통할 법한 황당한 말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경제영토가 되고, 시장선점 당할 판인데 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안 하는 게 상책이고, 2~3년 뒤 고려하는 것이 중책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
ISD 때문에 폐기된 FTA 있는가?
ISD를 이유로 FTA 거부하는 것은
통상질서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린
정치논리와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막판 최대 쟁점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가 부각되고 있다. 정부 여당과 민주당은 협정 이행 후 미국 쪽과 이 문제를 협의해 국회에 보고하고, 농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보완대책을 강화시키기로 지난 주말 합의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부분이고, 통상국가로서 지켜야 할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포퓰리즘적인 규제 도입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임을 필자는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촛불시위 이후 개정된 위생검역법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고 국제적인 제소를 당할 것임을 경고했지만, 무리한 개정은 결국 캐나다의 세계무역기구 제소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는 캐나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도 우리 국회와 정치권은 입을 닫고 통상당국에 뒤처리를 맡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투자자 보호 범위가 기존 협정보다 넓기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의 독성이 강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투자에 대한 국제규범이 발전되는 단계이므로, 이를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300여개의 자유무역협정 및 2500여개의 투자협정(BIT)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체결한 81개 투자협정과 7개의 자유무역협정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 투자규범을 설정하지 않고 있어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제외됐지만, 우리나라는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중 22개국과 이미 이 제도가 체결되어 있다. 진보 성향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2005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제외했지만, 정권이 바뀌어 현재의 친시장적인 길라드 정부는 이 제도를 자유무역협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은 21세기 국제통상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유무역협정을 추구하고 있고, 여기에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포함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더불어 환태평양동반자협정 타결에 가장 열성적인 국가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알레르기가 심각하다면 협상 타결을 주도해 나갈 수 있겠는가?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가 미국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우려하지만, 중재인 3명 중 2명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각각 1명씩 뽑고, 위원장은 양쪽의 합의로 선정하게 된다. 만약 합의가 안 되면 센터 사무총장이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사례를 보면, 센터가 중재위원장을 선발한 4건의 결과가 2승2패로 나타났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정말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정부의 합리적인 규제권한을 제한하고 심각한 주권침해를 초래한다면 이 때문에 폐기된 협정이 있는가 묻고 싶다. 자유무역협정 반대 진영의 주장대로라면 폐기되는 협정이 매년 수십개 속출했어야 한다. 그리고 워싱턴에 본부를 본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의 편파판정에 대한 국제여론이 비등해야 하고, 센터 폐지 운동도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에서 보듯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정부 역할에 대한 시각 및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크게 보면 진보적 인사들은 반대하고, 시장론자들은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찬반양론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유로 자유무역협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오늘날 통상질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탕에 깔린 정치논리와 결부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위축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이익이 작아졌기 때문에 협정을 비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 상황이 어려워졌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책을 통해 기존 시장을 지키고 새로운 수출활로를 열어야 함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벽돌을 쌓아 집을 짓기보다는 벽돌 던지는 것이 쉽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성장 및 통상 기반을 확고히 하는 벽돌이므로 우리 국회는 가치관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조기에 비준처리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ISD 등 독소조항도 걸러내야 한다
한-미 FTA는 안 하는 게 상책이고
2~3년 뒤 고려하는 것이 중책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번역 정오표를 야권에서 요구해 왔다. 결국 밀실에서 의원들만 보기로 했단다. 해서 급기야 시민들이 나섰다. 시민 85인이 지난 2주간에 걸쳐 2008년 협정문 국문본과 2011년 것을 비교했다.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번역 오류가 총 2600여개다. 그중 503개는 법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들이다. 예컨대 ‘거래’를 ‘무역’으로 번역했다. ‘군복무자’는 ‘병역의무자’로 오역했고, ‘세금’은 ‘이윤’으로 번역했다. 이런 것들이 자칫 법률이 될 뻔했다는 생각에 기가 막히고, 자꾸 이런 기본적인 것을 중언부언하자니 입이 구차하다. 비준동의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본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피해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여야 합의문을 보면 농업 관련 장문의 대책이 나와 있다. 얼핏 보면 대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따져 보면 이렇다. 이미 시행중인 것들, 예컨대 ‘축사시설 현대화’를 ‘축산시설 현대화 지원’으로 ‘ㄴ’받침을 더해 대책이라 부르고, ‘과수생산시설 현대화’를 ‘과수고품질시설 현대화’로 세 글자 고쳐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나머지도 거의 마찬가지다. 농어업 피해지원 대책 22조원을 말한다. 하지만 그중 21조는 이전부터 해 오던 것들이다. 입을 열면 뻥튀기고, 내놓느니 꼼수다.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고시하려고 하니까, 한-미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고 못하게 했다. 그런데도 버젓이 대책으로 들어가 있다. 1990년대 유통개방 이후 국내외 유통대자본에 밀려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된 중소자영업자들은 어찌할 건가.
셋째는 독소조항이다. 내기 보기에 한-미 자유무역협정문은 유례가 드문 독소조항의 교과서다. 앞으로 우리보다 약한 개발도상국과 협상할 때, 이 협정문대로 하면 아주 제격이다. 그런데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에 응하지 않을 게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말한다. 독소조항들은 협정문 요소요소 독버섯처럼 숨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 마성을 드러낼 것이다. 그중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역진방지 메커니즘, 네거티브 리스트 등은 반드시 걸러내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와 사회의 족쇄가 될 뿐이다. 넷째는 경제효과 문제다. 위에 언급한 모든 것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하게 되면 정부 말처럼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7% 증가한다면 한번 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하게 되더라도 그런 효과는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표준모형으로 그 경제효과를 추정해 보니 국내총생산의 0.08~0.13%에 불과하다. 그것도 10년 이상치를 다 합한 추정치다. 결론은 이렇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늘어날 일자리는 사실상 없고, 외국인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대미무역 흑자는 분명히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감소하면 성장에 오히려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최대 수혜업종인 자동차를 보더라도 그렇다. 2010년 현재 현대차는 30만대를 수출했고, 30만대를 현지생산해서 팔았다. 이 말은 자동차 관세 철폐로 얻을 실익이 미미하다는 것이고, 그마저 작년 12월 재협상으로 인해 4년 유예되었다. 나아가 그 부스러기 이익도 사실은 재벌의 보너스지 서민들하고는 무관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결국 1% 그들만의 리그라는 말이다. 99%에게 그것은 양극화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다섯째, 지금 급한 것은 미국이지 우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서두르는 것은 수출을 배가시켜 미국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오바마의 수출드라이브 전략에 자리 깔아 주는 꼴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경기 또한 별로 기대할 정도가 못 된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질 구매력은 바닥세다. 그래서 못해도 2~3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초체력도 보강하고 피해대책도 제대로 세우고 재재협상을 통해 독소조항도 걸러내야 한다. 일각에서 경제영토니 시장선점이니 19세기에나 통할 법한 황당한 말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의 경제영토가 되고, 시장선점 당할 판인데 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안 하는 게 상책이고, 2~3년 뒤 고려하는 것이 중책이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국제관계학
ISD 때문에 폐기된 FTA 있는가?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통상질서에 대한 이해 부족이거나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린
정치논리와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동의 막판 최대 쟁점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가 부각되고 있다. 정부 여당과 민주당은 협정 이행 후 미국 쪽과 이 문제를 협의해 국회에 보고하고, 농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보완대책을 강화시키기로 지난 주말 합의했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되는 기본적인 부분이고, 통상국가로서 지켜야 할 국제규범을 위반하는 포퓰리즘적인 규제 도입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임을 필자는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촛불시위 이후 개정된 위생검역법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고 국제적인 제소를 당할 것임을 경고했지만, 무리한 개정은 결국 캐나다의 세계무역기구 제소로 이어졌고 우리나라는 캐나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고도 우리 국회와 정치권은 입을 닫고 통상당국에 뒤처리를 맡기고 있다. 일각에서는 투자자 보호 범위가 기존 협정보다 넓기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의 독성이 강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투자에 대한 국제규범이 발전되는 단계이므로, 이를 이유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300여개의 자유무역협정 및 2500여개의 투자협정(BIT)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체결한 81개 투자협정과 7개의 자유무역협정이 이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 투자규범을 설정하지 않고 있어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제외됐지만, 우리나라는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중 22개국과 이미 이 제도가 체결되어 있다. 진보 성향의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2005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제외했지만, 정권이 바뀌어 현재의 친시장적인 길라드 정부는 이 제도를 자유무역협정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은 21세기 국제통상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유무역협정을 추구하고 있고, 여기에는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포함된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더불어 환태평양동반자협정 타결에 가장 열성적인 국가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도에 대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알레르기가 심각하다면 협상 타결을 주도해 나갈 수 있겠는가?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ICSID)가 미국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고 우려하지만, 중재인 3명 중 2명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각각 1명씩 뽑고, 위원장은 양쪽의 합의로 선정하게 된다. 만약 합의가 안 되면 센터 사무총장이 선임하도록 되어 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사례를 보면, 센터가 중재위원장을 선발한 4건의 결과가 2승2패로 나타났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정말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도가 정부의 합리적인 규제권한을 제한하고 심각한 주권침해를 초래한다면 이 때문에 폐기된 협정이 있는가 묻고 싶다. 자유무역협정 반대 진영의 주장대로라면 폐기되는 협정이 매년 수십개 속출했어야 한다. 그리고 워싱턴에 본부를 본 국제투자분쟁조정센터의 편파판정에 대한 국제여론이 비등해야 하고, 센터 폐지 운동도 대대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에서 보듯이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는 정부 역할에 대한 시각 및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크게 보면 진보적 인사들은 반대하고, 시장론자들은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찬반양론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제도를 이유로 자유무역협정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오늘날 통상질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상대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바탕에 깔린 정치논리와 결부된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가 위축되어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경제이익이 작아졌기 때문에 협정을 비준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 상황이 어려워졌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정책을 통해 기존 시장을 지키고 새로운 수출활로를 열어야 함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벽돌을 쌓아 집을 짓기보다는 벽돌 던지는 것이 쉽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성장 및 통상 기반을 확고히 하는 벽돌이므로 우리 국회는 가치관을 떠나 대승적 차원에서 조기에 비준처리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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