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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살아서 만나리라

등록 2011-08-09 13:50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한 지 200일째인 7월24일, 크레인 중간에 있는 4명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정홍형, 박영제, 박성호, 신동순씨.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한 지 200일째인 7월24일, 크레인 중간에 있는 4명이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정홍형, 박영제, 박성호, 신동순씨.
한겨레21
[초점] 85호 크레인 중간에서 김진숙을 지키는 한진중공업 중년 노동자들… ‘사천왕’으로 불리는 ‘영도의 4인’ 중에 맏형 박영제씨가 보낸 호소문

방울토마토가 먼저 내려왔다. 부산 영도에서 ‘생명, 평화, 그리고 소통을 위한 희망 시국회의 200’이 열린 7월24일, 35m 크레인 위에서 키운 방울토마토 3개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트위터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글을 남겼다. “100일 되는 날 올라와서 200일 되는 오늘 수확한 방울토마토입니다. 모진 바람과 투석전 같던 비와 살갗을 벗기는 햇살과 긴 시간의 불안과 폭력. 저 작은 알갱이에 우주가 담겨 있습니다. 방울토마토야 애썼다.”

김진숙씨가 85호 크레인에 올라가며 글을 남겼던 사람, 황이라씨는 내려온 3알의 방울토마토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들을 한참 들여다보며, 대체 무슨 맛이 날까… 생각했습니다. 100일 동안 희망이 그렇게 맺혔네요. 이 싸움도 곧 그렇게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그 열매는 또 무슨 맛이 날까요.” 김진숙씨와 같은 집에서 살았던 그는 그렇게 희망이 방울방울 맺히기를 고대한다.

7월26일에는 크레인 중간에서 편지가 내려왔다. 85호 크레인 중간에서 김진숙을 지키는 ‘영도의 4인’ 가운데 김진숙의 가장 오랜 동지인 박영제씨가 <한겨레21>에 편지를 보냈다. 그는 1986년 민주노조를 만들다 김진숙씨와 함께 해고됐다가 2006년 복직했다. 2003년 85호 크레인 위에서 일방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고공농성을 벌이다 목숨을 끊은 고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곽재규 조합원의 목숨값이었다. 다시 그는 이번 해고 명단에 올랐다.

“85호 크레인에 올라온 지 벌써 30일째다. 위층에 있는 김 지도위원은 202일째가 되는구나. 지난 6월27일 퇴거명령 행정대집행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채 올라온 게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85호 중간층에는 현재 나를 포함해 4명의 동지가 있다. 처음엔 30명 정도가 올라왔는데 숙식하며 같이 버텨낼 수 있는 환경이 만만치 않아 최소 인원으로 줄이고 남은 사람들이다.

끝까지 남아 같이 싸운 정리해고 조합원과 비해고 조합원들은 회사 밖으로 쫓겨난 뒤 전열을 가다듬어 현 집행부와 별개로 ‘정리해고 철회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회사 밖에서 정리해고 철회 투쟁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 정문 앞 투쟁, 저녁 집회, 지역 선전전, 서울 단식농성, 비해고자 만나 조직 추스르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희망 자전거 달리기 등 수많은 투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사천왕’으로 불린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불법을 지키는 사천왕처럼 크레인에 위태롭게 걸린 목숨을 지키는 4명의 사나이. 거기엔 김진숙씨와 20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동지, 한진중공업 해고자 박성호(50)씨가 있다. 박씨와 동갑인 해고자 신동순씨도 있다. 그들과 함께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조직부장 정홍형(49)씨가 “투석전 같던 비와 살갗을 벗기는 햇살”을 견디며 크레인을 지키고 있다. 누구보다 85호 크레인, 그 통한의 사연을 잘 아는 이들이다. 어렵게 내려온 박영제씨의 편지에는 ‘희망 버스’에서 힘을 얻는다는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85호 크레인 중간에 있는 4명의 역할은 85호 크레인 사수대다. 위층에 있는 김 지도위원과 끊임없는 소통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회사 쪽이 데려온 용역 경비와 공권력의 침탈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4명의 동지들인 사수대끼리도 서로 토론하고 소통하면서 어떠한 경우라도 85호 크레인이 절망의 크레인이 아닌 희망의 크레인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김 지도위원과 함께 살아서 내려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투쟁에 숱한 연대가 있었지만 희망 버스에 정부와 회사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9일, 2차 희망 버스가 부산에 왔을 때 회사와 경찰의 준비가 여기선 한눈에 보였다. 회사는 담벼락 위에 철조망, 그물망, 전조등을 죄다 설치하고 단기계약 용역을 수백 명 데려와 사내에 추가 배치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들에게도 짧은 봄날이 있었다. 김진숙씨는 <소금꽃나무>에서 20년 만에 회사로 돌아가는 박영제·이정식씨의 복직을 축하하며 이렇게 썼다. “날마다 해일만 일던 그 바다를 형들이 만든 땟목에 얹혀 건너왔으면서도, 막상 빛나야 할 자리에서는 나 혼자 빛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런 만큼 형들은 가려져야 했다.” 2006년에 쓴 이 글은 지금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의 사천왕에게 느끼는 마음일 것이다. “수백 번이고 장담하건대 그 형들이 없었으면 나도 없었다. 네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이런 길이란다. 누군가 미리 일러줬더라면 단 한 발짝도 떼지 못했을 길을 그 형들의 등에 업혀 여기까지 왔다.” 이렇게 서로의 등에 업혀, 서로의 생을 지키는 85호 크레인 사람들의 희망은 ‘살아서 내려가는 것’이다.

“나흘만 있으면 3차 희망 버스가 오기로 한 날이다. 희망 버스가 기다려지지만 한편 걱정도 된다. 부산시가 앞장서고 관변 단체가 같이하는 등 희망의 연대를 희석시키려는 움직임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부산의 19개 지역에 반대 집회 신고, 도로변 곳곳에 반대 현수막 부착, 비방 선무방송 등 움직임이 수상하다. 85호 크레인은 희망의 연대에 힘입어 정리해고 철회의 그날 살아서 내려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박영제씨의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독자들은 3차 희망의 버스가 부산을 다녀간 다음에 그의 편지를 보게 된다. 부디 그들이 희망 버스의 오작교를 딛고 어서 서로 부둥켜안기를. 6월27일 행정대집행의 이름으로, 85호 크레인 계단에서 서로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있는 조합원들을 용역들이 끌어내자 그들이 외친 한마디는 “우리는 살고 싶다”였다.

■ 박영제씨가 보낸 시

85호 크레인은 희망 버스

8년 전 85호 크레인의 외침은 구조조정 중단과 민주노조 사수였다

그러나 85호 크레인의 외침은 이 땅의 노동자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함을 알렸다

8년이 지난 85호 크레인은 새해 벽두 정리해고 저지를 위한 기도였다

이제 85호 크레인은 정리해고 철회이고 민주노조 사수다

85호 크레인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 버스다

이제 85호 크레인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희망이다

85호 크레인은 차별 철폐와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모두의 희망이다

85호 크레인은 희망의 연대를 안내하는 길잡이자 나팔수다

85호 크레인은 서로 도와주고 지켜주며 함께하는 인간다운 세상을 바라는 우리 모두의 희망 버스다

정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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