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향하는 고 황장엽씨 수양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서 11일 오전 수양딸인 김숙향씨가 분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혔습니다. 그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그에게 1등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급하게 추서해 국립묘지에 안장한 일은 분명히 이례적입니다. 왜 그렇게 했는지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영결식장에서 읽은 조사를 보면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조사는 “2300만 동포들을 노예로 만들고 ‘3대 세습’으로 전 인류를 우롱하는 용서 못할 정권이 살아 있는데 선생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저희들은 참으로 비탄한 심정”이라며 “선생님이 들고 계시는 ‘북한 민주화의 깃발’이 평양에 힘차게 꽂히는 그날 저희들은 선생님의 영정을 다시 모시고 비로소 선생님을 보내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곧 황 전 비서에 대한 정부의 특별한 예우는 북한체제 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지요.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는 기준금리를 3개월 연속 동결했습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앞으로 주요국 경기 및 환율의 변동성 확대 등이 세계 경제는 물론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최근 급등하고 있는 물가를 진정시키는 것보다는 환율과 수출경쟁력을 중시한 것이지요. 앞서 그는 지난 8월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물가 안정과 금리 정상화(인상) 기조를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시 금리동결을 옹호하는 데는 성장을 중시하는 정부를 크게 의식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통화정책의 독립성 유지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지요.
지금 국정감사에서는 4대강 사업이 큰 쟁점이 돼 있습니다. 이 사업과 관련한 정부 주장의 취약성과 왜곡된 행태, 무리한 추진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 등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마스터플랜이 엉터리라는 기사에서부터 엄청난 예산투입에도 불구하고 고용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까지 매일 여러 건의 기사가 고구마줄기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속전속결하겠다는 정부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겠지요.
위에서 거론한 세 사안을 꿰뚫고 있는 논리가 있습니다. 바로 1970~80년대 식의 냉전·개발 이데올로기입니다. 황 전 비서는 현 정부 출범 이후 되살아난 냉전적 적대의식을 상징합니다. 그에 죽음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문하지 않는 야당을 친북좌파로 몰아붙이는 여권의 행태 역시 냉전시대의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연이은 금리동결은 수출경쟁력을 위해 물가안정과 정상적인 금리정책을 희생시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수출 증대에 모든 정책을 맞추던 과거에도 그랬지요. 4대강 사업은 더 직접적으로 개발 이데올로기를 반영합니다. 국토를 뜯어고치는 게 바로 경제발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냉전·개발 이데올로기는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가끔씩 한 세대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데자뷰)마저 듭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j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