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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슈퍼에서도 감기약을 팔 수 있게 허용해야 하나?

등록 2011-06-14 19:13

정승준 한양대 의대 교수
정승준 한양대 의대 교수
논쟁 최근 보건복지부가 종합감기약, 해열진통제, 소화제 등 일반의약품을 약국 외에서도 팔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진수희 장관은 애초 일반약의 슈퍼 판매가 어렵다는 뜻을 나타냈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다시 판매가 가능하도록 추진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슈퍼의 약 판매 논란은 의약품 구입에서 ‘편의·효율성’을 강조하는 쪽과 ‘안전성’을 강조하는 쪽이 오랫동안 대립하고 있는 사안이다. 이에 대한 찬반 양쪽의 견해를 들어본다.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해야

현재 보건의료는 과거와 달리 쌍방향 정보교환으로 이뤄지고 외국에서는 이를 반영해 다양한 자가치료 인프라를 구축중이다

올해 들어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그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던 보건복지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일반약 약국 외 판매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의는 지난 20여년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며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다가 결국은 제자리걸음으로 끝난 전례가 있지만, 이번에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심야시간, 공휴일, 또는 외지에 여행을 갔을 때 경미한 증상이지만 그냥 참기에는 불편하고 간단한 상비약은 없고 응급실에 가기는 망설여지면서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관한 논의는 가장 먼저 ‘의약품의 안전성이냐, 국민의 편의성이냐’에 대한 판단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 보건의료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안전성·접근성·비용 모든 측면에서 효율이 가장 높다고 판단되는 의약 정책을 만드는 것이지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는 아니다.

의약품 안전성 측면만을 보면 약사법과 일반약 분류기준에서 일반의약품은 ‘오·남용의 우려가 적고 부작용이 비교적 적고 유효성과 안전성이 확보된 의약품으로, 주로 가벼운 의료 분야에 사용되며 일반국민이 자가요법(self-medication)으로 스스로 적절하게 판단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돼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국민이 약국 외 판매를 원하는 품목은 가정상비약 수준의 의약품 정도이다. 그럼에도 일부 약사는 어떤 회사의 드링크류는 카페인이 함유돼 있어 심장 등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복약지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이 드링크 한 병에 포함된 카페인은 약 30㎎으로,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 한 잔에 들어있는 양의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의약품 사용 실태를 보더라도 일반 가정의 약 90%가 가정상비약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별한 복약지도 없이도 가정상비약을 사용해 일정 정도의 자가치료를 행하고 있다. 식약청 자료를 보면, 2000~2008년 발생한 가정상비약 부작용 사례는 간 손상이나 위장출혈 등 17건이 보고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약사가 의사의 처방을 오독해 처방보다 5배 많은 함량의 전문의약품을 조제해 사망한 사고가 최근에 일어난 바 있다. 2008년 기준 조제 건수가 총 4억2000만건이 넘으며, 이 과정에서의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다. 국민이 약 복용의 안전성에 우려하는 것은 그런 데서 생긴다.

국민의 70~80%가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를 요구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의식수준의 향상 및 다양한 건강정보 접근성 확대, 자기 건강 결정권에 대한 요구가 증대되면서 발생한 자연적인 현상이다. 과거의 의료가 일부 전문인의 독점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졌다면, 현재의 보건의료는 개개인이 자기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어 쌍방향으로 정보를 적극적으로 교환하면서 이뤄지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를 반영해 다양한 자가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세계보건기구는 자가치료를 “자신의 책임 아래 경미한 신체의 부조는 자신이 치료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약품 접근성의 확대, 사회적 차원의 건강 캠페인, 건강 증진 프로그램 활성화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8년 11월 기준 전국 약국 2만831곳 중 8.4%인 1752곳만이 군 단위의 지역에 분포하고, 전국의 215개 기초행정구역(1개 읍과 214개 면)에는 최소한의 약품을 구입할 수 있는 시설이 없는 등 실질적인 국민 편의 및 자가치료 환경은 열악한 실정이다.

최근 정부는 가정상비약을 약국 외에서 팔 수 있도록 ‘전문의약품(의사 처방약)-일반의약품(약국 판매약)’으로 돼 있는 의약품 분류기준에 ‘자유판매약(약국 외 판매약)’을 넣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약사법 개정이라는 국회의 절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아직 이 논의는 진행중이며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욱 요구되는 때다. 이 논의를 시작으로 보건의료의 주체인 국민이 중심이 되어 국민이 요구하고 원하는 보건의료 체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미정 약사
김미정 약사
약을 쉽고 편하게 사는 건 옳지 않다

밤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난다고 슈퍼에서 해열제를 사서 먹였다가 복막염 등의 치료시기를 놓친다면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어제 약국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젊은 아기 엄마가 아이를 안고 지나가다가 꾸뻑 인사를 하면서 “이 아이가 약사님 때문에 생긴 아이예요”라고 했다. 지난해 언젠가 피임약을 사러 약국에 왔을 때 내가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라서 잠그고 싶을 때 잠그고, 열고 싶을 때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 가운데 원인 모를 불임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결혼을 앞둔 사람이 피임약을 함부로 먹으려 하느냐”라고 하면서 약을 안 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피임약을 안 먹었더니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임신이 확인됐고, 그렇게 해서 그 아이가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약사님 평생 기억할 거예요. 약사님 덕에 탄생한 생명이니까요”라는 아이 엄마의 말을 듣고는 오랜만에 약사가 된 보람을 느꼈다.

약국에 있으면 재미있는 일도 참 많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딸이 어릴 때 약국에 왔을 때 어느 손님이 “쥐약 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엄마, 그 아줌마 집에 쥐가 아픈가 봐”라고 했던 이야기는 지금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약국은 약만 파는 곳은 아니다. 아이 엄마가 장 보러 왔다가 유모차를 맡겨 두고 가기도 하고, 할머니들이 마실 나왔다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갈수록 약국은 약 타러 가는 곳이 되고, 약사는 의료인이 아닌 약 판매 상인으로 격하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는 맥이 풀리곤 한다.

지금 정부에서는 국민 편익을 위해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추진하려 하고 있다. 연일 일부 언론으로부터 약사는 주민들 불편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밥벌이를 위해 약을 독점하고 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과연 그런가? 의약품 오·남용 1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의약품을 누구나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책인가? 밤에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거나 복통을 일으킨다고 원인도 모르면서 슈퍼에서 해열제를 사서 무작정 먹일 수 있도록 했다가, 만약 복막염이나 다른 응급한 상황이 일어나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일이 발생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응급환자의 안전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해결하려면 ‘심야 의원제’를 도입해 동네 의원들이 당번제로 문을 열도록 하고, 그에 따라 그 병원 인근의 약국도 자연스레 문을 열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옳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휴일에 계속 복용하고 있는 당뇨나 혈압약이 갑자기 떨어져 병원 문을 열 때까지 먹을 약 한두 알을 줄 수 없느냐고 부탁하는 환자들을 위해 동일처방은 리필할 수 있도록 하는 ‘동일처방 리필제’도 실시되었으면 한다.

지식경제부에서 슈퍼 판매 논의가 나오자 증시에서 제약주가 요동을 쳤다고 한다. 약은 정말로 많이 팔기만 하면 좋고, 편하게 살 수 있기만 하면 좋은 것인가? 지난해 12월부터 병원과 약국들은 의약품처방조제지원(DUR) 제도를 따르고 있다. 이 제도는 여러 병원이나 약국들이 환자에게 중복해서 투약하는 진통제나 항생제 등의 약들을 걸러내고 그렇게 걸러진 내용을 다시 의약인들이 의논해서 국민들의 건강을 중복 확인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로,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일반약의 슈퍼 판매가 불가하다고 결정했던 데는 의약품 오·남용을 줄이려는 기존 정책과 명백하게 상반되는 정책을 동시에 시행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이런 결정에 대해 진노하셨다고 한다. 의약품 오·남용이 이렇게 심각한 나라에서 이런 졸속 조처를 채택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진노하셨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통령은 좀더 중요하고, 진정 진노해야만 할 일에 “나는 대통령이다”라며 진노하셨으면 좋겠다. 제발 부탁드린다. 생명을 구하고 건강을 지키는 일을 보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믿고 의지하는 많은 아픈 사람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도록 더 신중해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약사라는 좋은 직업을 권하고 싶다.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약사는 참 좋은 직업이다. 나는 오늘도 그냥 약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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