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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귀족주의자의 길

등록 2012-05-02 14:36

&raquo; <한겨레21> 박승화
» <한겨레21> 박승화
한겨레21
[사람과 사회]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쓴소리 도맡은 이상돈 중앙대 교수… 4대강, 민간인 사찰 등 매섭게 비판한 보수적 자유주의자의 태도의 일관주의

그는 모순을 회피하지 않았다. 미국 법학자 알렉산더 비켈은 진보주의자였다. 1971년 <뉴욕타임스> 1면에 특종 기사가 실렸다. 베트남전 개입을 결정한 국방부 기밀문서였다. 정부는 간첩죄 혐의로 <뉴욕타임스>를 기소했다. 예일대 법대 교수였던 비켈은 언론 자유를 옹호했고 승소를 끌어냈다. 동시에 비켈은 사법 보수주의자(소극주의자)였다. 1950년대까지도 미국의 여러 주에서 흑인과 백인 어린이의 학교를 분리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흑인민권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대법원은 주정부의 흑백분리교육법이 수정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진보주의자 비켈은 이 진보적 판결을 비판했다. 그는 1961년 저서에서 ‘반다수결주의의 문제’(counter-majority difficulty)를 제기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판사가 다수의 의사를 반영해 의회가 만든 법률을 무효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설령 대법원 판결이 진보적일지라도 말이다. 진보주의자 비켈은 단기적인 진보적 열정이 장기적으로 보수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모순의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보수에게서 욕먹은 보수주의자

비켈을 사상의 은사로 생각하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는 최근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긴장이 풀린 거죠, 뭐.”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는 연신 냉수로 목을 헹궜다. 지난 4월18일 오전 11시 서울 흑석동 중앙대 법과대학 11층 연구실을 봄 햇살이 비췄다. 인터뷰를 시작해서도 다른 기자에게서 총선 결과에 대한 견해를 묻는 전화가 줄이었다. 이 교수는 김종인(72) 전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개혁의 상징이었다.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하며 친이계 인사,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맡았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 등의 공천을 공공연히 반대했다. 보수 진영으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다. 그런데 이겼다. “야권이 기대보다 못한 거죠. 지역적으로 (새누리당이) 인천에서 선전했고요. 인천 지방재정(실패)이 안상수 전 시장 덕분이잖아요. 별명이 ‘인천 두바이’였잖습니까. 그래서 (6·2 지방선거 때) 시장, 구청장, 시의원 죄다 갈았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2년 지나고 보니 별로 해결을 못했어요. 강원도와 충북은 의외로 좋았고, 서울 몇 군데에서는 김용민씨 덕분에 몇 석 얻은 것 같고요.”

기자가 ‘야권과 시민단체는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새누리당 공천에 여전히 비판적’이라고 하니, 그는 한계를 솔직히 인정했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쇄신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두세 명이라도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됐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 사퇴로 이어진 거죠. 왜 안 됐느냐는… 추측만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브루투스 너마저’라고 했던 사람들이 로비한 것 아닙니까? ‘새누리 너마저’라는 재계의 위기감이 좀 있지 않았나… 그 정도만 합시다.”

패배한 한국의 진보 진영은 비리 의혹이 영원히 묻힐 것이라며 좌절하고 있다. 이렇게 물었다. ‘야권이 의회권력을 쥐었을 때처럼 박근혜 위원장이 BBK 의혹과 4대강 사업을 철저히 청산할까요?’ 이 교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김영삼 정부가 5~6공 청산을 했잖아요. (제대로 청산할지) 그건 몰라요. 결국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이상돈 교수는 전쟁 뒤 서울 종로에서 자랐다. 경기중·고를 나와 1970년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미국 튤레인대학에서 환경을 전공했다. 1983년부터 중앙대 법대에서 가르친다. 여기까지가 그의 공식적인 학력이다. ‘진영 논리를 깨는 논객’ 이상돈의 이름은 그 이후부터 알려지게 된다. 1990년대 중반 <한겨레> 등 여러 매체에 환경 칼럼을 써온 이 교수는 참여정부 때 ‘보수논객’으로 처음 알려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 <조선일보> 등에서 사립학교법과 종합부동산세, 행정수도 이전 등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법학자 양심으로 4대강 반대 앞장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2011년 12월30일치 신문 사설에서 이상돈 교수를 향해 “비대위가 이렇게 막 나가서는 제 발로 돌부리를 차게 된다”고 막말을 했다. 이 교수가 ‘현 정권의 주류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겨냥한 글이었다. 몇 년 사이에 이 교수와 <조선일보> 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그는 유명한 4대강 사업 반대론자다. 4대강 사업 논란, 종합편성채널 논란에 대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실명으로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문화방송 기소, 민간인 사찰 등 여러 이슈에 대해 날을 세웠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지식인으로 반대 목소리는 낼 수 있지만 소송은 또 다릅니다. 소송까지 하게 만든 에너지가 대체 뭡니까?’라고 물었다. “당시 제가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이었습니다. 인문사회과학 교수로 처음 위원이 되었습니다. 전문성으로 된 거죠, 노무현 정권 때니까요. 제가 언제 참여정부를 좋아한 적 있습니까. 그래서 그걸(4대강 사업) 주의 깊게 봐왔습니다. 대운하 공약이 취소된 뒤 별안간 4대강 사업으로 바뀌더군요.” 그는 녹색 넥타이를 만지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달 사이에 강변 건설이 확 줄고 보가 생겼단 말이에요. 2009년 7월 말∼9월 초의 한 달 반 사이에. 제가 누구보다 잘 아는 거 아닙니까. 무엇이 잘못됐는지.” 법학자로서 법적 절차가 무시된 사실을 묵과하기 어려웠다.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종교인과 소송을 수행할 변호사까지 직접 조직했다. “돕기로 한 변호사가 ‘교수님 안 하면 저도 안 한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했죠.”

이상돈 교수의 외할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기록되는 고희동(1886~1965) 화백이다. 외증조부는 구한말에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고영철이다. 고희동은 조선 왕실의 프랑스어 통역관이었으나 나라가 망하자 미술 유학을 떠나 화가가 됐다. 이 교수의 집안은 비유하자면 대대로 청와대에 근무해온 ‘고위 공무원 가문’인 것이다. 이 교수는 최근 일제가 고위직을 제안하자 고희동 화백이 “차라리 굶을 것이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시사저널>에 소개했다.

이 교수에게 ‘소송까지 낸 것은 전문가의 자존심인가, 아니면 가족사에 영향받은 것인가’라고 묻자, 그는 잠시 테이블을 쳐다봤다. “친하게 지내는 전직 의원이 고희동 화백 기사를 보고 ‘이제야 당신이 이해된다’고 하더군요. (반일이) 외조부의 자존심이었죠. 그렇지만 (제 행동이) 그런 것은 아닌 듯하고 그저 그 시점에 4대강 사업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거죠.” 그는 “할 수 없이 했다”고 연신 겸손하게 말했다. “당시 학자들이 대부분 입을 다물었죠. 환경운동을 하는 진보 진영의 한 인사가 전화를 해서 ‘그래도 이상돈 교수가 4대강 사업 소송에 앞장서주니 우리가 좌파·빨갱이란 말 안 듣고 반대운동을 했다’고 하더군요.”

&raquo;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는 미국 공화당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의 관계를 예로 들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현 정부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겨레21> 박승화
» 이상돈 중앙대 교수(법학)는 미국 공화당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로널드 레이건의 관계를 예로 들며,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현 정부와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한겨레21> 박승화

보수적 신념과 행동 사이 모순 직시

이상돈 교수는 그의 블로그에 자신의 대학 시절에 대해 “서울대 법대를 다녔지만 고시 공부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고 썼다. 1976년 ‘미국 대법원과 사법적극주의’ 논문으로 석사를 받았다. 1980년 5·18이 일어나기 몇 달 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진보 대통령 지미 카터의 실험이 처절히 실패하고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된 시기였다. “1980년대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보수 중흥기입니다. 당시 영국 노동당과 지미 카터가 파탄 나는 걸 보며 재고한 거죠.” 그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를 자신을 규정하는 비교적 정확한 단어로 꼽았다.

사상의 은사를 물었다. 그는 정치인 로널드 레이건, 20세기 중반의 미국 보수주의 문필가 윌리엄 버클리, 법학자 알렉산더 비켈을 꼽았다. 셋 다 미국인이다. 미국에서 지켜본 민주당 카터 대통령의 실패가 그에게 짙은 지적 화인을 찍은 것으로 보였다. “비켈은 정치적으로는 진보주의였는데, 사법부와 관련해서는 보수적이었어요. 정치적 자유주의와 사법적 보수주의가 어떻게 엮이는지가 당시 제게 숙제였습니다.” 그가 “서울시장이 일자리를 창출할 책임이 있다고 보는 데 반대한다”(<경향신문> 대담 중)고 말할 때, 이 교수의 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 근처를 맴돈다. 그러나 을 기소한 검찰을 격렬하게 비판할 때 그는 철저한 자유주의자다.

<한겨레21>이 2009년 이상돈 교수를 ‘합리적 보수’로 꼽은 근거는 다른 데 있을 게다. 그건 신념의 내용보다 그가 신념을 삶에서 구현하는 태도다. 그는 사학법에 반대해 거리투쟁을 이끈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옹호할 때조차 자신의 보수적 신념과 행동 사이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의 지적 솔직함은 비켈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2008년 블로그에서 프랑스 대혁명에 반대했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를 근거로 들며 “명색이 보수주의자인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생명처럼 존중해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도 보수적 신념 때문에 의회 다수당이 대의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제정한 사학법, 신문법 등에 반대했다며 “노무현 정권 5년 내내 나는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했던 것인데, 촛불시위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진영의 다른 인사들도 이 점에선 나와 다를 바 없다”고 썼다. 그의 이런 지적 일관성은 같은 진영을 피하지 않는다. 재정건전성을 지상 과제로 삼아야 할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입을 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가족사로만 보면 이상돈 교수는 보수정당과 거리가 멀다. “제가 대학 2학년 때 유신이 있었습니다. 1971년 사법부 파동도 있었죠. 우리 같은 서울 토박이들은 다 민주당 지지 아닙니까, 하하. 우리 서울 사람은 이승만·박정희를 찍어본 적이 없습니다. 협의의 서울인 종로에서 유진오·윤보선이 다 된 것 아닙니까.” 기자가 ‘1987년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느냐’고 묻자 그가 웃으며 말한다. “제가 지금까지 찍은 후보는 한 번도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고만 해둡시다.”

귀족 없는 사회의 귀족주의

그가 ‘우리 서울 사람’이라는 표현을 쓸 때 문득 고희동 화백을 떠올렸다. 수도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지만 죽을 때까지 일제와 이승만 독재에 반대했고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도 아니었던, 어떤 태도의 완고함을 말이다. 이 교수는 ‘양반 의식’이라는 단어도 썼다. 그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거대한 엽관 정부’라고 표현한다. 거침없다. 이런 수사학의 행간에서 이성, 법치, 도덕적 품격을 강조하는 태도의 보수주의를 냄새 맡았다. 그런 태도가 이 교수에 대해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은 호평하지만 또 다른 진보 정치인은 “감정이 앞선다”고 평하게 만들었을 게다. 점심 식사를 하며 그는 박근혜 위원장과 “문화적 배경이 비슷하다”는 말도 던졌다. ‘그 문화적 공유가 좋은 의미의 귀족주의냐’라고 물었다. “그건 아니고…, 서울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았고 학번도 같고요.”

시인 황지우는 어느 글에서 대중사회에서 “정신적 귀족주의가 요청된다”고 썼다. 귀족사회는 거악이다. 그러나 귀족 없는 사회의 귀족주의는 때로 긍정적일 수 있다. 이 문장을 이상돈 교수에게 돌려줘도 된다고 보는 정치인이 적지 않을 듯하다.

*참고 문헌: <사람을 만나다 시대를 만나다>(경향신문사 펴냄), <조용한 혁명>(뷰스 펴냄)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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