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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갔다가 몸이 나아 왔어요”

등록 2012-06-26 16:20

지난해 7월30일 3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던 시민들이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풍등을 날리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말처럼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불꽃 같은 이들이 긴 밤을 밝혔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지난해 7월30일 3차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던 시민들이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풍등을 날리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말처럼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불꽃 같은 이들이 긴 밤을 밝혔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한겨레21 916호
[특집2] 적극적 사회참여자 된 정상수·손지후씨… ‘모호한 존재’들의 출현,
희망버스 1년 여전히 희망은 있다

“깜깜절벽, 절해고도. 세상이 깊은 바닷속이다. 한두 모금 숨 쉴 용량만 남은 산소통 같은 트윗은 불안하다. 오늘밤도 길 건너편 보도블록 위에 앉아 긴긴밤을 밝히는, 누가 부르지 않아도 오는 저들. 불꽃 같은 사람들.”(2011년 6월30일 김진숙의 트윗)

일찍이 경험 못한 감동과 전율

어느새 1년이다. 인적 끊긴 남쪽 바닷가, 35m 높이의 ‘철방’(鐵房)에서 날아든 단문의 메시지가 ‘깊은 바닷속’ 같던 세상을 휘저어놓았다. 트위터가, 김진숙이 아니었으면 ‘한진’을 그저 이름난 택배회사쯤으로 여겼을 장삼이사들이 버스를 나눠타고 남쪽으로 떠났다. 정상수(32)·손지후(37)씨도 그랬다. ‘저 가녀린 김진숙을 죽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안타까움에 부산행을 결행한 두 사람이었지만, 버스가 조선소 초입의 영도다리에 이르도록, 자신들의 여행이 이후의 삶에 가져올 변화를 예감하지 못했다.

“형·누나들하고 놀러간다는 기분이었어요. 공장 담벼락에서 김진숙씨한테 힘내라고, 손이나 흔들어주고 오려 했죠.” 서울의 통신회사 관리직으로 일하는 정상수씨는 지난해 6월11일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들과 함께 다녀온 1차 희망버스 행사를 잊지 못한다. 크레인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응원을 한 뒤 돌아갈 채비를 서두를 즈음, 공장 담벽 위에서 사다리가 내려왔다. “다들 머뭇거렸어요. 위에선 올라오라고 손짓하는데, ‘어, 이게 뭐야? 정말 들어가도 되나?’ 하는, 학습된 경계심이 발동한 거죠.”

극적으로 진입한 공장 안에서 정씨는 김진숙의 육성을 듣고, 한진 조합원,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어울리며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감동과 전율을 느꼈다. “인간의 자존감이랄까, 뭔가 위대해진다는 느낌 같은 거. 그런 감정이 막 밀려들더라고요.” 1차 희망버스를 다녀온 뒤 그는 김진숙과 ‘한진 형님들’을 만나러 한 달에 두 번꼴로 주말을 이용해 부산을 찾았다. 여름휴가도 부산에서 보냈다. 7월 한진 조합원들이 서울 정동 금속노조 사무실에 머물며 상경투쟁을 벌일 때는 아예 짐을 옮겨 조합원들과 동거를 했다. “처음엔 하룻밤만 자고 간다는 생각이었죠. 근데 부천 집에서 압구정동 회사까지 출퇴근하느니, 차라리 정동에서 형님들하고 함께 먹고 자는 게 낫겠더라고요.” 두 달을 지내자, 금속노조 상근자들이 정씨를 한진 조합원으로 오해할 정도가 됐다.

희망버스와 한진 조합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확장된 ‘낮은 곳을 향한 관심’은 쌍용차와 광주 인화학교 등 또 다른 현안들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어졌다. 11월엔 홍익대 청소노동자 지원 활동과 희망버스를 통해 알게 된 지인 몇 사람과 인화학교 장애학생들을 서울로 초청해 조촐한 위로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힘들지 않냐고요? 부산을 오가며 노숙을 하고, 집 나와 한진 형님들과 한뎃잠을 자고, 평택 와락센터로, 대한문 분향소 앞으로 분주히 오가는 사이, 신기하게도 아팠던 몸이 정말로 건강해졌어요.” 2008년 교통사고를 겪은 뒤 해마다 한 차례씩 심하게 앓아왔다는 정씨는 “저야말로 희망버스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한 케이스”라며 밝게 웃었다.

“힘들지 않냐고요? 부산을 오가며 노숙을 하고, 집 나와 한진 형님들과 한뎃잠을 자고, 평택 와락센터로, 대한문 분향소 앞으로 분주히 오가는 사이, 신기하게도 아팠던 몸이 정말로 건강해졌어요.”-1차 희망버스 참가자 정상수씨

나는 누구인가, 시민인가 노동자인가

서울 고덕동의 입시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손지후씨는 후원하는 인권단체 웹메일을 통해 김진숙과 한진을 알게 됐다. 손씨는 자신이 희망버스를 타게 된 것을 “부채감 때문”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때 부산의 한 청소년 단체 강연회에서 김진숙씨를 처음 봤어요. 같은 여자로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 김진숙을 20년 만에 웹메일에서 보게 된 거죠. ‘저분은 지금도 저리 치열하게 사는구나. 나는 뭔가.’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주말에 여럿이 버스 타고 간다기에 덜컥 신청을 해버렸죠. 그렇게라도 미안함을 덜고 싶었어요.”

희망버스는 벅찬 감동 못잖게 무거운 생각거릴 안겨줬다. ‘나는 누구인가. 시민인가, 노동자인가. 내가 도우려고 왔다는 저들과 나는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 쌍용차, 재능교육, 콜트·콜텍 등 부당해고에 맞서 길고 외로운 싸움을 벌여온 노동자들의 모습이 비로소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몇 번 더 부산을 다녀온 뒤 생각을 굳혔어요. 이 살벌한 현실을 견디려면 아프고 힘든 사람끼리 돌보고 사랑하며 연대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런 깨달음을 얻느라 그가 지불한 대가는 작지 않았다. 불법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소환장이 날아온 것이다. “공장에 진입하려고 경찰과 몸싸움하는 분들에게 물병을 가져다준 것밖에 없는데, 그게 채증된 모양이에요.” 소명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벌과금 200만원을 납부해야 할 처지다. 하지만 검찰 소환은 정당한 공권력의 행사 범위와 시민적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우는 계기도 됐다. “국가의 역할이 뭔지에 대해 고민하며 2009년 용산 참사 희생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내가 힘을 보탤 현장이 용산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게 된 거죠.”

용산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 <두 개의 문> 개봉 소식을 접했다. 이거다 싶었다. 얼마 전부터 트위터 팔로어와 지인들을 상대로 영화 보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영화 관람 번개모임을 계속 제안할 겁니다. 남들이 볼 땐 별 게 아닌 활동이지만, 지금 내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적잖은 언론과 분석가들이 ‘김진숙 하나 살린 것 말고 얻어낸 게 없다’며 희망버스의 성과를 축소하거나, ‘희망버스는 중산층의 자기치유를 위한 여행이자 자기인정 욕구의 발현이었다’며 운동의 계급적 한계를 부각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경험은 이 운동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사례로 주목할 여지가 충분하다. 2011년 미국 점거(occupy) 운동에 대한 관찰기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를 펴낸 고병권 전 수유너머 대표는 “희망버스 운동에 대해 성공이냐 실패냐를 따질 게 아니라, 이 운동이 무엇을 보여주었는지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볼 때 희망버스는 미국의 점거운동과 마찬가지로 ‘모호한 운동’이다.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게 아니라, 하나의 운동 범주로 구획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학자금 대출이자 상환의 고통을 호소하는 대학생, 고율의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감당 못해 집을 뺏긴 가장, 정리해고로 퇴출된 금융회사 직원 등 미국의 점거운동 현장에선 다양한 참가자의 사연이 쏟아져나왔다. 사연이 다른 그들을 하나로 공동행동으로 묶어낸 것은 ‘처지에 대한 공통 감각’이었다. 이런 양상은 한국의 희망버스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미국 ‘아큐파이’와 비슷한 양상

처지에 대한 공감을 가능케 한 동인은 무엇이었을까. 고 전 대표는 ‘모호한 존재들’의 출현에서 찾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구조조정이 영속화하고 비정규직이 급증해 고용 노동자도, 실업자도 아닌 존재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운동 영역에도 ‘모호한 지대’가 출현했고, 그 영역의 모호함이 역설적으로 ‘공감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희망버스에 참여한 사람들의 계급적 지위나 참여 동기는 중요치 않다. 고 전 대표는 말한다. “운동에 참여할 땐 누구도 혁명가가 아니다. 중산층의 인정 욕망도 분명히 있다. 중요한 건 참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방식의 변화다. 희망버스 이후 사람들이 여전히 ‘모두들 부자 되세요’라는 10년 전 덕담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김진숙과 희망버스가 없었어도 민주당이, 심지어 새누리당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됐을까.”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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