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1일 오전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의 한우 농가에서 방역 담당자들이 구제역 백신 접종을 시도하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한겨레21
[줌인] 정부의 ‘동원 명령’ 받는 수의사의 독특한 ‘신분’…
보수 지급·사고 보상 기준도 없이 생업 접고 다쳐가며 구제역 현장을 지키는 그들
“아니, 그렇게 그냥 찌르지 말고 문으로 몰아가면서 해.”
“이쪽은 문이 안 열려요.”
“어어, 그쪽으로 간다. 조심해!”
최성열(65)씨의 농장이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그가 키우는 한우 176마리는 아침을 깨우는 낯선 이의 침입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가뜩이나 예민해진 놈들에게 백신을 놓겠다며 주삿바늘을 들이대니 반응이 좋을 리 없다. 아무리 성질이 온순한 녀석이라도 우주인 복장의 사람들이 다가가면 일단 줄행랑이다.
사명감만으로 버틴 두 달여
“뒷발에 차이면 아주 위험해요. 어제는 보호대가 없는 허벅지 깊은 곳을 세게 걷어차였어요. 소의 행동이 워낙 예측불허인데다 무게까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늘 크고 작은 위험이 있어요. 이런 보호대가 없으면 안 돼요.”
동물병원 직원인 유성배(51)씨가 흰색 일회용 방역복 안으로 덧댄 검은색 보호대를 보여줬다.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구제역 백신 접종을 위해 직접 주삿바늘을 꽂는 유씨는 그나마 보호대라도 둘렀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유씨가 있는 쪽으로 소를 몇 마리씩 몰아가야 하는 다른 방역요원은 알아서 조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소의 목을 고정하는 자동 목걸이 시설이 있으면 편하죠. 그렇지 않은 우사에서는 이렇게 몇 사람이 소를 한곳으로 몰면 몇 사람이 붙잡고 주사를 놓아야 합니다. 상당수 농장에 목걸이 장치가 없습니다.”
수의사 이흥열씨의 설명이었다. 이씨 역시 2월1일 오전 구제역 백신 2차 접종을 위해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최성열씨 농장을 찾은 방역팀의 한 명이었다. 자동 목걸이는 원래 사료를 공급할 때 다른 놈의 먹이에 입을 대지 못하도록 소의 좌우 움직임을 제한한 장치다. 목걸이 장치 없이, 놀라 날뛰는 소에게 주사를 놓기란 힘겨워 보였다. 최씨의 우사에 지친 사람과 놀란 소가 내뿜는 입김이 가득했다.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잖아요. 오늘까지는 2차 접종을 마쳐야 하니까 서둘러야죠. 그래도 오늘 여기하고 저쪽 아래 김영준씨 14마리 농가만 마치면 끝입니다.” 이씨가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남은 구제역 백신을 꺼내며 말했다. 백신은 하얀색 액체였다. 구제역 바이러스 배양액에 다른 화학제를 첨가해 바이러스의 감염력을 떨어뜨린 것이 곧 구제역 백신이다. 한 달 간격으로 이를 2㎖씩 두 번 접종해야 가축이 구제역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갖게 된다. 확률은 85% 정도다. 백신이 효력을 갖는 기간도 6개월에 불과하다. 과연 여기서 구제역 사태를 잠재울 수 있을까?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구제역 확산이 멈추지 않는다면 강화읍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이씨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밖에 없다.
“특정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당연히 그 지역 수의사는 모두 거기에 매달려야 하죠. 지난해 12월23일 강화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양돈 농가에 갔었는데, 구제역 진단과 살처분에까지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2주간 구제역 발생 지점에서 움직이지 못해요. 병원도 비워둘 수밖에 없으니 계속 문 닫고 있는 거죠.”
사상 최악의 가축 전염병 사태가 길어지면서 축산 농가뿐만 아니라 방역에 참여하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축산업협동조합 직원 등 방역 담당자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전국의 모든 구제역 현장에 매달려 있는 수의사의 피해도 적지 않다. 구제역 사태 두 달여, 사명감만으로 버티기에는 한계에 이른 것이다. 수의사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그들의 독특한 ‘신분’도 피로감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새벽 3시에 전화받고 나가기도
“시청에서 수의사를 호출하면 우리는 바로 나가야 합니다. 새벽 3시에 전화를 받고 살처분 현장에 나갔다는 동료 수의사도 있습니다. 한번 나가면 보통 꼬박 24시간을 추운 현장에서 떨기 십상이죠. 새벽 1~2시에 들어오는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구제역 첫 발생지인 경북 안동의 수의사 황아무개씨는 구제역 사태에 따른 수의사의 피해를 묻자 안동시의 막무가내식 ‘명령’을 꼬집었다. 수의사의 피해와 관련해 ‘명령’과 ‘신분’이란 표현을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수의사법 30조의 일부다.
“제30조(지도와 명령) 1.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 군수는 동물 진료 시책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또는 공중위생상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수의사 또는 동물병원에 대하여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명령’이 곧 수의사와 동물병원의 모든 기구·장비에 대한 동원 명령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지자체가 언제든지 수의사에게 동원 명령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수의사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자체의 동원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경우 6개월 업무정지까지 각오해야 한다. 구제역 공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 속에서 가축 전염병을 가장 잘 아는 수의사가 현장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의 현장 참여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수의사가 가장 먼저 생업을 접고 현장에 달려갑니다. 처음에는 사명감으로 일합니다. 그런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자체 공무원이 수의사를 마치 일꾼 부리듯 이리 가라, 저리 가라 이런 식으로 대하니까 우리도 화가 나는 거죠. 물론 수의사회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 협조를 요청하는 지자체도 있지만, 아무 때나 전화로 오라 가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의사 황씨의 설명이다.
수의사 동원이 이런 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이들에 대한 보상도 주먹구구식이다. 방역초소나 가축 살처분 현장에 동원하는 일반 노동자의 경우 정부 노임 단가를 기준으로 보수를 계산하고 있다. 여기에 교통비와 식대 등을 더해 일당을 쳐준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국가 자격면허소지자인 수의사를 대상으로 별도로 규정해놓은 보수 규정은 없다. 구제역 발생 초기에는 수의사에게 일용직 노동자의 일당 지급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나온 지자체도 있었다.
부상당한 수의사에게 “일당에 위험수당 포함”
“구제역 살처분에 참여하는 포클레인 기사는 1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50여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화물트럭 기사도 배기량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30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의사는 거의 매년 필요할 때마다 부담 없이 동원해와서 그런지 5만원, 7만원 주겠다고 한 지역도 있었습니다. 수의사를 거의 일용직 노동자처럼 취급하는 거죠.”
최근까지 인천시 강화군에서 구제역 백신 접종에 참여한 수의사 박아무개씨는 구제역 방역 업무 보수를 묻자 “그때그때 주는 대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많이 받을 때는 하루 40만원을 받기도 하지만 30만원을 줄 때도 있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일당으로 따지면 일용직 노동자에 비해 적지 않은 금액이다. 대신 일용직 노동자는 오후 6시 이후 붙는 초과근무수당 등을 더 받는다. 같은 시간의 노동을 한다고 했을 때 수의사의 보수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수의사 업계의 주장이다. 자신의 동물병원 문을 닫고 구제역 현장에 매달려야 할 경우, 혹은 고용한 직원이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자기 돈으로 동물병원 운영비를 메워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물론 수의사 보수 지급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이들의 직간접적 피해까지 보전해줄 리 만무하다. 2월1일 오전 강화군 불은면 최성열씨 농장에서 백신 접종 작업을 마치고 나온 이흥열씨의 말이다.
“강화군청에서도 내가 12월부터 구제역 농가에 드나들며 우리 병원 문을 제대로 못 여니까 ‘우리 이 원장님 고생하신 것에 대해 어떻게든 보상해드려야 하는데’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상하겠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어요.”
이에 대해 안동시나 강화군 등 지자체에서는 다른 지자체 사례를 참고해 수의사 보수 수준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강화군청 관계자는 “원래는 직종별 단가를 따져야 하는데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게 없어서 ‘내부 방침’에 의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부 방침을 다른 말로 바꾸면 ‘알아서’다. 안동시청 관계자 역시 “우리의 경우 수의사 보수 기준이 없어서 다른 지자체에서 얼마를 줬는지 파악한 뒤 그 수준에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구제역 현장에서 수의사가 몸을 다치면 더 큰 문제가 된다. 대개 자기 손해이기 때문이다. 방역 통제초소에서 발생한 모든 사고를 보상해주는 상해보험에 가입한 경기 고양시의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는 이런 단체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가입했더라도 담당 공무원이 그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강화군에서 활동한 수의사 박아무개씨 사례가 그랬다.
“지난 일요일(1월30일) 강화군의 한 농장에서 백신을 놓을 때 소가 뒷발질을 심하게 해서 피했는데 하필이면 왼손에 맞았어요.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다행히 뼈가 부러진 건 아니고 단순한 염좌라고 하던데, 3일 정도 치료받으면 낫는다는 설명과 달리 계속 시큰거려요. 조금 전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오는 길이에요.”
상해보험 적용 여부를 묻자 박씨는 “강화군청에 문의했더니 수의사 일당에 위험수당이 포함됐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며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공무원과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아서 그만뒀지만 왼손 부상이 더 악화되면 군청을 상대로 소송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의사법 개정안 국회서 발의
구제역 사태가 길어지면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수의사의 피해가 계속 불어나자 이용희 자유선진당 의원 등은 1월28일 수의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수의사법에 따라 정부나 지자체가 수의사를 동원할 경우 보수 지급을 의무화할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지금처럼 지자체에 따라 적당히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기준에 따라 수의사에게 보수를 지급하라는 취지다.
개정안은 또 수의사의 수의사회 가입을 의무화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방역 당국은 민간 부문에서 동원할 수 있는 수의사에 대한 자료를 구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아울러 수의사회는 위상과 역할 제고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대한수의사회 사무처의 최재용 수의사는 “최근 구제역 사태에 따른 방역은 국가적으로 워낙 시급하고 바쁘다 보니 수의사의 보수나 상해보험 적용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는데, 수의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장에서 이같은 혼란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화=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수의사 이흥열(오른쪽)씨가 주사기로 구제역 백신액을 뽑아내고 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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