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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억원 홍보로 아이는 몇이나 생길까?

등록 2011-06-21 13:06

» 올해 5월 서울시내에서 촬영한 복지부가 운영하는 출산장려버스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 올해 5월 서울시내에서 촬영한 복지부가 운영하는 출산장려버스 모습. 한겨레21 정용일
한겨레21
[초점] 국회 보건복지위 통과한 ‘아이낳기 운동본부’ 법제화되면 해마다 18억원 이상 지원…출산장려 글짓기 백일장 열고, 와인 미팅 주선하면 출산율 오른다는 군사정권식 발상

정규직의 아기는 축하받았다. 하나은행 정규직원들은 결혼할 때 회사로부터 100만원 상당의 화환과 축하금을 받았다. 출산 땐 80만원을 받았다. 비정규직의 결혼 축하금은 정규직의 절반인 50만원이었고, 출산 축하금은 0원이었다. 차윤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지난해 11월 “경조사 지원금 차별을 시정하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하나은행은 올해 2월 차별 조항을 없앴다.

이런 직장 내 차별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법과 관련해 시민단체와 정부·여당의 시각이 왜 갈리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여당은 출산장려운동과 홍보에 주력한다. 직장 내 차별, 출산휴가를 쉽게 쓰지 못하는 현실, 낮은 수준의 사회복지 등이 해결되지 않는한 홍보 활동은 효과 없는 예산 낭비라는 반론이 맞선다.

결혼장려 대학생 홍보단?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 개정안’에 대해 홍보 활동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상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 발의해 올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통과됐다.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체계·자구 심사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개정안은, 2009년 9월 보건복지부 등 행정부처와 사회 각계의 40여 단체가 모여 만든 한시적 민관협의체인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아이낳기)의 법제화와 지원 방안 등을 담고 있다. 현재 아이낳기의 실무는 사단법인 ‘인구보건복지협의회’(인구협회)가 맡고 있다.

개정안은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설치 및 예산 법제화 △매년 7월11일을 ‘인구의 날’로 지정 △저출산 극복에 기여한 개인과 기관에 대한 훈·포상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 법이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현재 한시적 민간기구인 아이낳기는 매년 18억원 이상 안정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진보적 여성단체들은 홍보에 치우친 점, 홍보 활동 내용에 문제가 있는 점을 모두 지적하며 비판하고 있다.

복지부가 최영희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아이낳기는 모두 18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 중앙운동본부가 10억원을 집행했고, 이 돈은 29개 단체가 30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사용됐다. 지역운동본부에서 8억원을 집행했다. 홍보 및 캠페인 활동이 대부분이다. 중앙운동본부의 2010년 활동 내역 가운데 선물 지급, 정책 개발, 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 목적과 결과물이 뚜렷한 활동에 사용된 예산은 2억원 남짓이었다.

아이낳기의 출산장려 캠페인에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홍보와 대학생 등 ‘타깃집단별 교육’이 망라됐다. ‘한자녀 더갖기 운동연합’은 아이낳기에서 1억3천만원을 받아 저출산 극복 국민 참여 거리 캠페인과 아버지 육아학교 등을 진행했다. 복지부는 “유동인구가 많은 극장, 시내 중심가, 지하철역 등에서 시민들이 같이 참여할 수 있는 길거리 이벤트, 홍보대사 공연, 마당놀이, 홍보부스 설치 등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고 밝혔다. 젊은 부부와 대학생에 집중된 캠페인도 눈에 띄었다. 유아교육 단체를 표방한 ‘아이코리아’는 4천만원을 받아 ‘슈퍼맘으로 살아남기’ 사업을 진행했다. “전국의 어린이집, 유치원 교사, 학부모를 대상으로 저출산의 사회적 손실과 심각성을 알리고 출산장려, 부모의 역할에 대한 교육 실시”를 했다고 복지부는 밝혔다. ‘한국여성지도자연합’이 3천만원을 받아 ‘워킹맘이 행복한 희망세상 만들기’ 사업을 진행했다. 대전 ‘유성구 종합복지센터’가 3천만원을 받아 ‘대학생들의 긍정적 결혼관 성립을 위한 결혼 인식 개선사업’을 벌였다. 결혼장려 대학생 기획홍보단 운영, 데이트 체험, 웨딩박람회 등 결혼체험학교 운영 등이 사업 내용이었다.


“여성 고용안정 정책이 우선”

복지부는 아이낳기를 ‘출산·양육·가족문화에 대한 범국민 인식 및 환경 개선을 위한 협의체’로 규정하고 있다. 홍보 활동이 본질이라는 취지다. 신상진 의원실도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복지도 중요하지만 인식 개선과 홍보 활동 없이는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YWCA,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 일부 여성단체가 참여한 점도 거론한다. 여성계가 합의했다는 취지다.

&raquo; 자료 : 최영희 민주당 의원
» 자료 : 최영희 민주당 의원

진보적 여성단체의 시각은 다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게 중요한데 저임금 여성 직장인에 대한 고용안정 정책이 없고 해고 문제도 여전하다”며 “비정규직이 출산휴가도 못 가고 국공립 보육시설 비율도 턱없이 낮은데 홍보로 해결되겠나. 특히 정부·여당이 저출산을 여성의 문제로 한정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여성민우회도 지난해 성명을 내어 “정부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애쓰겠다며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의 구성 등 대국민 계몽 운동을 주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며 “이는 과거 군사정권처럼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보 내용도 문제라는 지적이 지난해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의 때 나왔다. 홍보 대상과 효과에 대한 면밀한 계산 없이 ‘새마을운동’식으로 추진한다는 취지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초·중학생을 상대로 한 출산장려 글짓기 백일장, 아이낳기가 나서서 미혼남녀 미팅 행사를 주선한 사실 등을 지적했다.

실제로 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0년 아이낳기 주관 아래 전국에서 모두 10차례의 미혼남녀 미팅 및 맞선 행사가 저출산 대책으로 진행됐다. 서울시 인구협회는 지난해 2140만원을 들여 ‘미혼 남녀 와인클래스’를 열었다. 한국방송 광주본부는 1200만원을 들여 맞선 행사를 진행했다. 경북에서는 간호사회가 미팅 행사를 열었다. 이처럼 전국에서 저출산 대책 미팅 행사에 모두 1억6880만원의 세금이 사용됐다. 전남보육시설연합회가 보육시설 유아를 대상으로 ‘엄마·아빠 동생 낳아주세요!’ 그림 그리기 행사를 하는 등 전국에서 초·중학생을 상대로 출산장려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가 열린 점도 지적받았다.

한나라당 인사들 밀어주기?

최영희 의원은 ‘한자녀 더갖기 운동연합’ 박윤옥 회장이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에 공천을 신청한 전력이 있고 17대 대선 한나라당 중앙선대위 직능본부 여성단장을 지낸 사실을 들어 정치적 중립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코리아’ 김태련 회장이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를 지낸 사실도 지적됐다. 인구협회 김영순 회장도 한나라당 부대변인과 구청장을 지낸 한나라당 인사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무관심’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민주당은 아이낳기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과 비판을 했다. 그럼에도 4월15일 국회 보건복지위 회의록을 보면, 개정안이 통과될 때 복지위 민주당 간사인 주승용 의원 등 야당에서 반대 발언이 없었다. 신상진 의원 쪽은 “6월 임시국회에서 개정안이 통과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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