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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기여입학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등록 2011-06-10 19:08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기부자의 직계 자녀는
기여입학 대상에서 제외한다든지
일정기간 경과 뒤 입학시키는 등
제도 남용 방지할 방법이 있다
기여입학제 도입해도 되나?

과거 일부 사학이 주장해 파문이 일었던 ‘기여입학제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8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기여입학제가) 가난하고 능력 있는 학생들을 위해 100% 쓰인다면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논의된 바 없다”고 못박았지만, 찬반론자 사이에서는 ‘이제는 도입해야 할 때’라는 의견과 ‘사실상의 교육 카스트’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반양론을 들어본다.

요즘 대학 등록금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여당의 원내대표가 추락하는 지지도를 회복해볼까 하는 기대에서 느닷없이 꺼내 든 ‘반값 등록금’ 카드가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촛불시위로 비화하는가 하면, 언론은 앞을 다투어 우리나라의 대학과 교수들을 싸잡아 질타한다. 이러한 비판 중에는 극히 소수의 부정적인 사례를 침소봉대한 부분도 있고, 대학이 겸허히 수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대학의 구성원으로서 송구스런 마음도 있고 다른 한편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반값 등록금을 제안한 여당도 정부도 모두 뾰족한 해결책은커녕 명확한 문제의식조차 없는 듯 보이며, 야당은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생각만 하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며칠 전부터 기여입학제가 재론되기 시작했다. 사실 ‘기여입학제 불가’는 과거 참여정부가 일관되게 채택한 3불 정책의 하나였다. ‘대학 입학권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거부의 논리였다. 이는 다수 국민들의 정서이기도 했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은 기여입학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이 글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대학 입학을 돈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는 입장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여입학제에 대해 진지하고 신중하게 재고해볼 때인 것 같다.

우리나라 대학의 절대다수는 국고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립대학이다. 일전에 여당의 원내대표가 ‘기부금의 활성화’ 운운했는데, 우리 대학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발언이다. 우리 현실에서 대학에 대한 기부는 극소수의 최고 명문대학에 집중된다. 기부할 사람은 생각이 없는데 대학이 기부를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해 봐야 아무런 실효도 거둘 수 없다. 어떤 정치인은 대학보고 수익사업으로 재정을 충당하라고 하지만, 이 또한 무지의 소치다. 미국의 명문대학들은 주식투자를 통해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하버드대의 경우 가장 큰 수익사업은 토지 임대업이다. 더욱이 우리의 대학들보고 주식에 투자하라는 것은 위험한 도박을 하라는 주문이나 다를 바 없다.

대부분의 우리 대학들은 상시평가체제로 인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재정이다. 그간 부지런히 교육시설과 연구 인프라 구축에 투자했음에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돈 쓸 데는 많지만 이를 구할 수 있는 경로는 제한되다 보니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이 등록금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여입학제는 등록금 부담을 경감하는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기여입학의 대상은 정원 외로 하고 그 상한선은 물론 일정한 자격기준을 명시하며, 기부금은 오직 장학금으로만 사용하자는 것이 필자의 구상이다. 기부자의 직계 자녀는 기여입학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든지, 기부 일시로부터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 기여입학을 허용하는 것도 이 제도의 남용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부자들이 돈으로 자녀들을 대학에 입학시킨다’는 생각에서 ‘부잣집 자녀 하나를 기여입학시킴으로써 수십명의 어려운 학생들을 장학금으로 공부시킨다’고 발상을 전환해볼 수는 없을까?

보기에 따라서는 현재 소수의 명문 사립대들이 채택하고 있는 예체능 우수자 선발도 일종의 정원 외 특별선발이라는 점에서 기여입학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예체능 우수자들이 이들 대학의 홍보에 기여한다면, 기여입학제는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지난 10년간의 대학 등록금 인상 추이를 관찰해보면, 참여정부 시절의 인상폭이 가장 컸음을 알 수 있다. 2004년 579만원이던 사립대 등록금 평균이 2008년에는 739만원으로 4년 사이에 260만원이 증가했는데, 2010년엔 평균 754만원이다. 참여정부가 대폭적인 인상을 주도했을 리는 없겠지만, 이 기간 정부의 대학정책은 좀더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 대한 가정법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기여입학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면 지금의 등록금 사태는 어떤 양상을 띠고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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