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세계 최대의 인터넷 업체인 구글이 휴대전화 생산업체 모토롤라를 전격 인수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온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유료화할 경우, 소프트웨어 기술을 외국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때문에 그동안 국내 업계가 하드웨어 개발에만 치중한 나머지 소프트웨어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문제점과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원죄
정부의 비상식적 발주 관행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은 4D업종 되고,
제조업의 부품 정도로만 여기는
좁은 시야에 교육정책까지 실패 지금 세상은 소프트웨어 중심 패러다임으로 급하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역대 정권의 정책 실패에 원죄가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없이 여러 부처에서 정책을 맡다 보니 실패를 계속해온 것이다. 정책 실패의 첫 단추는 과학기술처가 주무하던 정보산업(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산업)을 정보통신부로 이관한 것에서 시작됐다. 정보통신부에서 소프트웨어 업무는 과 수준으로 떨어진데다 통신정책에 파묻혀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당시 정책의 우선순위가 인터넷 확산이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도 통신용 소프트웨어에만 관심이 있었다.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를 일컫는 ‘정보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정보통신’이라고 번역해 사용하면서 통신 중심의 정책만을 펼쳐왔다. 규제에 익숙한 통신 관료들이 인터넷 실명제, 와이파이(WIPI) 사용 강요, 공인인증서 강제 사용, 게임의 사전심사제 등 규제를 남발해 인터넷 생태계는 피폐해졌다. 정통부 시대의 평가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는 구축했지만 활용을 제대로 못해 경제 전반의 파급은 미흡했다”라는 한마디면 족하다. 또 정통부가 출범하면서 소프트웨어 분야의 유일한 출연연구소였던 ‘시스템공학연구소’를 전자통신연구소로 흡수통합했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관련 학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가정보화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비상식적인 구매와 발주 관행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4D업종으로 만든 주범이다. 대기업 용역으로 그룹웨어를 개발해 전 공공기관에 무상공급함으로써 전문기업의 시장을 말살했다. 불분명한 요구사항 제시, 추가비용 미지급, 잦은 변경 요구, 발주처 근처로 개발 장소 제한, 최저가 입찰 제도, 용역단가의 정부 고시, 개발자 경력 등록제, 개발 결과물의 지적재산권 정부소유 등 소프트웨어 기업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고통을 가했고 그 고통은 중소 전문기업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계 1등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고사했다. 엠비 정부에 들어와서 정보통신산업의 주무 부서로 지정받은 지식경제부는 소프트웨어를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제조업의 부품으로만 이해하니 시야가 좁다. 소프트웨어 정책 입안에 도움을 주는 정책연구소도 없으며,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관련 연구개발(R&D) 과제의 기획과 관리도 허술하다. 지금의 지식경제부는 1·2·3차 산업을 아우르고 정치·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소프트웨어를 총괄하기에는 규모나 능력 면에서 역부족이다. 교육부의 정책 실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컴퓨터과학이 전자공학의 일부라는 왜곡된 인식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를 전자공학과로 통합하도록 강제했으며, 교수 평가도 논문 생산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교수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생산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해 컴퓨터학과의 연구와 교육을 심히 왜곡했다. 또 초·중등학교 컴퓨터 교과목 내용을 문서편집 등의 활용 중심으로 구성해 비판을 받더니 7차 교육과정을 집행하면서는 아예 컴퓨터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실질적으로 폐지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컴퓨터 조기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미국 등 선진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은 결코 쉬운 정책과제가 아니다. 많은 정책적 실수가 있었지만 앞으로 제대로 하려면 이를 국정 어젠다로 세워야 한다. 다만 애플과 구글의 쇼크에 대응한다고 정부가 섣불리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 더구나 기업을 선도하겠다고 나서면 백전백패다. 정부는 정부의 고유 업무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에게 제값을 주고 상식적으로 일을 주문하기만 한다면 소프트웨어 산업은 자생할 수 있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소프트웨어대학원 교수
불공정 버리고 창의력으로
엔지니어들 존중·처우 개선 않고
중소업체 희생시킨 불공정이 문제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 바탕으로
안드로이드 주도권 쥐는 게 최선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로 인해 소프트웨어를 등한시한 한국 기업에 대한 질타가 거세다. 수직 계열화를 이룬 구글의 행보에 따라 한국 기업은 하청기업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많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의 경쟁력이 없는 한국 기업들이 휴대전화 시장 세계 1위를 노리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휴대전화 강자였던 핀란드의 노키아가 운영체제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한 순간 퇴출의 위기까지 몰리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듯하다.
개인용컴퓨터(PC) 이후의 차세대 플랫폼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바일 컴퓨팅 환경은 운영체제와 콘텐츠 유통 시장을 장악한 플랫폼 업체들에 철저히 종속돼 있다. 아무리 매출이 높아도 자체 생태계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여기에 낄 수 없다. 하드웨어에 대한 경쟁력뿐인 한국 기업은 중국과 대만의 제조업체들과 동급으로 취급받게 될 위기에 처했다.
뒤늦게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고 있지만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상황이 더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엔지니어들의 창의력 존중이나 처우 개선보다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인재들을 싹쓸이해가는 행태의 반복이 재현될 것이다. 재벌 회장의 한마디에 소프트웨어 중소기업의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하는 것이 그 한 징조이다.
한국 기업들은 값싼 전기를 쓰듯이 인재도 과소비해왔다. 이미 구글의 안드로이드 개발을 위해 중소기업의 엔지니어들을 다 쓸어간 상태다. 그나마 자체 기술력으로 살아남으려는 업체들은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으로 인해 하청기업으로 전락해버렸다. 우리들이 쓰고 있는 국산 스마트폰의 참신한 기능들은 대부분 이런 기업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우리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제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폰을 선택하기도 어렵다. 엠에스는 노키아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이폰이 등장하자 대안도 없이 윈도 모바일 운영체제를 버릴 정도로 무책임했던 전력으로 볼 때 엠에스의 운영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자체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것도 어렵다. 플랫폼이란 한 회사가 원한다고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협력업체들을 모으고, 개발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유통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타 업체들과 상생하지 못하는 한국 기업들엔 이런 식의 전략을 수행할 의지도 능력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이 업계를 선도할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을 바꾸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활용할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 플랫폼으로 소스가 완전히 공개돼 있다. 오픈소스는 원제작자도 독점권을 누릴 수 없다. 독점 소스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면 나머지 개발자들이 독립해 새로운 버전을 만들게 된다. 마찬가지로 구글이 모토롤라에 특혜를 주는 순간 안드로이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고 나머지 업체들은 연합해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탄생시키게 될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구글의 미끼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는 오픈소스 문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온 오해이다.
구글의 사업 모델은 모든 것을 개방하고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검색 수익만을 얻는 것이다.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도 특허 공격을 방어하려는 목적이 가장 크다. 아직까지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헌신을 의심할 근거가 없다.
따라서 한국 기업이 취할 최선의 전략은 기술 개발에 집중해 안드로이드 기술 종주국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와 정부가 학생들의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를 안드로이드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적극 지원해야 한다. 기업들은 안드로이드에 대한 연구와 앱 개발에 나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안드로이드 개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안드로이드를 활용해 스마트폰 1위 기업이 될 뿐만 아니라 구글과 결별하더라도 독자적으로 안드로이드를 끌고 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 인재풀을 갖추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김인성 정보기술(IT) 칼럼니스트
정부의 비상식적 발주 관행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은 4D업종 되고,
제조업의 부품 정도로만 여기는
좁은 시야에 교육정책까지 실패 지금 세상은 소프트웨어 중심 패러다임으로 급하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데, 역대 정권의 정책 실패에 원죄가 있다.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이해와 애착이 없이 여러 부처에서 정책을 맡다 보니 실패를 계속해온 것이다. 정책 실패의 첫 단추는 과학기술처가 주무하던 정보산업(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산업)을 정보통신부로 이관한 것에서 시작됐다. 정보통신부에서 소프트웨어 업무는 과 수준으로 떨어진데다 통신정책에 파묻혀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이 당시 정책의 우선순위가 인터넷 확산이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도 통신용 소프트웨어에만 관심이 있었다.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를 일컫는 ‘정보기술’(IT·Information Technology)이라는 용어를 ‘정보통신’이라고 번역해 사용하면서 통신 중심의 정책만을 펼쳐왔다. 규제에 익숙한 통신 관료들이 인터넷 실명제, 와이파이(WIPI) 사용 강요, 공인인증서 강제 사용, 게임의 사전심사제 등 규제를 남발해 인터넷 생태계는 피폐해졌다. 정통부 시대의 평가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인프라는 구축했지만 활용을 제대로 못해 경제 전반의 파급은 미흡했다”라는 한마디면 족하다. 또 정통부가 출범하면서 소프트웨어 분야의 유일한 출연연구소였던 ‘시스템공학연구소’를 전자통신연구소로 흡수통합했다. 이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관련 학계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가정보화 담당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비상식적인 구매와 발주 관행으로 소프트웨어 개발 업무를 4D업종으로 만든 주범이다. 대기업 용역으로 그룹웨어를 개발해 전 공공기관에 무상공급함으로써 전문기업의 시장을 말살했다. 불분명한 요구사항 제시, 추가비용 미지급, 잦은 변경 요구, 발주처 근처로 개발 장소 제한, 최저가 입찰 제도, 용역단가의 정부 고시, 개발자 경력 등록제, 개발 결과물의 지적재산권 정부소유 등 소프트웨어 기업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가혹한 고통을 가했고 그 고통은 중소 전문기업으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계 1등 전자정부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안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고사했다. 엠비 정부에 들어와서 정보통신산업의 주무 부서로 지정받은 지식경제부는 소프트웨어를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제조업의 부품으로만 이해하니 시야가 좁다. 소프트웨어 정책 입안에 도움을 주는 정책연구소도 없으며,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관련 연구개발(R&D) 과제의 기획과 관리도 허술하다. 지금의 지식경제부는 1·2·3차 산업을 아우르고 정치·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소프트웨어를 총괄하기에는 규모나 능력 면에서 역부족이다. 교육부의 정책 실패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컴퓨터과학이 전자공학의 일부라는 왜곡된 인식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소프트웨어 관련 학과를 전자공학과로 통합하도록 강제했으며, 교수 평가도 논문 생산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교수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생산한 뒤 학생들을 가르치지 못해 컴퓨터학과의 연구와 교육을 심히 왜곡했다. 또 초·중등학교 컴퓨터 교과목 내용을 문서편집 등의 활용 중심으로 구성해 비판을 받더니 7차 교육과정을 집행하면서는 아예 컴퓨터 과목을 선택과목으로 만들어 실질적으로 폐지한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컴퓨터 조기교육을 더욱 강화하는 미국 등 선진국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은 결코 쉬운 정책과제가 아니다. 많은 정책적 실수가 있었지만 앞으로 제대로 하려면 이를 국정 어젠다로 세워야 한다. 다만 애플과 구글의 쇼크에 대응한다고 정부가 섣불리 나서지 않았으면 한다. 더구나 기업을 선도하겠다고 나서면 백전백패다. 정부는 정부의 고유 업무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자하기 바란다.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들에게 제값을 주고 상식적으로 일을 주문하기만 한다면 소프트웨어 산업은 자생할 수 있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소프트웨어대학원 교수
불공정 버리고 창의력으로
엔지니어들 존중·처우 개선 않고
중소업체 희생시킨 불공정이 문제
창의력 있는 아이디어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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