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11일 프랑스에서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한 ‘에스엠(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 공연이 열렸다. 이를 두고 국내외 수많은 언론들이 “한류가 유럽에 상륙했다”며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11일 프랑스의 유력지 <르몽드>는 “제작사의 기획으로 길러진 소년과 소녀들”이라며 한국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아이돌이 ‘산업·문화적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육성 시스템을 두고선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일방적인 통제로는 음악적 성찰 기대 못해
나는 기획사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지만, 그 구체적 사례들을 적시하며 개선책을 제안할 생각은 없다. 비평가의 입장에서 더 큰 관심사는, 냉정하게 말해서, 아이돌을 육성하는 방식을 평가하기보다는 그렇게 육성된 아이돌의 역량을 가늠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엄격한 아이돌 육성 시스템의 원조로 꼽히는 미국 모타운 레이블의 사례를 보자. 사장 배리 고디 주니어는 소속 가수들에게 가창과 안무는 물론이고, 웃는 법과 걷는 법을 지도했고 심지어 담배를 멋있게 피우는 법까지 가르쳤다. 포디즘의 신봉자였던 그는 그런 교육과정을 “품질관리”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에게 가수의 개성은 중요치 않았다. 판매량이 중요했다. 나는 그와 같은 모타운의 방식에 비판적이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상품들 가운데 뛰어난 작품들이 있었음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다. 미국의 모타운과 한국의 에스엠타운을 다른 기준으로 볼 이유가 없다.
다만, 모타운의 가장 위대한 작품들이 결국은 배리 고디 주니어의 방식을 거부했던 자의식 강한 뮤지션들,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에게서 나왔음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수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짧은 인기를 누린 이후 과연 어떤 성과를 더 보여주었는지 되짚어 보면, 그 육성 시스템에 내재한 근원적 한계를 파악할 수 있다. 요컨대, 엔터테이너의 기술은 교육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뮤지션의 성찰을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케이팝의 아이돌 육성 방식이 지금 당장은 해외시장에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세계가 그런 방식으로 아이돌을 생산해내기 시작한다면 그때도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타이가 제2의 닉쿤을, 중국이 또다른 빅토리아를 직접 발굴하고 나섰을 때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비교우위의 메리트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이맘때쯤, 전세계 음악산업 관계자들의 연례 콘퍼런스인 ‘뮤직 매터스’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케이팝의 성장세는 그곳에서도 중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것이 궁극적으로 대중음악 산업의 본토인 미국과 영국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각국의 전문가 패널들은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음악들로는 힘들다”는 것이었다. 개성적인 음악과 창조적인 역량이 확고해야 한다는 의미다. 알다시피, 그건 성형수술이나 합숙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르몽드> 기사의 행간에 자리한 논점도 그것이다. 오로지 스타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방적인 시스템의 통제를 자청한 아이들에게서 음악적 자의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뜻일 터다. 결국은 음악이다.
획일화 시각은 편견… 개선은 현실 긍정에서 나와야
소녀시대와 아이유는 둘 다 기획사의 철저한 프로듀싱 아래 활동한다. 음악 외적으로도 각종 예능과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팬덤과 대중의 열광 속에 시대의 아이콘으로 호명된다. 아이유가 포크음악을 한다 해서 아이돌이 아니라고 볼 이유는 없다. 한국의 아이돌 산업은 이미 그 안에서 장르적 다양성을 갖춘 독립적인 생태계가 되었다. 그 안에서 활약하는 이들이 다 비슷한 시스템으로 육성될 거라는 생각은 편견에 가깝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한국의 아이돌은 만능이기를 요구받는다는 점이다. 춤과 라이브를 함께 소화해야 하고, 연기력 또한 수준급이어야 하며, 말재간과 개인기도 갖춰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전인’, 가혹해 보이는 이 목표는 기실 대중이 설정해 준 것이다. 퍼포먼스형 가수가 흔치 않던 시절 대중은 아이돌에게 “마이클 잭슨처럼 춤추면서 라이브 하고 작곡도 하라”고 요구했으며, 드라마에 출연하는 이들에겐 “인기만 믿고 함부로 남의 밥상을 기웃거린다”는 비판을 던졌다.
음악에만 전념해도 됐다면 피차 좋았겠지만, 엠피3의 도래에 발맞추지 못한 한국 음악시장의 몰락은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수익 창구를 다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한 상황, 해법은 대중의 기대치를 모두 채울 만능 신인을 육성하는 것이었다. 육성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출은 증가했고, 그럴수록 소속 가수가 창출하는 수입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졌다. 자연스레 계약기간은 길어졌으며, 아이돌 산업은 고위험 고수익의 도박이 되었다.
만시지탄이나, 2000년대 후반 범아시아 시장을 포섭하며 아이돌 산업은 비교적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했고, 불공정한 계약구조에서 가수를 보호하기 위한 표준 전속계약서가 등장했다. 200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이 계약서는 ‘권고사항’이지만, 국내 3대 기획사들은 표준 계약서의 수준을 이행하려 노력중이다. 시스템은 어느 정도 안정화 상태에 접어들었고, 한 가수를 10년 넘게 강제로 묶어두는 식의 계약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슈퍼주니어의 전속계약은 5년, 빅뱅도 5년이며, 투피엠 또한 권고안 최대치인 7년을 넘기지 않는다.
현 시스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신히 도박에서 산업의 단계로 접어든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건 변혁이 아니라, 시스템을 어떻게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이 불완전한 시스템마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것인가를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개선안을 만드는 작업은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대한 긍정에서부터 가능할 것이다.
인재 육성과 투자 회수 ‘양날의 검’
케이팝·한류에 대한 논쟁이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이른바 ‘포스트 한류’의 성취와 더불어 아이돌 훈육 시스템이 다시금 문제적 화두가 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아이돌로 대변되는 케이팝은 특유의 스타 시스템을 통해 구축된 산물이다. 그중에서도 ‘연습생 시스템’(또는 ‘아카데미’)으로 불리는 교육·훈련 시스템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를 기반으로 엔터테인먼트회사는 기획과 제작부터 매니지먼트에 이르는 모든 분야와 과정을 포괄하고 통제한다. 이는 초기와 달리 엔터테인먼트회사가 거대한 복합조직으로 변모하고 이른바 ‘원 소스 멀티유스’라는 전략을 채택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훈육의 대상은 확대·세분화되어 가창이나 댄스는 물론, 어학이 필수가 되었으며, 연기와 ‘예능감’ 같은 ‘개인기’, 나아가 외모의 교정도 포괄된다. 이를 위해 연습생들은 어린 나이에 발탁되어 길고 고단한 훈련을 거친다.
최근 진화되었다고 평가되는 아이돌 팝 음악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아이돌 그룹의 다양한 이미지나 다이내믹하고 일사불란한 군무는 이렇게 ‘제조’되었다. 엔터테인먼트회사별로 ‘브랜드’를 창출하고 나아가 ‘국내 가요’의 의미를 넘어서는 ‘한국산 아시안 팝’을 창출한 것도 이 시스템에 빚진 것이다.
그렇지만 훈련과 육성 시스템이 철저해지고 체계화될수록 그 의미는 부정적이 된다. 창의적인 부분까지 조율되고 관리된다는 점이나 획일적인 음악을 양산한다는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불어 엔터테인먼트회사의 투자가 증대하면서 이를 단기간 내에 최대한 회수하도록 시스템이 공고화되었다. 이 때문에 연습생이 데뷔한 뒤에도 많은 노동량을 견뎌야 하고 오랜 기간 동안 ‘전속’되어야 한다. 이처럼 기업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불공정한 계약 관행이나 부적절한 보상 체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마에 오를 것이고 특히 서양의 현실과 비교되면서 ‘해외진출’에서도 딜레마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아이돌 스타 시스템이 자본과 산업의 논리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다. 과도하리만큼 센 노동 강도와 그를 보상하지 않은 한국의 경제·사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극도의 경쟁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도 그대로 노정한다. 케이팝의 외국 진출이라는 신화 역시 ‘수출형 산업’을 강조해야 하는 한국형 산업구조와 동형관계에 놓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 시스템은 ‘성실과 노력의 판타지’와 ‘근면 이데올로기’를 통해 노동력을 집약하고 여타의 문제를 타개하려 했던 ‘경제성장 신화’의 문화적 버전이 아닐까. 이렇게 아이돌 스타 시스템은 양날의 검이 된다.
박은석 대중음악 평론가
이승한 티브이 평론가
소녀시대와 아이유(위)는 둘 다 기획사의 프로듀싱 아래 활동한다. 아이돌 산업은 그 안에 장르적 다양성을 갖춘 독립적인 생태계가 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최지선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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