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년 새 중견 출판사들의 시집 시리즈 출간 열기가 뜨겁다. 지난 7월26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시 코너에서 한 독자가 시집을 읽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한겨레21 922호
[표지이야기] ‘MB 시대’ 사회에 대해 쓰고 발언하는 시인 늘고 몇년 새 시집 시리즈 출간도 다시 뜨거워진 ‘시의 시대’… ‘외계어 쓰는 괴기한 청년들’로 여겨지던 미래파 시인 등 참여하는 시와 정치의 이종격투
시가 돌아왔다. 정치라는 이종의 파트너를 동반하고서. 시의 귀환을 고지하는 신호음이 들려온 건 서울 한복판에서 생사람 6명이 타죽은 2009년의 그 사건 무렵부터다. 오랜 기간 언어 자체와 감각적 내면세계로 침잠해온 시는 다시 바깥의 현실로 눈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시는 지금 정치라는 괴물과 이종격투 중이다.
역사시대를 통틀어 언어예술의 궁극으로 추앙받아온 시이지만, “견고한 모든 것을 대기 속에 녹여버리고, 신성한 모든 것을 세속화하며”(마르크스) 등장한 자본주의적 근대는 불행히도 시의 시대가 아니었다. 이 범속하고 파편화된 산문적 현실을 황홀한 뮤즈의 언어로 기술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모한 일이었다. 그래서 근대문학의 월계관은 소설의 몫이었다. 신이 떠나버린 시대의 서사시. 이 최고의 헌사가 소설의 제단 앞에 바쳐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예언자가 필요한 시대, 시의 귀환
물론 예외적 순간이 있었다. 직설적인 산문의 언어가 억압당할 때, 산문이 감당하기 버거운 예언자의 구실이 문학에 요청될 때, 현실은 어김없이 시의 언어를 호출했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유럽, 10월혁명 어간의 러시아처럼 1980년대 한국이 그런 경우였다. 그 시절 풍미한 시는 대체로 선언문이거나 격문, 그도 아니면 정치적 비의(秘意)들로 가득 찬 암호문의 형태를 띠었다. 예컨대 이런 시들. “낫 놓고 ㄱ(기역)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모가지를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김남주 ‘종과 주인’) “김종수 80년 5월 이후 가출/ 소식 두절 11월3일 입대 영장 나왔음/ 귀가 요 아는 분 연락 바람 누나/ 829-1551// …/ 나는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눈다”(황지우 ‘심인’)
황지우·이성복·최승자·김남주·박노해·기형도 같은, 뚜렷한 개성과 명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들이 도처에서 쏟아져나왔다. 소재와 주제, 시어와 형식 면에서도 다양한 파격과 실험이 감행됐다. 억압과 금기, 폭력과 저항으로 얼룩진 1980년대를, 한국문학사는 그래서 ‘풍요로운 시의 시대’로 기록한다. 1985년에 나온 16인 공동 시집 <그대가 밟고 가는 모든 길 위에>(창작과비평사)의 엮은이들은 이렇게 적고 있다. “발표 지면의 증가와도 관련 있는 것이지만, ‘시의 풍요시대’라 할 정도로 많은 양의 시들이 쏟아져나와 독자들에게 ‘곧바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시단 현실이다.”(신경림·이시영)
그로부터 사반세기. 지금을 다시 ‘시의 시대’로 명명할 수 있다면 대체 무슨 근거에서인가. 유의할 대목은 1980년대처럼 시 출판시장이 양적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온 것은 아니란 점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연도별 시집(국내) 납본 현황을 보자. 1999년 처음으로 1천 종을 넘어선 납본 종수는 1170종(2002년), 1268종(2004년), 1302종(2006년), 1542종(2008년)으로 늘다가 2009년 정점(1586종)을 찍은 뒤 최근 2년간 1500종대 초반(2010년 1519종, 2011년 1516종)에 정체돼 있다.
‘시의 귀환’을 얘기하는 쪽은 출간 종수나 판매량보다 최근 1~2년 새 부쩍 뜨거워진 중견 출판사들의 시집 시리즈 출간 열기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문예중앙과 문학동네는 지난해 초 시선집 출간을 재개했다. 두 출판사는 시 출판시장의 위축과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수년간 시인선(詩人選) 출간을 중단했었다. 원미선 문예중앙 편집장은 “시집 출간 자체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지만, 시인선의 보유 여부가 출판 행위의 진정성과 출판사의 네트워킹 역량을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하는 현실을 무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두 출판사 외에 시집 시리즈가 없던 열림원이 지난해부터 시인선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과학 출판에 주력해온 나남출판 역시 시집 출간을 타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저 문학 출판사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창비와 함께 시집 출판의 양대 산맥으로 꼽혀온 문학과지성사는 1년에 12~15권 내던 시집 종수를 20권 안팎으로 늘렸다. 이근혜 편집장은 “2000년대 후반을 지나며 젊은 작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기성 시인들도 시집을 내는 주기가 짧아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낀다”고 말했다. 시리즈를 좋은 시인들의 작품으로 채우기 위한 출판사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신인들이 등단 이후 첫 시집 출간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등단 12년차를 맞은 한 시인은 “2000년대 초만 해도 2~3년이 걸리던 기간이 10개월~1년으로 단축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출판사들이 시인선 출간에 관심을 갖는 것은 시가 문학시장에서 갖는 상징성 때문만은 아니다. 단기 수익성은 소설이나 다른 인문서에 비해 떨어지지만, 예민한 언어감각을 지닌 시인 필자를 확보해두면 언제든 소설이나 에세이, 역사물 같은 ‘돈 되는’ 산문의 필자로 활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이같은 출판사 간의 영입 경쟁이, 문학적 역량 검증이 끝나지 않은 신인들의 졸작을 남발한다고 꼬집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감성과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에게 달라진 출판시장의 현실은 모처럼 활짝 열린 기회이기도 했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배후는 문학이다”
2~3년 전부터 30~40대 시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시와 정치’를 둘러싼 논의 역시 2000년대 시문학 시장의 팽창기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문학적 실험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이 시인들의 작품은 1980년대의 사회성 짙은 시나 90년대 서정시와는 다른 차원의 감수성과 시학을 선보였다. 황병승, 김언 같은 이들의 시가 그런 경우다. 이들은 “나의 또 진짜는 항문이에요/ …/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봐요”(황병승 ‘커밍아웃’의 일부) 같은 분열증적 고백이나, “가능하다. 물끄러미 서 있는 너희 두 사람이 내 아버지다. 가능하다. 죽은 사람과 말하는 돌에 대해서 쓸 생각이었다. 가능하다. 내 말은 뼈를 부러뜨리고 나온다.”(김언 ‘가능하다’의 일부)라는 식의 ‘불가능한 가능’을 기괴하고 환상적인 방식으로 그려내 스캔들을 일으켰다.
한 평론가에 의해 이 시인들은 ‘미래파’란 기호로 호명됐다. 이들이 쓴 시는 중언부언, 리듬의 소멸, 그로테스크, 시적 자아의 분열 등을 공통의 특징으로 보유했다. 의미의 가독성을 회피(파괴)하는 과격한 언어 실험에 대한 전략적 집착은 20세기 초반 유럽 아방가르드 시인들의 그것에 비견될 만했다. 시단의 평가는 엇갈렸다. 낡은 관습과 문법을 뛰어넘는 ‘새롭고, 진화한, 환상적 서정’이란 찬사가 있었는가 하면, 이들의 시 세계가 지닌 자폐성과 난해함, 비현실성을 꼬집는 평자도 있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이들이 주도한 시단의 미학적 지형마저 일거에 뒤흔들어놓았다. 그해 여름의 촛불시위를 분기로 인터넷 여론과 방송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강화되고 검경으로 상징되는 강압적 치안기구가 통치의 전면으로 부상하자, 예민한 시인들은 시와 정치라는 고전적 화두를 붙들고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여기엔 2008년 겨울, 시인 진은영이 계간 <창작과 비평>에 쓴 ‘감각적인 것의 분배-2000년대 시에 대하여’란 글이 발화점을 제공했다. 논쟁은 <창작과 비평> 지면을 벗어나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 <세계의 문학> 같은 주요 계간지와 비평지, 학술토론회 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논쟁의 와중에 용산 참사(2009년 1월)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2009년 5월)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한 평론가의 제안으로 작가들이 모였다. 이들의 상당수는 기성 문단에서 ‘외계어를 쓰는 괴기한 청년들’로 낙인찍힌 미래파 시인이었다. 이들은 6월9일 서울 대한문 앞에 모여 ‘6·9 작가선언’을 발표했다.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담담하게 시작된 선언은 다음과 같은 비장한 다짐으로 마지막 구두점을 찍었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시의 귀환’을 얘기하는 쪽은 출간 종수나 판매량보다 최근 1~2년 새 부쩍 뜨거워진 중견 출판사들의 시집 시리즈 출간 열기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문예중앙과 문학동네는 지난해 초 시선집 출간을 재개했다. 두 출판사 외에 시집 시리즈가 없던 열림원이 지난해부터 시인선 출간을 준비 중이다.
주도세력, 1970년생 시인 3인방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간 시인들은 “이곳은 용산참사역입니다”란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여름 내내 번을 서듯 시위를 이어갔다. 시인들의 전투는 용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해가 바뀌자 또 다른 강제철거 예정지인 홍익대 앞 두리반과 명동 마리가 시인들의 전장이 됐다. ‘말의 전사’들은 그 참담한 탐욕의 폐허 위에서 영감을 구하고 시를 읽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간 부산에선 1만 명 넘게 모인 광장의 군중이 그들의 시 ‘크레인에서 태어난 인간’을 경청했다. ‘시의 전투’는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와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한창인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젊은 시인들의 ‘순회 투쟁’을 주도한 것은 비교적 연장자 축에 드는 1970년생 시인 3인방(김선우·심보선·진은영)과 노동자 시인 송경동이다. 3인방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이들의 정서 밑바닥에 1980년대의 경험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그 시절의 정치시와는 생경한 감성과 문법으로 지극히 정치적인 시를 쓴다는 점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운동권 출신이다. 김선우는 1990년대 초 학생노동문학위원회라는 학생문예조직에서 활동했다. 심보선과 진은영은 1992년 민중후보 백기완 대통령선거운동본부에 선전활동가로 몸담았다.) 물론 세 사람의 시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1996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김선우는 섬세한 서정이 돋보이는 여성적인 시를 쓴다. 느껴지는 미감이 부드럽고 말랑하다. 1994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해 두 권의 시집을 낸 심보선에겐 삶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고 진솔한 일상어로 풀어낸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지난해 8월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은 1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진은영은 셋 가운데 가장 전위적이다.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그는 읽는 이의 상투적 감각 체계에 충격을 가하는 낯선 언어를 구사한다. “의미의 문법을 교란시켜 이미지의 비문법을 창조”(김영희)하는 방식이다. 평론가 이명원의 말을 빌리면, 심보선·진은영은 “시와 정치의 접속을 가장 심도 있게 고민하는 시인들”이다. 이들은 이미 2000년대식 정치시의 새로운 전범을 선보인 바 있는데, 쌍용차 해고자의 잇따른 죽음을 애도하는 ‘스물세 번째 인간’(심보선)과, 용산 참사를 빚어낸 권력자의 적반하장과 후안무치를 알레고리 화법을 차용해 야유하는 ‘오래된 이야기’(진은영)가 그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사람을 죽였대”라는 전언체로 시작하는 ‘오래된 이야기’는 이 작품을 ‘올해의 좋은 시’로 뽑은 평자조차 “작가가 왜 썼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만큼 첨예하게 비의적이지만, 안에 담긴 메시지는 노골적일 만큼 정치적이다. 2000년대 중반 미래파의 실험에서 최근의 ‘미학적 정치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다다(Dada)에서 초현실주의로 나아간 20세기 유럽 아방가르드 운동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910년대 중반에 출현한 다다가 도발과 실험, 파괴가 갖는 미학적 효과 자체에 집중했다면, 1920년대 중반의 초현실주의는 다다의 미학을 정치적 전위(사회주의)와 어떻게 조우시킬지, 새로운 예술로 삶의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했다. 초현실주의에 이르러 미학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의 ‘역사적 마주침’이 이뤄졌던 셈인데, 그 접속을 가능케 한 것은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대공황이라는 파국적 사건이 결합해 빚어낸, 정세의 ‘희귀한 역동성’이었다.
젊은 시인들의 ‘순회 투쟁’을 주도하는 것은 비교적 연장자 축에 드는 1970년생 시인 3인방(김선우·심보선·진은영)과 노동자 시인 송경동이다. 3인방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이들의 정서 밑바탕에 1980년대의 경험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그 시절의 정치시와는 생경한 감성과 문법으로 지극히 정치적인 시를 쓴다는 점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가능한 불가능’
역사의 진술이 이러하니, 미학적 정치시를 향한 젊은 시인들의 분투가 어떤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시인들 스스로도 확언하지 못한다. 시인들을 둘러싼 정세는 아라공과 브르통이 활동하던 전간기(戰間期) 유럽은 물론, 황지우와 박노해가 시를 쓰던 1980년대 한국에 비해서도 혁명적이거나 역동적이지 않은 탓이다. 시인들은 그래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능한 불가능’의 지평을 열어젖히기 위해,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진은영 ‘나에게’) 서로를 독려하며, 머리와 가슴이 아닌 온몸으로 시대의 곤경과 대결하려 한다. 반세기 전 이 땅의 위대한 전위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김수영 ‘시여 침을 뱉어라’, 1968년)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2009년 12월 '작가선언 6.9' 주최로 서울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열린 헌정문집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 입니다> 출간 기념회에서 작가 권여선, 평론가 이선우·함돈균씨(왼쪽부터)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시의 귀환’을 얘기하는 쪽은 출간 종수나 판매량보다 최근 1~2년 새 부쩍 뜨거워진 중견 출판사들의 시집 시리즈 출간 열기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문예중앙과 문학동네는 지난해 초 시선집 출간을 재개했다. 두 출판사 외에 시집 시리즈가 없던 열림원이 지난해부터 시인선 출간을 준비 중이다.
주도세력, 1970년생 시인 3인방 참사의 현장으로 달려간 시인들은 “이곳은 용산참사역입니다”란 글귀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여름 내내 번을 서듯 시위를 이어갔다. 시인들의 전투는 용산에서 멈추지 않았다. 해가 바뀌자 또 다른 강제철거 예정지인 홍익대 앞 두리반과 명동 마리가 시인들의 전장이 됐다. ‘말의 전사’들은 그 참담한 탐욕의 폐허 위에서 영감을 구하고 시를 읽었다. 희망버스를 타고 내려간 부산에선 1만 명 넘게 모인 광장의 군중이 그들의 시 ‘크레인에서 태어난 인간’을 경청했다. ‘시의 전투’는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와 해군기지 반대투쟁이 한창인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젊은 시인들의 ‘순회 투쟁’을 주도한 것은 비교적 연장자 축에 드는 1970년생 시인 3인방(김선우·심보선·진은영)과 노동자 시인 송경동이다. 3인방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이들의 정서 밑바닥에 1980년대의 경험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그 시절의 정치시와는 생경한 감성과 문법으로 지극히 정치적인 시를 쓴다는 점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세 사람 모두 운동권 출신이다. 김선우는 1990년대 초 학생노동문학위원회라는 학생문예조직에서 활동했다. 심보선과 진은영은 1992년 민중후보 백기완 대통령선거운동본부에 선전활동가로 몸담았다.) 물론 세 사람의 시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1996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김선우는 섬세한 서정이 돋보이는 여성적인 시를 쓴다. 느껴지는 미감이 부드럽고 말랑하다. 1994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해 두 권의 시집을 낸 심보선에겐 삶에 대한 성찰을 진지하고 진솔한 일상어로 풀어낸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지난해 8월에 나온 그의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은 1만 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진은영은 셋 가운데 가장 전위적이다.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그는 읽는 이의 상투적 감각 체계에 충격을 가하는 낯선 언어를 구사한다. “의미의 문법을 교란시켜 이미지의 비문법을 창조”(김영희)하는 방식이다. 평론가 이명원의 말을 빌리면, 심보선·진은영은 “시와 정치의 접속을 가장 심도 있게 고민하는 시인들”이다. 이들은 이미 2000년대식 정치시의 새로운 전범을 선보인 바 있는데, 쌍용차 해고자의 잇따른 죽음을 애도하는 ‘스물세 번째 인간’(심보선)과, 용산 참사를 빚어낸 권력자의 적반하장과 후안무치를 알레고리 화법을 차용해 야유하는 ‘오래된 이야기’(진은영)가 그것이다. “옛날에는 사람이 사람을 죽였대”라는 전언체로 시작하는 ‘오래된 이야기’는 이 작품을 ‘올해의 좋은 시’로 뽑은 평자조차 “작가가 왜 썼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할 만큼 첨예하게 비의적이지만, 안에 담긴 메시지는 노골적일 만큼 정치적이다. 2000년대 중반 미래파의 실험에서 최근의 ‘미학적 정치시’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다다(Dada)에서 초현실주의로 나아간 20세기 유럽 아방가르드 운동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910년대 중반에 출현한 다다가 도발과 실험, 파괴가 갖는 미학적 효과 자체에 집중했다면, 1920년대 중반의 초현실주의는 다다의 미학을 정치적 전위(사회주의)와 어떻게 조우시킬지, 새로운 예술로 삶의 내용과 형식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했다. 초현실주의에 이르러 미학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의 ‘역사적 마주침’이 이뤄졌던 셈인데, 그 접속을 가능케 한 것은 세계대전과 러시아혁명, 대공황이라는 파국적 사건이 결합해 빚어낸, 정세의 ‘희귀한 역동성’이었다.
젊은 시인들의 ‘순회 투쟁’을 주도하는 것은 비교적 연장자 축에 드는 1970년생 시인 3인방(김선우·심보선·진은영)과 노동자 시인 송경동이다. 3인방이 특별히 주목받는 것은 이들의 정서 밑바탕에 1980년대의 경험이 무겁게 자리잡고 있음에도, 그 시절의 정치시와는 생경한 감성과 문법으로 지극히 정치적인 시를 쓴다는 점 때문이다.
송경동 시인은 최근 2~3년 새 젊은 작가들의 '순회 투쟁'을 주도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송 시인이 2010년 10월 서울 금천구 기륭전자 옛 공장 앞에서 굴착기 위에 올라 용역들의 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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