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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1] 가치의 전쟁 ② 서울 강남을- 새누리당 김종훈 vs 민주통합당 정동영… 서로 불리할 것 없다고 여기는 한-미 FTA 이슈, 새누리당 ‘천국’ 지킬까 강남 좌파 새 시대 열까
마침내 만났다. 명분과 꿈을 좇아 험지로 북상한 자, ‘컴컴한 곳’ 강북을 피해 남으로 도강한 자. 이들이 맞닥뜨린 곳은 탄천과 양재천이 가로지르는 서울의 비옥한 남쪽 끝, 강남 벌판이다. 북상파 정동영과 도강파 김종훈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집권당 의장과 고위 통상관료로 처음 대면했다. 하지만 악연이 본격적으로 싹튼 건 18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문제가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한 2010년 하반기, 야당 상임위원(정동영·전북 전주 덕진구)과 정부 쪽 협상 책임자(김종훈)로 만난 두 사람은 협정의 절차와 실익 등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했다. 지난주 서울 강남을 지역구의 총선 대진표가 ‘민주당 정동영-새누리당 김종훈’으로 확정되자, 정치권과 언론이 ‘FTA 전도사 대 반대자’ 의 구도를 부각시킨 것도 두 사람의 이런 전사(前史) 때문이었다.
10% 뒤지고도 ‘해볼 만하다’ 여기는 이유
외견상 대통령 후보를 지낸 거물 정치인(정동영)과 관료 출신의 정치 신인(김종훈)이 맞붙는 일방 구도지만, 굴러가는 판세는 정반대다. 다른 곳도 아닌 ‘새누리당의 천당’ 강남이라서다. 이곳에선 1992년 14대 총선 이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3월22일 발표된 <국민일보> 조사도 이런 흐름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 조사에서 김종훈 후보는 52.0%의 지지도를 기록해 39.0%에 그친 정동영 후보를 13%포인트 차이로 넉넉히 앞섰다. 이틀 전인 3월20일 <동아일보> 조사에선 김종훈 39.2%, 정동영 30.5%였다.
눈길을 끄는 건 정 후보 쪽 캠프 분위기다. 10%포인트 넘게 지지도가 뒤져 있음에도 초조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지금의 격차는 역대 총선에서 드러난 지지율 격차에 견줘 눈에 띄게 양호한 편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곳에선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가 44%포인트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 대통령 탄핵 여파 속에 치러진 2004년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24%포인트 차이로 이겼고, 2000년 총선 때는 28%포인트 차로 민주당 후보를 압도했다. 캠프 관계자는 “13% 차이가 난 <국민일보> 조사도 한 달 전보다는 7%포인트 가까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로선 정 후보의 잇따른 ‘좌클릭’ 행보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온 진보 지식인 그룹이 확실한 우호세력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게 고무적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가 3월19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강남을에서 정동영과 김종훈 격돌! 한-미 FTA와 SSM(기업형 슈퍼마켓) 문제를 둘러싸고 혈전이 예상된다. 새누리 강세 지역이지만 공성진의 비리로 인한 의원직 상실 때문에 분위기 달라졌다. ‘강남 좌파’들, 도와줘야 한다!” 조 교수는 3월23일 서울 대치동 캠프 사무실에서 열린 토크쇼에도 참석해 정 후보를 지원했다.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경제평론가 우석훈 박사,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 정지영 영화감독 등도 토크쇼에 참석했거나, 참석을 약속한 상태다.
컴컴한 곳에서 단단한 곳으로 옮겨왔지만
정 후보 쪽과 달리 김종훈 후보의 캠프 분위기는 조용하기만 하다. 애초 공천됐던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가 과거사 발언 논란으로 낙마해 후보자 선정이 늦어진 탓도 있지만, 김 후보에 대한 당 안팎의 반응이 생각만큼 우호적이지 않은 점도 적잖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같은 당 정두언 의원은 김종훈 후보의 강남 출마설이 나돌던 지난 2월 초부터 “한-미 FTA에 대한 한나라당의 입장과 김종훈 출마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부정적 의견을 피력해왔다. 공천 확정 직후엔 “야당이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은 공천으로, 정권심판론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이상돈 비대위원)는 반응도 나왔다. 한-미 FTA를 적극 지지해온 <조선일보>조차 김 후보의 강남 출마에 직격탄을 날린 것도 부담이다. 신문은 3월19일치 사설에서 “김 전 본부장이 위험 부담이 따르는 강북의 ‘컴컴한 곳’을 피해 땅 짚고 헤엄치는 강남을에서 출마해 ‘FTA에 대한 심판을 받겠다’고 하니 듣는 사람조차 면구스럽다”고 일갈했다. 김 후보가 지난 2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강북 출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사회자에게 “어디 컴컴한 데서 (출마)하라고 하면…”이라며 내키지 않는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FTA 문제가 이번 선거전의 이슈가 되는 것에 대해 양쪽 다 불리할 게 없다는 셈법이다. 정동영 후보로선 FTA 협상 책임자인 김종훈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가 됨으로써 후보 대 후보, 당 대 당이 맞서는 지역 선거를 진영과 진영이 대결하는 전국 구도로 재편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경우 FTA에 반대하는 진보 진영 전체의 직간접적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 김종훈 후보에게도 ‘FTA 선거’ 구도는 손해될 게 없다. 한-미 FTA에 대한 이 지역의 찬성 여론이 다른 어느 곳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렇다. 김 후보가 지난 2월 강남 출마 의지를 내비치며 “단단한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중산층들이 많이 계시는 곳에서 (FTA에 대한) 판단을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치의 전쟁터’로 만들자는 의도”
문제는 ‘FTA 프레임’의 정치적 효과가 양쪽 모두에게 균등하진 않다는 점이다. 여론의 우세를 점하고 있는 김 후보 처지에선 이미 확보한 지지층의 결집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승세를 굳힐 수 있지만,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지지층의 크기를 키워야 하는 정 후보로선 선거전의 이슈가 FTA 문제로 고정되는 것이 마냥 유리하지만은 않다. 정 후보 쪽도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 캠프 관계자는 “굳이 강남을 선택한 것은 이번 총선을 단순한 ‘MB 심판’ 선거가 아니라, 진보의 가치로 유권자를 설득하는 ‘가치의 전쟁터’로 만들어보자는 의도”라며 “선거 기간 내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라는 정치적 청사진과 함께 경쟁과 효율 지상주의에 맞서는 ‘배려와 연대’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설파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의 선거 슬로건은 ‘다음 세대를 위한, 더 나은 가치’다(김종훈 후보는 3월23일 현재 미정).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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