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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간 내각, 자민정권 극복할 미래지향성 안보여”

등록 2010-09-05 20:25수정 2010-09-05 22:34

지난달 23일 도쿄 이와나미 서점 회의실에서 만난 오카모토 아쓰시 <세카이> 편집장은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로 인한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하고, 후손들을 교육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도쿄 이와나미 서점 회의실에서 만난 오카모토 아쓰시 <세카이> 편집장은 일제의 한국 식민지배로 인한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하고, 후손들을 교육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일 진보잡지 ‘세카이’ 오카모토 편집장
피해자와 가해자는 역시 달랐다.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올해, 일본은 조용했다.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가 몇 차례 특집방송을 방영하고, <아사히신문>이 연재기사를 내보낸 것을 빼면, 주류사회에서는 ‘합병 100년’에 의미를 둔 작업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들만이 8월에 맞춰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열기 위해 많은 행사를 준비했다. 그런 가운데 출판계에서는 월간 <세카이>(세계)의 노력이 두드러졌다. <세카이>는 ‘한국합병 100년’을 주제로 한 1월호 특집으로 2010년을 시작했다. 오카모토 아쓰시 편집장은 ‘한일병합조약이 불의부당하게 체결됐으며 무효’라고 밝힌 5월의 ‘한·일 지식인 선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초안 작성에 참여하는 등 실무를 맡아 뛰기도 했다. 양국 지식인 1118명이 최종서명한 선언문이 7월 말 일본 총리 관저에 전달된 뒤, 간 나오토 총리는 ‘한일병합이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광복절과 국치일이 지나가고 역사적인 8월도 이제 막을 내렸다. 서울의 일본 언론인들은 “이번 8월엔 반일 열기가 그리 거세지 않았다”고 전했다. 일본 지식인 사회의 맨 앞줄에 서서 ‘합병 100년의 해’를 보내고 있는 오카모토 편집장을 8월23일 도쿄 이와나미서점 회의실에서 만났다.

- 월간 <세카이>는 한국과 인연이 각별합니다. 1970년대엔 한국에서 ‘금서’였지요?

“<세카이>는 1945년 말 창간됐습니다. 전쟁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잡지인데, 한반도 관련 사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들어서입니다. 특히 73년부터 88년까지 ‘TK생’이란 익명의 필자(필자는 지명관 현 한림대 석좌교수였다)가 쓰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란 칼럼이 연재된 일은 아주 유명합니다. <세카이>는 한국에 갖고 들어갈 수 없는 잡지였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분들 가운데는 <세카이>를 읽으려고 일본어 공부를 했다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올해로 14년째 편집장을 맡고 계신데,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어떤 부분에 관심이 크십니까?

“과거사 문제의 해결입니다. 한반도와 일본은 고대로부터 1000년 넘게 아주 가까운 관계였는데, 근대에 들어서 관계가 매우 이상해졌습니다. 저는 한국이나 한반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이 스스로를 위해서 한반도와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일본이 먼저 지난날을 반성하고, 사죄하고, 후손들을 교육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월 한일 지식인선언’ 초안작성 참여해
한반도 관련 토론회 ‘단골’ 사회자 역할
“한일병합 100년 담화, 발표 자체로 의미”

- 민주당 정권은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어떤 정치·경제적 배경 아래 나온 것이라고 보십니까?

“과거 자민당 정권 때도 중국·러시아 등 아시아를 중시하자는 흐름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현재 민주당에서도 모두가 아시아를 중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내세운 것은 그동안 일본은 너무 미국에 치우쳐 있었다, 그 과도함을 바로잡고 중국·한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해가자는 것입니다. 일본 국민들 사이에도 오키나와 후텐마기지 문제가 상징하듯 그동안 미국에 대해 어떤 비판도 없이 추종해온 것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꽤 퍼져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이제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과의 교역보다 많아졌습니다. 중국 없는 일본을 생각하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그런데 간 나오토 총리 내각에서는 방향이 조금 모호해졌습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얘기는 사라지다시피 했습니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 건 아니지만, 정권교체를 한 의미가 뭔지 되묻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미-일 동맹이 흔들리는 데 대한 일본 국민들의 두려움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요?

“그런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국장을 지낸 빅터 차(현 조지타운대 교수)가 올봄 강연에서 ‘하토야마 정부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 같다’고 했습니다. 불안해서 어디까지 신용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얘기였죠. ‘그래도 노무현 정부는 의지가 분명해서 마지막엔 좋은 관계가 됐는데, 하토야마 정부는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큰 나라와 동맹을 맺으면 작은 나라에는 두 가지 불안이 생깁니다. 하나는 동맹국이 벌이는 전쟁에 휘말려드는 것 아닌가, 다른 하나는 우리가 동맹국으로부터 버림받는 것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이 미-일 동맹에 대해 불신하는 말을 하니까) 일본인 가운데 불안해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와 나라의 바람직한 관계는 말하고 싶은 것을 서로 말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후의 일본은 마치 속국 같았습니다. 미국은 국외로 뻗어나갈 힘을 점차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어떻게든 일본이 좀더 자립하는 방향으로 노력해가야 합니다. 그런 때일수록 중요한 게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입니다. 북한 핵 문제, 중국의 군사대국화를 보면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 ‘무장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일본인이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해선 안 될 일입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워야 합니다. (2차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 유럽 안에서 인정받은 것처럼, 일본도 아시아 국가들한테 인정받고 함께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본엔 북한을 무서워하는 시각이 있고, 반대로 차별하고 멸시하는 시선도 있습니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런 면이 있는데, 그것은 일본 안에서 해결할 문제입니다.”

- 지난 8월10일 간 나오토 총리가 ‘한일병합 100년 담화’를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일보 전진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담화를 낸 것이 잘된 일입니다. 우리(한·일 지식인들)는 총리 담화를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낼지 안 낼지 확실치 않았습니다. 민주당 정권에도 보수적인 인물이 많이 섞여 있음을 감안하면, 담화를 냈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한일병합조약이 ‘한국인의 뜻에 반하여 이뤄졌다’고 밝힌 부분도 평가할 만합니다. 문장의 주어가 확실하지 않은 게 불만이지만, 어쨌든 ‘병합조약을 일본이 강제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이상의 담화가 나오기는 좀처럼 어려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하토야마와 달리 간 총리 방향성 부족
‘독도 거론’ 방위백서 내용 바꿀 의지없어
“일, 한반도 관계 개선위해 사죄 먼저 해야”

- 이번 간 총리 담화에는 ‘병합조약이 불법·무효’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걸 인정하면 전후 배상으로 연결될 것을 우려해서였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총리 담화가 전후 배상으로 연결되는 것을 잘 피해서인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전후 배상 문제가 일본에서는 그렇게 민감한 문제입니까?

“일본은 식민지였던 필리핀·베트남 등에 배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배상은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했습니다. 냉전체제 아래서 일본은 ‘배상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익숙해졌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맺을 때 다 배상을 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남은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원폭 피해자 문제, 사할린 잔류자 문제, 강제연행 피해자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특히 그렇습니다. 이런 사안들은 확실히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한·일 지식인들이 선언에서 밝힌 대로 ‘병합조약이 애초부터 무효였다’고 일본이 새롭게 인정한다고 해서 배상문제가 달라질 것은 없다고 봅니다. 한국 쪽은 지금껏 그렇게 해석해왔으니까요.”

-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은 ‘국가 차원의 배상은 끝났다고 해도, 시민 차원의 배상’은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일본에 끌려와 전혀 보수를 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린 일로 여러 기업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이 기금을 만들어 유족 등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습니다. 독일이 만들었던 ‘연대미래기금’ 같은 방식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하고, 후손들을 교육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 총리 담화에 대해 한국에서 어떤 평가를 하는지 들어보셨습니까?

“한·일 지식인 선언을 한국에서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 총장이 ‘반보 전진’에 불과하다고 한 평가를 들었습니다. 총리 담화를 가장 높게 평가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던 듯합니다. 우리가 조금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발표 날짜였습니다. 우리는 병합조약 체결일인 22일이나 공포일인 29일에 발표하는 게 맞다고 봤는데, 한국 정부의 강한 요청에 따라 8월15일을 앞두고 발표했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 일본 정부는 간 총리 담화 발표를 앞두고, 미리 예정돼 있던 방위백서 발표를 미뤘습니다. 머잖아 백서를 발표할 때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표현이 또다시 나오면 한국 국민들이 ‘도대체 뭐냐’고 문제삼지 않을까요?

“올해 방위백서 기술이 달라질 상황은 아니라고 봅니다. 작년과 똑같이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인데, 한국이 무단점령하고 있다’는 기술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자민당 정권 시절의 잘못된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민주당 정권에 아직 그럴 힘이 없습니다. ‘아직’인지, ‘앞으로도 계속’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바꾸기로 했다면 여러 저항이 있어도 결국 그 길로 갈 수 있는데, 지금의 간 총리 내각은 그런 방향성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하토야마 정부 때와 같은 미래지향적인 메시지가 없습니다. 방위백서의 기술이 어떻게 돼 있느냐보다, 전체로서 간 총리 내각이 무얼 바꾸려는 것인가, 과거 자민당 정권과 무엇이 다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 더 심각합니다.”

- 총리 담화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습니다.

“한국인이란 표현은 일본이 식민지 통치를 했던 전체 한반도 사람을 지칭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간 총리가 얼마나 의식하고 그런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했다고 본다면 (일제가) 남한만 합병한 것이라는 이상한 얘기가 돼버립니다.”

- 일본 신문이 총리 담화를 촉구하는 지식인 선언을 거의 기사화하지 않은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교도통신>이 기사를 썼고, <아사히신문>이 작게 다뤘습니다. 놀랄 만큼 기사가 작았는데, 지식인 사회의 영향력이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미디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004년 헌법 제9조 개정 논란과 관련해 2000개가 넘는 단체가 성명을 냈을 때도 여론의 반향은 컸지만 언론은 작게 다뤘습니다. 올해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와 관련한 지식인들의 성명 발표도 아예 취재조차 하지 않은 곳이 많았습니다. 미디어의 의식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반인의 의식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 매우 아쉽습니다.”

- 식민지배로 인해 피해를 입은 한국인을 돕는 모임이 일본에 매우 많은 것을 보고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젊은 분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습니다. 미래세대가 어떻게 하면 양국의 과거사를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한국인에 대한 편견·차별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교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멋진 이미지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일본과 한국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도 민족성도 닮았고, 대통령제냐 내각제냐의 차이는 있지만 정치체제도 비슷합니다. 여러 차원에서 교류를 넓혀, 공통된 인식을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 문제, 환경문제, 수자원 문제 등 공통된 과제를 연구하고 협력해서 해결해나가다 보면 뭔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거기에 북한도 참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납치문제를 비롯해서 일본과 북한의 관계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상대를 계속 밀어붙이면 뭐가 될 거라는 발상은 잘못입니다. 상대도 반발하고 나옵니다. 대화하고 교섭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민주당 정부 안에서는 대화를 강조하는 분들도 있지만,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습니다. 앞으로 계기를 잘 살려야 합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가 한-일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듯이 말입니다.”

- 일본에선 중국을 어떻게 봅니까? 일본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는 쪽인가요, 한국과 함께 3국이 협력할 파트너로 보는 쪽입니까?

“중국에 대한 공포심도 물론 있습니다. 일본이 과거에 중국에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더 무섭게 보이는 겁니다. 하지만 중국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져 왔다고 봅니다.”

인터뷰/글·사진 정남구 도쿄 특파원 jeje@hani.co.kr


 오카모토 아쓰시
오카모토 아쓰시
■ 오카모토 아쓰시는 누구

1954년에 태어난 ‘전후세대’인 오카모토 아쓰시(56)가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다니던 1970년대, 한국은 군사정권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에 맞서 민주화운동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대학 2학년 때 일어난 김대중 납치사건은 그에게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줬다. 한국에 유학중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다 거짓자백을 피하기 위해 난로를 뒤집어쓴 재일동포 서승(현 리쓰메이칸대학 교수)씨의 이야기를 듣고, 김지하의 시를 읽으며 그는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1977년 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일본 진보파의 지적 거점이라 할 출판사 이와나미서점에 입사했다. 대학시절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 월간지 <세카이> 편집부에서 일하며 그는 한국과 깊이 만났다. 1996년부터 편집장을 맡아, 14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본의 ‘젊은 진보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그는 한반도 문제를 다룬 강연회나 토론회의 단골 사회자다. 지난 3월 이와나미서점과 한반도평화포럼이 공동주최한 한·일 지식인 포럼, 5월과 7월의 ‘한·일 양국 지식인 선언’ 발표 기자회견의 사회를 맡은 것도 그였다. <북한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2003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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