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의 차별금지 항목에서 ‘성소수자·임신·출산’을 빼라는 보수단체의 압력에 맞서 성소수자들이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로비를 점거하고 있다.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한겨레21
[초점] 성적 지향과 평화 신념을 이유로 캐나다는 한국인 망명을 허용해도, 성소수자를 내모는 한국 사회 차별은 공고해
12월15일, 정욜씨는 농성장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인 그는 서울 종로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1층 로비를 점거한 채 농성을 하고 있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이 ‘훼손’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가 결성한 ‘학생인권조례 저지 범국민연대’는 학생인권조례에 차별금지 조항으로 명시된 ‘성소수자와 임신·출산’ 차별금지 조항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정욜씨는 성소수자 활동가 30여 명과 함께 의원회관 1층을 점거하고 학생인권조례 원안을 통과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초의 성소수자 점거농성이다.
합헌에 합헌을 더해 차별 강화
이날 캐나다 정부가 한국인 동성애자의 망명을 허용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캐나다 이민·난민심사위원회는 평화주의 신념과 동성애 성적 지향을 이유로 난민 지위를 신청한 김경환(30)씨에 대해 2009년 7월 “신청인이 고국으로 돌아가면 징집돼 군복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심각하다”며 난민으로 인정했다. 뒤늦게 알려진 소식은 정씨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남성동성애자인 그도 10여 년 전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해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에게 그가 동성애자라고 최초로 ‘커밍아웃시킨’ 사람은 군의관이었다. <한겨레> 등에 바탕하면, 김경환씨는 군대에서 상사한테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군부대 전체에 커밍아웃을 당하고 에이즈 검사를 강요당한 동성애자 병사의 기사를 보고 2006년 망명을 결심했다. 그것은 정욜씨의 사연과 다르지 않다.
같이 농성장을 지키는 이종걸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에게도 김씨의 사연은 낯설지 않다. 그도 최근 외국에 있는 한국인 남성동성애자들에게서 군형법 92조에 대한 영문 자료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몇 차례 받았다. 군형법 92조는 합의된 동성 간 성관계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가 속한 친구사이는 군형법 92조에 대한 위헌소송을 냈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합헌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에 망명한 김씨는 어릴 때 군부대 근처에 살며 겪은 고통과 이라크 침공을 보며 느꼈던 공포를 병역거부의 이유로 들었다. 역시 헌재는 지난 8월 병역거부자 처벌 근거가 되는 병역법 88조 1항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 정부는 한국군 안의 폭력과 동성애자 차별을 망명 인정의 근거로 들었다. 맥락을 살피면, ‘동성애자’ 정체성을 병역거부의 근거로 인정한 것이다. 실제 독일 등에서 성정체성은 병역거부 사유가 된다. ‘어찌하지 못할 내면의 목소리’인 양심에 성정체성도 포함하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병역거부자 중에도 동성애자가 적잖다. 지난 60년 동안 병역거부로 징역을 산 사람이 1만5천여 명이고, 현재도 900명 넘는 병역거부자가 수감돼 있다. 이렇게 압도적인 세계 최대의 병역거부자 수감국에서 평화적 신념을 가진 소수자는 법률에 의해 추방당하고 있다.
보수단체, 미국에 망명할 근거가 되다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점거농성은 며칠째 이어졌다. 서울시의회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의석의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보수 개신교계의 압력은 학생인권조례 원안을 흔들고 있다. 이미 경기도와 광주에서 통과된 학생인권조례에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금지가 명시돼 있지만, 유독 서울학생인권조례는 보수단체의 표적이 되었다. 미국을 사랑하는 보수단체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되는 걸 극렬 반대하지만,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은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망명의 사유가 된다. 한국의 보수단체가 미국에 망명할 근거가 되는 아이러니, 이렇게 내쫓긴 자들이 망명할 땅을 찾고 있다. 캐나다는 베트남전 당시 병역을 거부한 미국 젊은이 5만여 명이 자유를 찾아 떠난 병역거부자의 나라였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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