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맛있는 여행
뭣보다 ‘떠들기’ 좋은 레스토랑에 마주 앉아
사람에 치인 그의 뒷담화에 귀 열고 ‘맞장구’
본성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일까?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에서 윤희가 아무리 굵은 목소리로 “사형”이라고 외쳐도, 튼튼해진 팔뚝으로 과녁에 화살을 꽉 박아도, 암컷 윤희를 향한 수컷 꽃도령들의 구애는 이어진다.
남자가 7할이 넘는 곳에서만
여고를 졸업한 이후 지금까지 남자가 7할이 넘은 공간에서만 있어왔다. 카메라를 밥벌이로 들었을 때는 더 심했다. 7할이 아니라 9할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힘들었다. 뭔 일만 생기면 동굴에 처박히고, 느닷없이 고백을 하는 바람에 당황하게 만들고, 고민을 상담하면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데 조목조목 따져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말도 안 되는 편견들은 어찌 그리 또 많은지. (물론 하염없이 기대고 싶은 만큼 훌륭할 때도 더러 있었다)
지금 나, 동굴에 처박히고 고민 상담을 해오면 ‘해결책이 무엇인지’ 따진다. 나의 본성은 사라진 것일까?
지난주 만난 E(이)는 젖은 타월이 서서히 마르면서 펴지듯이 나의 본성을 찾아주었다. 이는 10년이 넘게 한 분야에서 일했다. 어느 날 몸담고 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따르는 후배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 자본가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세상은 보잘 것 없는 얇은 옷이라도 벗어던지면 가혹하리만큼 차갑고 매서운 시베리아다.
드디어 올해 초 ‘물주’를 찾았다. 회사는 다시 생명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물주’는 그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하지만 관계는 이미 ‘평등’이 아니라 ‘상하’로 바뀌었다. 몰랐던 지인의 다른 이면도 알게 되었고, 스트레스는 이를 점령했다. “결혼도 안 했는데 내가 늙어!” 외친다.
“아, 이제 좀 속이 후련해”
물주에 대한 뒷담화로 풀면 정신건강에 좋을 터인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상담창구가 될 대상이 없었다. 그 노릇을 해달라고 그가 불렀다. 물주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오후의 창을 점령한 청담동 ‘비스트로 드 욘트빌’. 인상주의 화가들의 고즈넉한 점심이 연상될 만큼 우윳빛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이오(CEO)가 나서서 사업을 구상하고 시작해야지, 사업 파트너들은 만나지도 않고”로 시작하는 이의 고충담이 시작되었다. 듣기만 했다. 간간히 추임새로 맞장구를 치고 포크질 사이로 격려도 했다. 이를 향해 귀를 활짝 열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식탁에서 일어날 때 이는 “아, 이제 좀 속이 후련하다”고 끝을 맺었다. 나는 다시 ‘여자’가 되었다.
‘비스트로 드 욘트빌’은 청담동이라는 위압적인 동네에서 그나마 소박한 향취를 풍기는 레스토랑이다. 무엇보다 ‘떠들기’ 좋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요리사는 토미 리다. 천재 요리사라고 불리는 토머스 켈러의 레스토랑 ‘더 프렌치 론드리’에서 일했다. ‘더 프렌치 론드리’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그 지겨운 미슐랭 별이 3개고, ‘레스토랑 매거진’(영국 잡지. 매년 전 세계음식전문가 800여 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서 베스트 레스토랑을 뽑는다)이 여러 번 우수한 레스토랑으로 뽑았다.
수다도 수다지만 맛 공부 위해
‘더 프렌치 론드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의 욘트빌이라는 마을에 있다. 이 마을은 3층 이상의 건물을 거의 없을 정도로, 겉에서 보면 소박한 시골 동네지만 사실은 은퇴한 부유한 미국 노인들이 주로 찾는 고급 동네다. 올해 초 출장 때문에 욘트빌을 찾았다. ‘더 프렌치 론드리’도 방문했다. 맛을 봤냐고?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났다.
‘더 프렌치 론드리’가 주는 감동은 명성이나 예약률이 아니었다. 레스토랑 건너편에 밭이 있었다. 각종 식재료가 재배되고 있었다. 음식의 재료를 건강하게 키우고 빨리 가져와 신선하게 요리하는 방식이 감동을 주었다.
이날 이와는 수다도 수다지만 2009년 11월에 문을 열어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비스트로 드 욘트빌>의 맛을 공부하기 위해 찾았다. 우리는 ‘랍스터 카푸치노’, ‘씨저 샐러드’, ‘가리비 무스를 채워 넣은 닭고기’, ‘저온 조리한 삼겹살과 항정살 듀오’를 먹었다. 샐러드는 신선했고 닭고기는 바삭했고 삼겹살은 은근했다. (‘비스트로 드 욘트빌’ 02-541-1550)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 기자mh@hani.co.kr
사람에 치인 그의 뒷담화에 귀 열고 ‘맞장구’
본성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일까?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에서 윤희가 아무리 굵은 목소리로 “사형”이라고 외쳐도, 튼튼해진 팔뚝으로 과녁에 화살을 꽉 박아도, 암컷 윤희를 향한 수컷 꽃도령들의 구애는 이어진다.
남자가 7할이 넘는 곳에서만
여고를 졸업한 이후 지금까지 남자가 7할이 넘은 공간에서만 있어왔다. 카메라를 밥벌이로 들었을 때는 더 심했다. 7할이 아니라 9할이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힘들었다. 뭔 일만 생기면 동굴에 처박히고, 느닷없이 고백을 하는 바람에 당황하게 만들고, 고민을 상담하면 들어주기만 해도 되는데 조목조목 따져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말도 안 되는 편견들은 어찌 그리 또 많은지. (물론 하염없이 기대고 싶은 만큼 훌륭할 때도 더러 있었다)
지금 나, 동굴에 처박히고 고민 상담을 해오면 ‘해결책이 무엇인지’ 따진다. 나의 본성은 사라진 것일까?
지난주 만난 E(이)는 젖은 타월이 서서히 마르면서 펴지듯이 나의 본성을 찾아주었다. 이는 10년이 넘게 한 분야에서 일했다. 어느 날 몸담고 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다. 따르는 후배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 자본가를 찾아 거리를 헤맸다. 세상은 보잘 것 없는 얇은 옷이라도 벗어던지면 가혹하리만큼 차갑고 매서운 시베리아다.
드디어 올해 초 ‘물주’를 찾았다. 회사는 다시 생명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물주’는 그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었다. 하지만 관계는 이미 ‘평등’이 아니라 ‘상하’로 바뀌었다. 몰랐던 지인의 다른 이면도 알게 되었고, 스트레스는 이를 점령했다. “결혼도 안 했는데 내가 늙어!” 외친다.
“아, 이제 좀 속이 후련해”
랍스터 카푸치노(왼쪽)와 저온 조리한 삼겹살과 항정살 듀오.
따스한 햇살이 오후의 창을 점령한 청담동 ‘비스트로 드 욘트빌’. 인상주의 화가들의 고즈넉한 점심이 연상될 만큼 우윳빛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시이오(CEO)가 나서서 사업을 구상하고 시작해야지, 사업 파트너들은 만나지도 않고”로 시작하는 이의 고충담이 시작되었다. 듣기만 했다. 간간히 추임새로 맞장구를 치고 포크질 사이로 격려도 했다. 이를 향해 귀를 활짝 열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식탁에서 일어날 때 이는 “아, 이제 좀 속이 후련하다”고 끝을 맺었다. 나는 다시 ‘여자’가 되었다.
‘비스트로 드 욘트빌’은 청담동이라는 위압적인 동네에서 그나마 소박한 향취를 풍기는 레스토랑이다. 무엇보다 ‘떠들기’ 좋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요리사는 토미 리다. 천재 요리사라고 불리는 토머스 켈러의 레스토랑 ‘더 프렌치 론드리’에서 일했다. ‘더 프렌치 론드리’가 얼마나 대단하냐면, 그 지겨운 미슐랭 별이 3개고, ‘레스토랑 매거진’(영국 잡지. 매년 전 세계음식전문가 800여 명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서 베스트 레스토랑을 뽑는다)이 여러 번 우수한 레스토랑으로 뽑았다.
수다도 수다지만 맛 공부 위해
‘더 프렌치 론드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내파밸리의 욘트빌이라는 마을에 있다. 이 마을은 3층 이상의 건물을 거의 없을 정도로, 겉에서 보면 소박한 시골 동네지만 사실은 은퇴한 부유한 미국 노인들이 주로 찾는 고급 동네다. 올해 초 출장 때문에 욘트빌을 찾았다. ‘더 프렌치 론드리’도 방문했다. 맛을 봤냐고? 한 달 전에 예약이 끝났다.
‘더 프렌치 론드리’가 주는 감동은 명성이나 예약률이 아니었다. 레스토랑 건너편에 밭이 있었다. 각종 식재료가 재배되고 있었다. 음식의 재료를 건강하게 키우고 빨리 가져와 신선하게 요리하는 방식이 감동을 주었다.
이날 이와는 수다도 수다지만 2009년 11월에 문을 열어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비스트로 드 욘트빌>의 맛을 공부하기 위해 찾았다. 우리는 ‘랍스터 카푸치노’, ‘씨저 샐러드’, ‘가리비 무스를 채워 넣은 닭고기’, ‘저온 조리한 삼겹살과 항정살 듀오’를 먹었다. 샐러드는 신선했고 닭고기는 바삭했고 삼겹살은 은근했다. (‘비스트로 드 욘트빌’ 02-541-1550)
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맛 기자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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