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희 노무사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노동자 황유미·이숙영씨가 산업재해를 당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지난 23일 나왔다. 그러나 같이 소송을 냈던 다른 노동자 3명은 백혈병 발병과 근무 여건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를 계기로, 한쪽에서는 산재 인정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산재 인정 기준은 외국에 비해 낮지 않으며, 더 완화할 경우 무분별한 산재 신청으로 인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 제도의 실태와 개선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부실한 역학조사가 문제다
이번 삼성 백혈병 판결로
근로복지공단의 역학조사와
산재 인정 기준의 부실함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난 23일 서울행정법원은 이른바 ‘삼성 백혈병’ 사건의 2명에 대해서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이를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주위에서는 이 재판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실제 싸움은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정부기관과 삼성이라는 재벌, 두 골리앗의 ‘전쟁’이었다. 일단 우리나라 산재 판정 기관은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며,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에 사실상 ‘구속’되어 공단은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삼성 백혈병 사건에서는 ‘벤젠’이라는 발암물질이 없다는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전원 불승인되었고 이에 불복해 소송이 진행된 것이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은 크게 7가지의 발암물질에 따른 직업성 암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백혈병의 경우 ‘벤젠 1ppm에 10년 이상 노출되었을 경우’에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2명이 직업성 암이 인정되었던 결정적 원인은, 2009년 실시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 결과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 5라인 감광공정에서 벤젠이 소량이나마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원은 공단의 인정 기준과 달리 ‘별표3’에 국한하지 않고 벤젠 이외에 전리방사선, 포름알데히드,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비소를 백혈병 유발물질로 인정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납, 유기용제인 이소프로필알코올(IPA), ‘1,1,1-TCE’ 등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임은 분명하고, 이러한 물질들에 의하여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이는 점”을 들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08두3821 판결) 이를 통해 공단의 역학조사 및 인정 기준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이번 법원 판결은 나머지 3명에 대해 업무 관련성을 부정했는데, 이를 살펴보면 설비엔지니어인 황민웅씨의 경우 재판부는 셋업작업을 하청업체가 담당했다는 삼성 쪽의 주장만을 근거로 업무 관련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실제 엔지니어도 하청업체 직원과 함께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생한 유해화학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원고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온양공장 노동자 두 명의 경우에도 공정의 도금업무 특성상 발암물질인 납, 포름알데히드, 황산, 염산뿐만 아니라 개별적 유해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은 사실상 2008년도에 실시된 산업안전보건원의 형식적 역학조사에 근거한 것이다. 과거의 공정, 발암물질 등을 현재 시점에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노동자에게 모든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산재보험법의 한계를 보여준다. 특히 법원은 온양공장 김은경씨의 경우 5년간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백혈병 유발인자와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사실이 있음에도 업무 관련성을 부정했다. 김씨의 노출 기간과 노출량이 적다고 판단한 것에 근거했다. 이는 ‘노출 기준이 낮더라도 발암물질에 노출될 경우 상병의 유발인자가 될 수 있다’는 판례 법리(대법원 2003두 12530판결)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판결로 보았을 때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직업성 암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의 문제점이며, 둘째, 산재 인정 여부에서 핵심 판단근거가 되는 역학조사의 문제이다. 이는 이번 판결에서도 “역학조사는 일정 시점에 유해화학물질의 노출 정도를 정태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산재 인정을 추단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내용을 볼 때에도 알 수 있다. 셋째,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의 경우 노동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법체계를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재 입증 책임을 정부가 져야
건강보험처럼 산재보험도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리하고,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 대신
근로복지공단에 지우면 된다 한국은 ‘산재왕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배가 높은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수로, 전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재해율은 오이시디 평균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재해율은 낮은데 사망만인율만 높을 수는 없다. 상당수의 산재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여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면서 건강보험에서 치료를 받은 노동자가 10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년에 산재보험으로 치료받는 노동자가 1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에 가히 엄청난 규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직업성 암과 같이 기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직업병은 대부분 산재보험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산재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산재 환자가 산재 사고를 당하거나 직업병에 걸려도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지 못할 뿐 아니라, 휴업급여를 주지 않아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산재노동자들이 충분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직장으로 돌아가서 동일한 위험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병이 더 깊어지고 영구적인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왜 산재노동자는 보장성이 높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현행 산재보험의 전근대성에 그 원인이 있다. 산재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으려면 본인 또는 보호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직접 산재 신청을 하고 인과관계를 본인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런 제도하에서는 산재 이후 긴급하고 적절한 치료 및 재활서비스를 받아야 할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 이용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간단한 처방만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와 산재보험 환자를 분류하고, 건강보험처럼 산재보험도 의료기관에 산재환자의 청구를 대리하게 하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지 말고 근로복지공단이 산재가 아님을 반증하도록 만들면 된다. 처음 분류에 대하여 조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치료(요양)를 산재보험으로 받고 근로복지공단이 반증을 하지 못하여 최종 산재 판정이 나면 휴업급여 등 현금급여를 제공하도록 하면, 제도 변화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복잡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산재노동자가 가족의 생계와 치료비 걱정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산재보험 재정 증가로 사업주 부담이 커질 수는 있지만, 건강보험에서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업주 부담도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달리 생각해보면, 사업주 부담이 커지는 대신 노동자의 건강이 좋아지고 가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사업주의 부담 증가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산재보험은 이밖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근로계약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협소한 적용 대상, 낮은 보상 수준, 재활체계의 부재 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다. 그렇지만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확인된 신청 절차와 입증 책임의 문제는 반드시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억울하게 죽어간, 그리고 죽어서도 고통스러웠던 삼성 백혈병 사망 노동자의 영전에서 고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근로복지공단의 역학조사와
산재 인정 기준의 부실함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지난 23일 서울행정법원은 이른바 ‘삼성 백혈병’ 사건의 2명에 대해서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고,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이를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주위에서는 이 재판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기도 하지만, 실제 싸움은 근로복지공단이라는 정부기관과 삼성이라는 재벌, 두 골리앗의 ‘전쟁’이었다. 일단 우리나라 산재 판정 기관은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며, 백혈병과 같은 직업성 암에 대해 산재 신청을 할 경우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의뢰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에 사실상 ‘구속’되어 공단은 산재 인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삼성 백혈병 사건에서는 ‘벤젠’이라는 발암물질이 없다는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전원 불승인되었고 이에 불복해 소송이 진행된 것이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3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은 크게 7가지의 발암물질에 따른 직업성 암만을 규정하고 있으며, 백혈병의 경우 ‘벤젠 1ppm에 10년 이상 노출되었을 경우’에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2명이 직업성 암이 인정되었던 결정적 원인은, 2009년 실시된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조사 결과 삼성 반도체 기흥사업장 5라인 감광공정에서 벤젠이 소량이나마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원은 공단의 인정 기준과 달리 ‘별표3’에 국한하지 않고 벤젠 이외에 전리방사선, 포름알데히드, 트리클로로에틸렌(TCE), 비소를 백혈병 유발물질로 인정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은 “납, 유기용제인 이소프로필알코올(IPA), ‘1,1,1-TCE’ 등이 인체에 유해한 물질임은 분명하고, 이러한 물질들에 의하여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이는 점”을 들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08두3821 판결) 이를 통해 공단의 역학조사 및 인정 기준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이번 법원 판결은 나머지 3명에 대해 업무 관련성을 부정했는데, 이를 살펴보면 설비엔지니어인 황민웅씨의 경우 재판부는 셋업작업을 하청업체가 담당했다는 삼성 쪽의 주장만을 근거로 업무 관련성을 부정했다. 그러나 실제 엔지니어도 하청업체 직원과 함께 공동작업을 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생한 유해화학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원고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온양공장 노동자 두 명의 경우에도 공정의 도금업무 특성상 발암물질인 납, 포름알데히드, 황산, 염산뿐만 아니라 개별적 유해물질인 트리클로로에틸렌에 노출되지 않았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은 사실상 2008년도에 실시된 산업안전보건원의 형식적 역학조사에 근거한 것이다. 과거의 공정, 발암물질 등을 현재 시점에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노동자에게 모든 입증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산재보험법의 한계를 보여준다. 특히 법원은 온양공장 김은경씨의 경우 5년간 트리클로로에틸렌이라는 백혈병 유발인자와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사실이 있음에도 업무 관련성을 부정했다. 김씨의 노출 기간과 노출량이 적다고 판단한 것에 근거했다. 이는 ‘노출 기준이 낮더라도 발암물질에 노출될 경우 상병의 유발인자가 될 수 있다’는 판례 법리(대법원 2003두 12530판결)에도 어긋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이번 판결로 보았을 때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직업성 암에 대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인정 기준의 문제점이며, 둘째, 산재 인정 여부에서 핵심 판단근거가 되는 역학조사의 문제이다. 이는 이번 판결에서도 “역학조사는 일정 시점에 유해화학물질의 노출 정도를 정태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산재 인정을 추단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내용을 볼 때에도 알 수 있다. 셋째,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의 경우 노동자에게 과도한 입증 책임을 부과하는 법체계를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 위원장·가천의대 교수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리하고,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 대신
근로복지공단에 지우면 된다 한국은 ‘산재왕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3배가 높은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수로, 전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재해율은 오이시디 평균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재해율은 낮은데 사망만인율만 높을 수는 없다. 상당수의 산재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여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200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면서 건강보험에서 치료를 받은 노동자가 10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년에 산재보험으로 치료받는 노동자가 10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에 가히 엄청난 규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직업성 암과 같이 기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직업병은 대부분 산재보험에서 배제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산재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산재 환자가 산재 사고를 당하거나 직업병에 걸려도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된다.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가계를 보호하지 못할 뿐 아니라, 휴업급여를 주지 않아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서둘러 직장으로 돌아가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은 산재노동자들이 충분한 치료와 재활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직장으로 돌아가서 동일한 위험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병이 더 깊어지고 영구적인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왜 산재노동자는 보장성이 높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현행 산재보험의 전근대성에 그 원인이 있다. 산재노동자가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으려면 본인 또는 보호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직접 산재 신청을 하고 인과관계를 본인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런 제도하에서는 산재 이후 긴급하고 적절한 치료 및 재활서비스를 받아야 할 노동자의 권리가 침해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의료 이용이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간단한 처방만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와 산재보험 환자를 분류하고, 건강보험처럼 산재보험도 의료기관에 산재환자의 청구를 대리하게 하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게 지우지 말고 근로복지공단이 산재가 아님을 반증하도록 만들면 된다. 처음 분류에 대하여 조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치료(요양)를 산재보험으로 받고 근로복지공단이 반증을 하지 못하여 최종 산재 판정이 나면 휴업급여 등 현금급여를 제공하도록 하면, 제도 변화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복잡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 변화가 현실화된다면 산재노동자가 가족의 생계와 치료비 걱정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못 받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산재보험 재정 증가로 사업주 부담이 커질 수는 있지만, 건강보험에서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업주 부담도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달리 생각해보면, 사업주 부담이 커지는 대신 노동자의 건강이 좋아지고 가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사업주의 부담 증가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사실 산재보험은 이밖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근로계약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협소한 적용 대상, 낮은 보상 수준, 재활체계의 부재 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다. 그렇지만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확인된 신청 절차와 입증 책임의 문제는 반드시 이번 기회에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억울하게 죽어간, 그리고 죽어서도 고통스러웠던 삼성 백혈병 사망 노동자의 영전에서 고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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