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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시민단체가 재벌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되나?

등록 2011-10-04 19:28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초빙교수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초빙교수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된 박원순 변호사가 시민단체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할 때 재벌 기업으로부터 기부·후원금을 모은 게 선거 쟁점의 하나로 떠올랐다. ‘재벌을 감시해야 할 시민단체가 재벌의 돈을 받은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비판이 일자, 박원순 후보는 “아름다운재단은 대기업 감시기관이 아니라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설립됐으며, 후원금은 투명하게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과연 시민단체가 재벌의 기부·후원금을 받아도 되는가? 시민단체의 성격이 다양한 만큼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는 건 부당한가? 앞으로 생산적인 논쟁이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대립하는 두 의견을 소개한다.

‘순수성’ 신화로 옥죄지 말아야

시민단체가 개인·재단 기부만으로
운영된다는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시민단체들도
정부와 기업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시민단체가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지금에야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고, 유독 한국에서만 제기되는 문제도 아니다. 과거에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쟁이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도 논쟁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은 시민단체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재정 출처만 다를 뿐 논쟁의 성격상 큰 차이가 없다.

시민단체 혹은 엔지오(NGO)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결성되어 공익을 추구하는 시민사회 결사체이다. 따라서 다원성을 중요한 원리로 삼는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에는 다양한 시민단체가 있다. 기능적 차원에서 크게 주창활동을 하는 단체, 공공서비스를 생산하는 단체, 대안사회를 실험하는 단체 등으로 구별할 수 있다.


시민단체의 재정적 원천 또한 다양하다. 정부는 세금을 걷어서 재정을 충당하고 기업은 재화를 팔아서 재정을 확보하지만, 시민단체의 재정은 회비, 기부금, 정부지원금, 서비스요금, 수익사업 이익금 등 그 원천이 다양하다. 그리고 기부금에도 개인기부금, 재단기부금, 기업기부금 등이 있다. 자율을 중시하는 시민단체가 회비, 나아가 개인·재단기부금으로 운영되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이상에 불과하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나 있는 선진국의 시민단체도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 시민단체의 재정 부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선진국에서나 개발도상국에서나 공통된 현상이다. 시민단체가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화일 뿐이다.

시민단체는 정부로부터 재정을 지원받아 각종 공공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공공성을 실현한다. 마찬가지로 시민단체는 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아 인권옹호, 환경보호, 사회적 약자 지원, 문화부흥, 국제원조 등과 같은 공공성을 실현한다. 이러한 거버넌스는 현대사회에서 사회정의 실현과 복지사회 구현에 매우 중요하다.

기업이 교육기관이나 복지기관에 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마케팅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즉, 순수한 나눔의 차원에서 기부한다기보다 주로 기업의 이윤창출 수단으로서 기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기업 기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일환으로서 시장(기업) 공공성의 실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때 기업의 기부는 시민단체의 비판을 의식해서라기보다는 사회공헌활동의 포트폴리오 전략으로서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윤리구매에 대응한 것이다. 소비자가 기업의 윤리경영이나 사회공헌활동까지 고려하면서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업의 기부는 그 의도와는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다양한 시민단체가 있기 때문에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는 것도 단체의 정당성에서 차이가 있다. 상대적으로 서비스생산 단체보다는 권력감시, 정책제안 등 주창활동을 하는 단체의 정당성이 더욱 문제가 된다. 주창단체도 정부권력, 기업권력, 언론권력, 토호세력, 이익집단 등 견제하는 대상이 다양한데, 기업권력을 감시하는 단체가 기업 기부금을 받으면 정당성이 더욱 훼손될 것이다.

지금 피기부자로 논쟁이 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는 일종의 중개형 시민단체에 속한다. 자금을 모금하여 필요한 곳에 배분하거나, 기부금을 받아 공공정책을 생산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민단체와는 달리 모금이 단체의 주요사업에 속한다. 모금이론에서 ‘20 대 80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전체 기부자의 20%가 전체 모금액의 8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금 전략에서는 큰돈을 주는 기업의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이때 기부자가 대기업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면, 우리는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에 취직한, 사회적으로 유능하다고 하는 청년이 부도덕하다고 낙인찍어야 한다.

시민단체가 기업에 기부를 요청하지 않으면 기업의 기부금은 줄어들거나 시민사회의 다른 기관으로 갈 것이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는 자기 필요성뿐만 아니라, 시민운동의 추진을 위해 기업에 기부를 요청하게 된다. 후산업사회에서 시민운동의 활성화가 삶의 질 향상에 중요하므로 앞으로 시민단체에 대한 기업의 기부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박상필 성공회대 NGO대학원 초빙교수


자선과 로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자선사업 직접 수행 가능한 기업이
제3의 단체에 기부금 주면서까지
비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기부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 대한 검증과 관련하여 시민단체가 받는 후원금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설립 취지를 보자면, 정부기관을 감시할 비정부기관(NGO)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아서는 아니 되고, 영리단체를 감시할 비영리단체(NPO)는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아서는 아니 된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원칙적으론, 각종 기부금은 누구 돈이든 제대로 쓰면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돈은 글자 그대로 돌고 도는 것이라 그 돈을 영원히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기 곤란하고 주머닛돈과 쌈짓돈을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홍길동이 탐관오리로부터 금은보화를 빼앗아 억울한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처럼, 비록 법치주의에 위배된 것이지만 나쁜 사람의 돈으로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누구 돈이냐를 너무 강조하는 것은 패거리 문화의 연장일 때가 많다. 글 내용이나 발언 내용에 관계없이 특정 언론매체에 글을 쓰거나 출연하는 것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이는 줄서기를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언론매체이냐는 것보다 그 내용이 더 중요한 것처럼, 기부금의 출처보다 기부금의 사용 내역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돈을 기부해준 악당에게 고맙다고 인사했지만 실은 그들을 응징하면서 동시에 다른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주장은 옳을까? 그러한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돈을 준 악당도 그 시민단체에 로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남을 도와주기 위한 순수한 동기였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돈 준 악당의 입장에선 겉으로 자선행위를 하고 속으론 로비도 하는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다.

한국 사회의 현실은 기부 행위가 기부 자체로만 끝나지는 않을 때가 많다. 돈을 기부한 사람은 돈을 받은 사람으로부터 일종의 대가를 기대한다. 대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특정 행위를 해주거나 아니면 반대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아주는 것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각종 금품수수 피의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금품을 받았다고 강변하는 것은 매우 황당하다. 남에게 베풀기에 인색한 사람이 돈을 나에게 줄 때에는 나에게 무슨 대가를 바라게 되어 있다.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남 돈을 흥청망청 쓰는 사람은 후안무치하고 뻔뻔한 사람이다. 받았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의리에도 맞고 인지상정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돈을 잘 쓸 수 있는 단체가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아 그들을 대신하여 사회적으로 좋게 잘 쓴다면, 그것은 어떤 사회적 기대에 부응한 올바른 대가를 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돈 준 사람이 할 수 없는 행위를 대신 잘 해줄 수 있으면 그것은 좋은 의미의 대가를 치른 것이다.

그렇지만 기부금을 낸 단체가 그 자선사업을 직접 잘 수행할 수 있다면, 기부금을 준 의도가 순수했다고 보기 힘들다. 자기가 직접 더 잘할 수 있는 좋은 일을 굳이 남을 통해 더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추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사회기여 활동을 주요 업무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있는 기업들이 많다. 돈을 낸 단체들은 자신이 직접 그 돈을 더 멋있고 더 의미 있게 쓸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만일 스스로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돈을 주었다면, 돈 준 단체는 돈 받은 단체로부터 다른 뭔가를 기대하고 돈을 주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기부금의 실제 집행 방향이 기부자의 추구 노선과 다름을 알고 주었다면 그 기부 행위는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모금을 잘하려면 주는 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지갑을 잘 열려고 할까 하는 것뿐 아니라 왜 지갑을 열까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한다. 돈 주는 동기가 순수치 않다면 뒤에 문제되어 그 모금단체의 브랜드 가치도 저하되어 좋을 것이 없다. 지속적인 모금을 위해서는 기부자의 뜻과 일치하면서도 기부자가 실제 잘하지 못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부금 집행 방식을 보유해야 된다. 기부금 집행 방식이 기업 관련 복지재단과 별다르지 않거나 혹은 반대로 상충하는 것이라면, 기업을 감시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기업의 돈을 가려서 받아야 한다.

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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