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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논쟁] 강남 3구의 높은 투표율, 어떻게 볼 것인가?

등록 2011-08-26 19:28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지난 24일 치러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강남 3구는 서초 36.2%, 강남 35.4%, 송파 30.6% 등 높은 투표율을 보여, 20%대 초중반에 머문 다른 구들과 확연한 대조를 이뤘다. 이를 두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부유층 유권자들의 ‘계급투표’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강남지역에서 나타나는 이런 투표 성향의 원인과 본질을 짚어보는 두 가지 시각을 소개한다.

계급투표의 굴절과 변형

보수는 정책대결마저 곡해하면서
계급투표의 변형을 가져왔을 뿐…
주민투표의 결과를 계급투표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8월24일 한편의 에피소드가 막을 내렸다. 마치 희극처럼 진행된 주민투표이긴 하지만, 지역구별 투표율을 둘러싼 해석을 두고 말들이 무성하다. 서초, 강남, 송파로 이루어진 강남 3구의 투표율이 비강남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게 핵심이다.

이번 투표율만 놓고 보면 행정적인 편의로 붙여진 공간적 경계가 계급적 행위인 선택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계급투표라는 말이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한 투표자 수와 사퇴를 눈앞에 둔 오세훈 시장이 당선될 때 받은 득표수를 비교하면 사실상 엇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아진 것도 하나의 사실이다. 계급투표라는 말보다 야권에서 말하는 대통합론이 설득력을 가지는 대목이다.


바로 이런 관점의 차이에 따라 주민투표는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연합의 정치싸움이라거나, 무상급식이라는 복지정책을 두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벌인 한판의 기싸움이라는 해석도 동시에 존재한다. 하지만 주민투표의 승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여야 정당 모두가 한목소리로 자신들이라고 외치는 촌극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민의 입장에선 계급투표의 전제조건인 정책대결마저도 제대로 못하는 한국 정치의 부실함만 도드라질 뿐이다.

정당들은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합리성의 잣대로 정책을 선택하여 이를 유권자의 표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을 우리는 민주적인 의제설정과 의사결정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자신들의 가치관과 반하는 정책이 의제로 설정되면 이를 반박하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건 유별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굳이 묻지 않아도 될 일을 다시 물어야 속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경우, 다른 사람들은 스스로의 인내심을 끌어올리거나 혹은 자신의 분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수 이외에 선택할 게 별로 없다. 이런 양상이 주민투표에서 그대로 재연되었다. 주민투표 참여와 거부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조직하는 소수와 속내를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단을 이미 가졌던 다수가 바로 그들이다.

한 해 예산이 약 21조원에 달하는 서울시에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은 1년 동안 약 695억원의 예산이 드는 사업(총예산 대비 0.3%)이다. 서울시보다 재정이 취약한 경남의 1년 예산은 약 5조8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이미 하고 있으며 2014년까지 계획하고 있는 고등학교 무상급식에 필요한 재원은 약 1699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라는 지역에서도 이미 벌이고 있는 사업을 결코 해서는 되지 않을 몹쓸 짓이라고 말하는 건 분명 자기모순이자 자가당착일 뿐이다. 게다가 한강르네상스와 서울의 각 지역에서 앞다투어 벌어지는 재개발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을 고려하면 무상급식 예산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다. 이 새발의 피에 모든 걸 걸다시피 하는 무모함을 두고 합리적이라고 보기는 곤란하다. 오히려 정치적 보수주의가 굴절되는 결과만 볼 수 있다.

보수주의 정치이념이 절대 포기하지 않는 건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다.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민족·지역·가족 공동체의 규범과 전통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하여는 단호할 만큼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도 보수주의자들이 지닌 숭고한 가치 덕분이다. 따라서 서양의 부자들은 세금을 많이 내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곧잘 한다. 적어도 보수주의자라면 부자들의 뒤에 꼬리표처럼 달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커가는 아이들이 먹을 밥값 정도는 얼마든지 내겠다는 가치관은 가져야 한다.

우리의 경우 무상급식 문제를 두곤 국가경제 위기를 넘어서서 ‘거지근성’이라는 인격적 모독에 가까운 폭력적인 언사를 해대던 사람들이 부자감세에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공동체를 앞세우며 대범해야 할 보수주의라는 정치이념마저도 굴절되면서 편협하고 옹졸한 보수주의자라는 비아냥만 나오고 있다. 잘못된 정책의제를 진짜인 양 믿게 하는 착시현상이 접목되면서 굴절된 보수주의는 정책대결마저도 왜소화하고 곡해하면서 계급투표의 변형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주민투표의 결과를 두고 정책 선택을 둘러싼 계급투표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종래 한국노동운동연구소 부소장


강남, 야당이 문제다

신언직 
진보신당 전 
서울시당 위원장
신언직 진보신당 전 서울시당 위원장
강남은 제대로 된 야당이 없어서
소수의 보수적인 부자 유권자들이
손쉽게 지배하는 지역이 됐다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는 점도 생각해야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이었다.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에서 일하던 지인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강남서초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기에 강남지역 여론을 문의하려는 것이었다. 그의 서두는 참으로 간결하고 시사적이었다.

“강남이 문제입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장의 당락을 갈랐던 승부처가 바로 강남 3구였다.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승부수를 띄운 직후라 강남 3구 여론이 결정적일 것이라는 판단 때문에 강남지역 민심을 급히 물어온 것이다.

당시 강남지역에는 역시 동정론이 일고 있었다. 서초 거주 40대 후반 학부모들 중에서는 “우리가 도와주어야 하지 않나”라는 얘기가 나왔고, 또다른 강남 주민의 입에서도 “오세훈 시장을 구하려 꼭 투표하겠다”는 다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론 일부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시장직까지 거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의 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이런 엇갈리는 반응들은 주민투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었을 뿐, 이 지역에서 높은 투표율이 나오리라는 예상에 대해선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2008년 총선 때의 일이다. 나는 진보정당 후보로 강남에 출마해 대치동 유권자들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대치역 인근 중·대형 아파트 벽에 걸려 있던 대형 펼침막은 아직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종부세 폐지, 재건축 추진”이라는 한나라당의 공약이 아파트대표자회의와 부녀회 명의로 동네 곳곳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론에서 종종 언급하는 ‘강남 계급투표’의 생생한 단면이리라.

이번에도 아파트 평수와 투표율은 뚜렷하게 정비례했고 중·대형 아파트가 가장 많은 강남 3구가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강남지역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뒤에 중·상층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에서 높은 투표율과 한나라당에 대한 높은 지지가 계속되어온 터라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강남 3구의 높은 한나라당 지지는 집값 상승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는 또다른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과거 강남은 ‘신정치 1번지’라고 불리며 군부독재에 맞서 싸우던 야당 후보들이 돌풍을 일으켰던 지역이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으로 강남 지역을 주도했던 야당 세력이 여당에 합류한 뒤부터 ‘보수정치 1번지’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강남 3구는 야당한테는 사지로 알려져 비중 있는 후보들이 피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그 누구에 의해 견제받지 않는 보수 독점의 지역으로 굳어져 버렸다.

가령 6·2 지방선거 당시 강남구청장 사례를 보면 한나라당 후보,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나라당 출신 전 구청장 후보, 유일 야권 후보였던 민주당 후보가 삼파전을 벌였다. 하지만 각각 42%, 24%, 26%의 득표율을 기록해 보수 진영의 표가 분산되었는데도 민주당 후보는 참패했다. 2008년 총선에서도 민주당 후보는 18.71%라는 최악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흥미로운 것은 강남에서는 절대로 승산이 없다고 여겼던 진보정당 후보들이 오히려 10%를 넘는 득표율을 보였다는 점이다.

강남을 부자 내지 골수 보수들만 사는 지역으로 보는 것은 사실과 다른 신화에 불과하다. 실제로 강남 지역의 주민 다수는 주택담보대출과 전월세 대란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평균적인 서울 시민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화재로 마을이 잿더미로 변해버린 ‘포이동’이 잘 보여주듯 강남은 판잣집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고, 비정규직이 가장 많이 일하는 곳 중의 하나다. ‘사교육 1번지’는 무한경쟁 교육과 고액의 사교육비로 힘들어하고 있는 학부모들의 고통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한다. 즉 대한민국에서 사회 양극화가 가장 심한 곳이 바로 강남지역이라는 것이다.

강남의 다수 서민은 왜 자기 목소리를 못 내는가? ‘강남보수’의 지배 아래 이들을 방치한 자는 누구인가? 민주당이었다. 설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진보정당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강남은 제대로 된 야당이 없어서 소수의 보수적 부자 유권자들이 손쉽게 지배하는 지역이 되었다는 게 더 중요한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신언직 진보신당 전 서울시당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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