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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시민후보와 정당정치

등록 2011-09-27 20:49

정상호 서원대 교수 사회교육학
정상호 서원대 교수 사회교육학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변호사로 대표되는 시민후보가 부상하면서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성찰적 논쟁이 일고 있다. 시민후보가 지닌 힘을 긍정하면서도 정당정치를 떠나서는 건전한 민주주의를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 기성 정당들이 정치를 독점한다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는 주장 등이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결을 달리하는 두 학자의 시각을 소개한다.

시민후보를 위한 선거는 없다

친환경 무상급식·주민참여 예산조례
실태를 살펴보았더니 그나마 두 제도
모두를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곳은
정당간 경쟁이 치열한 분점 정부였다

최근 정당과 공직에 거리를 두어왔던 시민후보들의 서울시장 출마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과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야권 지지자들에게는 무소속과 정당 후보 사이의 선례가 없던 이번 경선이 대단히 흥미로운 이벤트일 수 있다. 더욱이 박원순 후보가 지지율과 도덕성, 능력을 겸비한 탁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반한나라당 유권자들에게는 유쾌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시민후보 담론이 선거 정국을 뒤엎고 있는 오늘의 현실은 한국 정당정치의 후진성을 반영하는 것이자 정치 제도화의 차원에서 몇 가지 우려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무소속 시민후보는 책임정치의 구속으로부터 방목되어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훼손하기 쉽다. 시민후보가 당선되는 순간 막강한 권한을 가진 서울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당론과 강령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 선의와 도덕적 결단뿐이다. 공약이라는 유권자와의 명문화된 약속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낭만주의의 소산이다. 정치 참여자이자 소비의 주체로서 시민은 뉴라이트에서 참여연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호와 이익을 지니고 있다. 강남과 강북, 세대와 이념으로 분화된 시민과 무소속 후보와의 모호한 결합은 자칫 정책 혼선과 탈정치 경향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서 시민후보를 자칭하고 나선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체 시민사회의 이익과 열망을 아우를 진정한 시민후보는 애초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또 다른 근거는 일반적 기대와 달리 무소속 시민후보의 성공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학자 블레드소에 따르면 지역 정치인에는 △야심적 정치가 △이타적 자원봉사자 △동네 이장과 같은 지방형 △관료와 같은 정책전문가 등 네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그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점은 도덕적 명분을 중시하는 순수한 시민활동가보다는 오히려 당파성과 전문성을 갖춘 정치가형(politico)이 더 오래 재임하였으며 지역 민주화에도 적극 기여하고 있다는 경험적 결과이다. 그는 그 이유로 재선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정당 정치인들이 지방의회와 지역여론의 소통에 더 민감했으며, 소속 정당을 통해 정책적·조직적 지원을 원활히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을 꼽고 있다.

필자의 연구 결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지난 6월 광역·기초단체 246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친환경 무상급식과 주민참여 예산조례 실태를 살펴보았더니 그나마 두 제도 모두를 활발하게 시행하고 있는 곳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비롯하여 정당간의 경쟁이 치열한 분점 정부였고, 그다음이 대구나 광주처럼 한 정당이 단체장과 의회를 독점하고 있는 단점 정부였으며, 가장 낮은 곳이 무소속 단체장 지역이었다. 정당간의 경쟁은 서울과 경기도에서처럼 잦은 갈등과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책 혁신과 주민 참여의 동기를 활성화하는 원동력이다.

마치 미확인 비행물체(UFO)처럼 선거 직전에 갑작스럽게 출현하였다가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는 ‘바람의 정치’의 진원지는 탁월하고 새로운 영웅에 대한 대중의 기대심리와 더불어 낡은 조직과 문화에 안주해온 경직화된 정당체계에 있다.

우리의 문제 역시 아직까지도 양극화의 심각성을 체감하지도,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무능한 강남좌파 정치에 그 본질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나 애국심을 그 내재적 한계와 세태 변화를 이유로 폐기할 수 없는 것처럼 대의제하에서 정당 또한 그러하다.

개인적으로 박원순 후보의 이번 도전이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것의 방향은 무소속 시민후보라는 탈정당·탈정치의 기치가 아니라 기성 정당의 조직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안으로부터 소생시키는 길이어야 한다. 이 과제는 서울시장직을 얻는 것이나 성공한 시장이 되는 것 이상의 값진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능력과 활력을 갖춘 현대화된 정당을 만드는 일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야세력도, ‘486 정치인’들도 모두 좌절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들에게 더없이 절실하고 가치 있는 실험임에 틀림없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 사회교육학


기성 정당의 자기혁신이 우선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정치사회학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정치사회학
정당을 통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이반을 적극 인식하고
이를 계기로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정당 중심으로 접근해야 하는가 아닌가,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하는 데 있어서 정당 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 혹은 시민후보를 지지해야 하는가라는 쟁점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은 진정한 쟁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근대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진정한 쟁점은 기존 정당이 대중의 새로운 정치적 요구와 이해,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대중의 광범한 불신과 이반이 편만해 있는 현상이다.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은 사실 한국만이 아니라 전지구적 현상이기도 하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파괴적 공습으로 ‘사회 자체의 해체적 위기’가 출현함에도, 국제경쟁력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나아가 ‘기업사회’가 되면서 그나마 정당정치의 역할이 더욱 제약·왜곡되기 때문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근대 시민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한번도 ‘정당을 통한 대의민주주의’와 일체화된 적이 없으며, 정당이 ‘대중 자신의 정치’를 다 대표한 적이 없다. ‘현실의 민주주의’는 언제나 ‘인민의 자기통치’, ‘정치적 평등을 전제로 한 인민의 참여정치’라고 하는 이상과 괴리되면서, 지속적으로 도전과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도전과 불신을 자양분으로 하여 역설적으로 근대 민주주의와 정당은 부단히 혁신되어 왔다. 예컨대 바로 그러한 긴장 때문에 숙의(熟議)민주주의나 직접민주주의적 기제를 확대하여 ‘정당을 통한 대의 과정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자 하는 노력도 진행되었다. 또한 기존 정당과 대중의 괴리 때문에 자신을 혁신하는 정당은 대중적 지지를 받고 그런 속에서 서구의 낮은 수준의 자유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 단계로까지 발전되어 왔다. 더 나아가 정당을 통한 민주주의로 수렴되지 않는 일상의 민주주의, 생활세계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정당 외부’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오히려 정당을 통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이반을 적극적으로 인식하는 사고가 필요하고, 이를 계기로 정당 혁신과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보완해 갈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러한 혁신과제 중 한국 정당질서 혁신에 대해서는 상당히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먼저 중도개혁정당의 혁신을 위하여 민주당, 국민참여당, 도덕성을 갖는 비(非)정당세력·시민사회세력이 연합해서 대중의 신뢰를 재획득하는 방향으로 해체적 재구성을 해내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진보정당의 외부에 있는 노동-친노동 시민사회세력이 연합해서 통합진보정당을 혁신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물론 시민사회단체는 독자성을 가지고 비정당적 사회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흐름이 각축·경쟁하면서 각각 다른 방향에서 보수에게 빼앗긴 대중의 신뢰를 되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총선이나 대선에서 선거연합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어떤 의미에서는 정확히 두 경로 모두에서─여러 요인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감정적 앙금’이 주된 요인이 되어 국민참여당은 민노당과의 통합이라고 하는 ‘번지수가 다른 데’서 출구를 찾았고, 민주당은 아예 혁신의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기호 2번이 꼭 있어야 한다’는 현상유지적인 발상으로 접근하고 있다. 아마도 김대중과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가 있었다면 민주당은 ‘질서있는 수혈’을 통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작업에 바로 착수했을 것이다. 반면에 급진진보정당은 통합정당으로 가는 길목에서 좌초해서 사분오열하는 난국에 처해 있다. 이는 기존의 불신과 이반을 증폭시키고, 이른바 ‘안철수 현상’─물론 이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과 같은 형태로 대중의 정치적 기대와 희망이 부유(浮遊)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당에 대한 불신과 이반을 탓하지 말고, 그러한 불신과 이반을 수렴하기 위한 노력을 선차적으로 진행하려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더구나 야권 경선 이후에는 누가 되든 야권 전체의 후보이기 때문에, 어느 정당 후보냐는 것은 현재의 국면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선거연합도 크게 보면 정당정치의 연장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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