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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일 동안의 고독한 투쟁

등록 2011-04-18 17:06

» 노동조합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1200일 넘게 자익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능교육노조의 서울광장 농성 텐트 옆에서 지난 4월6일 유명자 지부장이 단식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 노동조합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1200일 넘게 자익 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능교육노조의 서울광장 농성 텐트 옆에서 지난 4월6일 유명자 지부장이 단식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21 김경호 기자
한겨레21
[표지이야기] 투쟁 기간 1200일 넘긴 재능교육·국민체육공단 비정규직 노조… 육체적 고통만큼 무서운 심리적 고립감

단식 14일째. 광장을 휘감아도는 방사능 비바람 앞에서, 여인의 메마른 몸뚱이가 의지할 것이라곤 홑겹의 등산 텐트가 전부였다. 네 사람이 모로 눕기에도 비좁아 뵈는 0.5평짜리 텐트 안에서 혹한의 긴 겨울을 ‘촛불 난로’ 하나로 견뎌낸 그였지만, 추위와 허기보다 힘겨운 건 “함께 싸워 바꿔야 할 사람들의 무관심과 침묵”이라고 했다. 4월7일 서울광장 농성장에서 만난 재능교육노조 유명자(43) 지부장은 ‘잊혀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힘겹게 고백했다.

“투쟁 중단하고 심리치료 받아라”

“3년 넘게 넘게 농성하며 살림살이, 임금에 부동산까지 압류당하며 버텼지만, 신문과 인터넷에 한두 차례 오르내리고 나면 그뿐이었다. 오죽하면 ‘제 살 깎아먹기’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학습지 불매운동까지 벌였겠는가.”

그가 속한 재능교육노조는 2007년 12월21일부터 서울 혜화동 본사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이 요구한 것은 노조 활동 과정에서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과 노조 인정, 단체협약 원상회복이었다. 하지만 현행법상 ‘노동자’가 아닌 ‘소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 신분의 학습지 교사들에게 법과 공권력을 등에 업은 회사 쪽과의 싸움은 처음부터 중과부적이었다. 그사이 투쟁은 1200일을 넘겼고, 본사 앞과 인근 혜화동 로터리에서 진행되던 집회는 서울광장의 재능교육 사옥 앞 노숙농성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천막 옆에는 ‘사옥 반경 100m 이내에서 재능교육을 비방하는 집회나 유인물 게시·배포, 80dB을 초과하는 소음 발생을 금지하고, 위반시 각 1회당 100만원씩을 재능교육에 지급해야 한다’는 서울중앙지법의 ‘집회금지 등 가처분’ 결정문이 붙어 있다.

고립과 망각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가며 힘겨운 장기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재능 노조뿐만이 아니다. 국민체육공단 비정규직노조 역시 투쟁 기간이 1200일을 넘겼다. 공단이 운영하는 경륜·경정장에서 발매·관리·매점원으로 일하던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비정규직 노조를 결성한 것은 2007년 12월. 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공단은 두 차례에 걸쳐 17명을 해고했다. 서울 올림픽공원 옆 방이로변에서 6개월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위자(52) 부지부장은 “육체적 피로보다는 감시당한다는 초조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최근엔 불면증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의 처방은 야속했다. “농성을 멈추지 않으면 증상은 100% 악화된다. 상황을 정리하고 심리치료를 받아라.”

컴퓨터 제조사인 주연테크,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인 발레오공조코리아, 기타 제조사인 콜트·콜텍 역시 1~5년에 걸쳐 장기 투쟁이 진행 중인 사업장이다. 폐업, 정리해고, 부당 징계, 노조 불인정 등 투쟁을 촉발한 요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노조 탄압 중단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한다는 점에선 목소리가 일치한다. 오랜 농성에 따른 건강 악화와 경제적 빈곤, 심리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처지도 같다.

사용자의 탐욕만 문제가 아니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정숙 활동가는 “장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많은 노동자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증상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은 육체적 피로감과 결합된 극도의 고립·무력감”이라고 말했다.

3월 말 현재 민주노총이 집계한 전국의 ‘투쟁 사업장’은 103곳에 이른다. 이 중에 몇 군데가 제2의 쌍용차, 제3의 발레오가 될지는 쉬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건 이들의 고통과 불행에 책임이 있는 건 사용자의 탐욕만은 아니란 사실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한 산문에서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이 난장이의 이야기를 읽고 눈물이 나 혼났다고 말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경쾌하게 들렸다. 말할 수 없이 창피하고, 말할 수 없이 슬픈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하늘을 보지 않기로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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