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생수. 한겨레21 박승화
한겨레21
[레드 기획] 무색무취하지 않은 물맛, 워터바와 워터 소믈리에 수업에서 음미해봤더니… “가장 맛있는 물은 익숙한 물”
윗입술을 적신다. 입을 다물면 아랫입술도 촉촉해진다. 혀끝에서 시작해 마치 파도가 밀려가듯 순식간에 입 안쪽까지 젖는다. 혀뿌리를 지나 목구멍을 넘어간다. 목구멍이라는 낭떠러지에서 끝도 없는 저 아래로 폭포가 쏟아지는 것처럼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그러고 나면 이번엔 속에서부터 만족스러움을 알리는 짧은 탄성이 올라온다. ‘하아’ 하고 내뱉기도 하고, ‘캬아’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물이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탄성을 내지르게 하는 이는, 때론 연인과 나누는 키스보다 더 짜릿한 물이다. 목구멍이 바삭거릴 만큼 건조할 때, 쉴 새 없이 땀을 흘릴 때, 가만히 있어도 몸이 달아오를 만큼 더울 때 마시는 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만족감을 선사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을 들이켜는 물이지만 몸이 강렬하게 원할 때 마시는 물과 밥 먹기 전에 의례적으로 마시는 물은 그 맛이 같지 않다. 아침에 마시는 물은 맛이 없고, 회사에서 마시는 물은 밋밋하다. 자기 전에 마시는 물은 간혹 목구멍에서 멈칫댄다. 물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기도 한다. 집에서 마시는 정수기 물과 돈을 주고 산 생수, 식당에서 주는 물은 각각 맛이 다르다.
물의 맛이란 뭘까. 그래서 길을 떠났다, 물의 맛을 찾아서.
“가격에 0 하나 더 붙은 거 아닌가요?”
가장 ‘핫’한 물이 모인 곳, 워터바다. 워터바에서는 술이나 커피처럼 물을 판다. 신세계백화점은 2년 전부터 서울 강남점·영등포점 등에서 워터바를 운영한다. 7월13일,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지하 1층 워터바를 찾았다.
워터바에는 생수, 해양심층수, 탄산수, 빙하수 등 다양한 종류의 생수가 진열돼 있다. 바 뒤편 장식장에는 고급 생수가 모셔져 있고, 바 옆편에는 워터바에서 파는 모든 종류의 생수가 진열돼 있다. 장식장을 차지한 고급 생수의 가격표는 ‘0’이 하나 더 잘못 붙은 건 아닌지 눈을 의심케 한다. 캐나다산 빙산수 ‘버그’(750㎖)는 6만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장식된 미국산 생수 ‘블링 H₂O’(375㎖)는 7만9천원이다. 고급 와인보다 비싸다. 모든 생수가 이렇게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있는 건 아니다. 1천~1만원대까지 생수의 종류만큼이나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워터바에서 ‘워터 어드바이저’로 일하는 박소희씨는 밀려드는 손님에 정신없이 움직였다. 1만원대 탄산수를 여러 병 주문한 손님, “병이 아주 예쁘다”며 진열된 생수를 찬찬히 훑어보는 손님, 특별한 맛을 추천받고 싶다는 손님에 연방 생수병을 들었다 놨다 한다. 바에 앉아 와인잔에 따라 마시며 물에 대한 간략한 평을 풀어놓는 이도 있고, “무슨 생수가 이렇게 비싸냐”며 고개를 내젓는 이도 있다.
박소희씨는 최근 워터바에서 가장 뜨는 물은 “20~30대 여성들의 화두인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물”이라고 말한다. “유명 여성 탤런트가 특정 제품을 마시고 산후 다이어트에 효과를 얻었다는 입소문이 퍼진 제품을 찾는 이들이 꽤 있어요. 물 제품 광고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에 노출된 제품이나 특정 드라마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물을 사고 싶다는 고객도 있어요. 남성 고객은 술이 깨는 데 도움이 되거나 운동할 때 마시면 좋은 물을 찾습니다. 중·장년층 부부는 주로 해양심층수나 알칼리수처럼 건강 기능성 생수를 찾아요. 자기에게 필요한 물을 코디해가는 거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선호하는 물맛은 뭘까. “물맛은 미네랄 성분의 함량이나 물의 산도, 수원지에 따라 달라요. 가장 선호하는 물맛은 특정 미네랄 성분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산소량이 풍부해 가볍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물이에요. 빙하수처럼 미네랄 성분이 거의 없고 산도도 중성에 가까워 특유의 맛이나 향이 없어 깔끔한 물을 좋아하거나 물에 녹아 있는 성분 중 칼슘(단맛)이나 마그네슘(비릿하면서 씁쓰레한 맛)의 함량이 특히 높은 물을 좋아하는 이도 있어요. 탄산수의 톡 쏘는 맛에 반한 손님도 꽤 있고요. 취향은 다양해요.” 미네랄 성분, 온도, 습도 등이 맛 결정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 중에 맛을 감별하기가
가장 어려운 게 물이다. 까다로운 물의 맛을 감별해내는 이를 ‘워터 소믈리에’라고 부른다. 와인 소믈리에가 와인의 맛을 찾아내고 추천하는 것처럼 워터 소믈리에는 물의 맛을 찾아낸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유명 식당에 워터 소믈리에를 두고 음식에 따라, 취향에 따라 물을 추천하는 게 일반화되는 추세다.
국내에는 아직 워터 소믈리에라고 부를 만한 이가 없다. 그러나 워터 소믈리에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생겨나는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4월 처음으로 30명을 대상으로 ‘워터 소믈리에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수돗물을 평가하고 감별해내는 이들을 양성한다는 목적이었다. 하루짜리 교육이지만 관심도가 높자 수자원공사는 2차 교육을 마련했다.
워터 소믈리에 양성교육만큼 물맛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기회는 없으리라는 생각에 2차 교육이 열린 지난 7월14일 대전에 있는 수자원공사로 달려갔다. 이곳에 모인 30명의 교육생은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서 일하는 이들부터 와인·커피 전문가, 식품영양학과 학생, 주부까지 다양했다.
교육은 수질분석연구센터 오은정 연구원이 강사로 나선 ‘맛있는 물 특성’ 강의로 시작했다. 물은 함유된 미네랄 성분의 종류와 양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칼슘은 경도가 높은 센물일 때는 물맛을 떨어뜨리지만 단물일 때는 물맛을 좋게 한다. 칼륨은 많으면 쓴 맛이 나지만 적당량이 녹아 있으면 맛이 좋아지는 특성이 있다. 마그네슘이 많은 물은 쓴맛과 신맛이 올라간다. 미네랄의 함량이 너무 많으면 쓴맛, 떫은맛, 짠맛 등이 느껴지고 적으면 물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수소이온 농도인 pH도 중요하다. pH7보다 수치가 낮으면 산성, 높으면 염기성 물이다. 가장 맛이 좋은 물은 pH7.4. 물맛을 결정짓는 또 한 가지 주요 원인은 경도다. 경도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주성분인데 경도가 높으면 산뜻하지 않은 진한 맛이, 낮으면 담백하고 김빠진 맛이 난다. 유럽에서 물을 마시면 미끈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경도 때문이다. 유럽의 생수(200~400mg/ℓ)는 일본의 생수(20~80mg/ℓ)에 비해 경도가 5~10배 차이 난다. 물맛이 가장 좋은 경도는 일본의 생수에 가까운 10~100mg/ℓ로 알려져 있다.
물맛은 외부 조건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기온과 습도 등 기상 조건이 크게 작용한다. 물의 온도가 기온보다 5℃ 이상 낮을 때 물맛이 좋게 느껴진다. 겨울보다 여름에 물맛이 더 좋은 이유다. 습도는 낮을 때 물맛이 더 좋게 느껴진다. 물 자체의 온도도 중요하다. 물이 미지근하면 휘발성 물질로 인해 나쁜 냄새가 강하게 느껴져 물맛이 떨어진다. 물맛이 가장 좋은 온도는 체온보다 20~25℃가 낮은 10~15℃다. 이상적인 온도는 10℃다. 따뜻한 물은 70℃에서 맛이 좋다. 가장 맛없는 물은 30~35℃의 미지근한 물이다.
블라인드 테스트 1등은 수돗물
이어 물의 맛과 냄새에 대한 실습이 시작됐다. 6번까지 번호가 적힌 여섯 개의 컵에 담긴 물을 마셨다. 물에서 나는 맛을 평가지에 적었다. 단맛·신맛·쓴맛·짠맛 등을 구별해야 하는데 단맛과 짠맛을 제외한 다른 맛은 좀처럼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냄새는 더 어려웠다. 물에서 나는 냄새는 대략 네 가지 정도다. 잔류염소 냄새와 흙 냄새, 곰팡이 냄새, 풀오이 냄새다. 번호가 적힌 여섯 개의 플라스크에서 냄새를 맡아 구분하는 실습이 시작됐다. 아무리 코를 들이대도 냄새의 차이를 발견해내기 힘들었다. 중간중간에 무색무취의 물과 크래커를 먹으며 혀와 코를 정상으로 돌려놓아야 했다. 여기저기서 “너무 어렵다”는 말이 들려왔다.
오후에는 본격적인 물맛 테이스팅 실습이 있었다.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외식경영학과 고재윤 교수가 강의를 맡았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이기도 한 고 교수는 워터 소믈리에의 역할을 와인 소믈리에에 빗대 설명했다. 고 교수는 “와인 소믈리에보다 워터 소믈리에가 더 어렵다”며 미세한 물맛의 차이를 잡아내는 게 어려운 일임을 강조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 때문에 커피보다는 차에, 와인보다는 물에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워터 소믈리에는 꽤 괜찮은 직업이 될 거라는 점도 덧붙였다.
물 테이스팅은 와인과 비슷하다. 물을 4분의 1 정도 와인잔에 붓고 자연광이나 형광등에 색을 비춰본다. 색은 맑고 투명할수록 좋다. 그 뒤 와인잔을 안쪽 방향으로 가볍게 흔들어 냄새를 맡는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무취의 상태가 가장 좋다. 다음엔 물을 한 모금 마셔 입속에서 돌린다. 물의 온도, 청량감, 가벼움, 균형 등을 확인하고 신맛·짠맛을 느껴본다. 물을 마신 다음 뒷맛을 음미하며 맛을 확인한다.
테이스팅 방법을 익힌 다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투명도·거품정도·무취·청량감·신맛·풍미·구조감·가벼움·부드러움·균형감·지속성 등의 항목으로 세세하게 나뉜 평가지를 앞에 놓고 체크를 해가며 꼬리표를 감춘 서로 다른 여섯 종류의 물을 하나씩 마셨다. 고 교수는 교육생들에게 가장 맛이 좋은 물에 대해 물었다. 2번과 4번, 5번을 고른 이가 각각 7명으로 가장 많았다. 1번이 3명이었고 3번과 6번은 1명씩 손을 들었다. 가려졌던 물의 종류와 브랜드가 공개됐다. 1번은 프랑스산 생수 에비앙이었다. 2번은 수자원공사에서 병입한 케이워터 청주정수장 물이었고, 3번은 국내산 해양심층수인 아쿠아블루, 4번은 케이워터 밀양정수장 물이었다. 5번은 국내산 생수 삼다수, 6번은 캐나다산 빙하수 휘슬러워터였다. 고 교수는 ‘수돗물’이라고 할 수 있는 케이워터와 ‘국민생수’ 삼다수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블라인드 테이스팅 결과를 두고 “결국 가장 맛있는 물은 우리 입에 익숙한 물이 아닐까 한다”며 “물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비싸다고 맛 좋아지는 건 아니다
미국의 수자원전문가 피터 H. 글렉이 수돗물을 비하하고 검증되지 않은 건강과 다이어트 효과를 내세워 물을 파는 생수산업을 날카롭게 비판한 책 <생수, 그 치명적 유혹>(추수밭 펴냄)은 흥미로운 사례를 하나 소개한다. 개그맨이자 과학 저술가인 ‘펜 앤드 텔러’는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서 사치스러운 식당 한쪽에 멋진 물 가게를 만든 다음 ‘로 드 로비네’(수돗물의 프랑스어) 같은 이름이 적힌 생수 메뉴를 들이대는 워터 소믈리에를 등장시킨다. 생수를 선보일 때마다 값비싼 생수가 수돗물에 비해 얼마나 우수한지와 맛의 차이를 강조한다. 그러나 화면 한쪽에 보이는 식당 뒤편에서는 ‘최고급 호스 물’이라고 쓰인 정원용 호스에서 나온 물이 생수병에 채워진다. ‘트루물쇼’나 다름없다.
수없이 많은 물을 마셔보고 물맛에 대해 내린 결론은 단순하다. 비싼 물이 꼭 맛있는 물은 아니다. 냉장고에 넣어둔 수돗물이 값비싼 생수보다 더 맛있을 수 있고, 실제 그랬다. 생수를 구입하는 데 한 달에만 수십만원을 쓰고 있다면, 자꾸 예쁜 병에 담긴 비싼 생수에 손이 간다면 한 번쯤 눈을 가리고 물을 마셔보면 어떨까.
글 안인용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박소희씨는 최근 워터바에서 가장 뜨는 물은 “20~30대 여성들의 화두인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물”이라고 말한다. “유명 여성 탤런트가 특정 제품을 마시고 산후 다이어트에 효과를 얻었다는 입소문이 퍼진 제품을 찾는 이들이 꽤 있어요. 물 제품 광고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미디어에 노출된 제품이나 특정 드라마 주인공이 들고 다니는 물을 사고 싶다는 고객도 있어요. 남성 고객은 술이 깨는 데 도움이 되거나 운동할 때 마시면 좋은 물을 찾습니다. 중·장년층 부부는 주로 해양심층수나 알칼리수처럼 건강 기능성 생수를 찾아요. 자기에게 필요한 물을 코디해가는 거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선호하는 물맛은 뭘까. “물맛은 미네랄 성분의 함량이나 물의 산도, 수원지에 따라 달라요. 가장 선호하는 물맛은 특정 미네랄 성분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산소량이 풍부해 가볍고 목넘김이 부드러운 물이에요. 빙하수처럼 미네랄 성분이 거의 없고 산도도 중성에 가까워 특유의 맛이나 향이 없어 깔끔한 물을 좋아하거나 물에 녹아 있는 성분 중 칼슘(단맛)이나 마그네슘(비릿하면서 씁쓰레한 맛)의 함량이 특히 높은 물을 좋아하는 이도 있어요. 탄산수의 톡 쏘는 맛에 반한 손님도 꽤 있고요. 취향은 다양해요.” 미네랄 성분, 온도, 습도 등이 맛 결정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 중에 맛을 감별하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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