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실직자들이 3일 밤 도쿄 히비야공원에 마련된 실직자 난민캠프 ‘해넘이 파견마을’에서 나눠준 무료 저녁을 먹고 있다.
3월까지 8만5천명 실직…고학력자도 예외없어
간접고용 확대 ‘노동자 파견법’ 재개정 요구 봇물
간접고용 확대 ‘노동자 파견법’ 재개정 요구 봇물
지난 3일 저녁 7시30분, 일본 도쿄 도심의 히비야 공원. 6개월 ‘일용직 파견노동자’로, 일하던 물류회사에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날 갑자기 해고당한 고바야시 요시노리(36·가명)는 실직자 난민캠프에서 무료로 나눠준 저녁을 먹은 뒤 난롯불 주변에서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해고로 회사 기숙사에서도 쫓겨나 잠자리마저 잃게 된 그는 인터넷 카페를 전전하다 돈마저 바닥났다. 3년 동안 시급 1천엔(약 1만5천원)의 일용직 파견노동자로 일해왔지만, 한 달에 손에 쥐는 10여만엔대의 돈에서 기숙사비를 제하고 나면 저축은커녕 생활비도 빠듯했다. 꼼짝없이 엄동설한의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에서 그는 전단지 한장을 건네받았다. 반빈곤네트워크와 렌고 등 20여개 시민·노동단체가 지난해 12월31일부터 5일까지 히비야 공원에서 갈 곳 없는 실직자들에게 양식과 잠자리는 물론, 노동·생활상담까지 제공하는 실직자 난민캠프 ‘해넘이 파견마을’을 연다는 내용이었다.
3일 해넘이 파견마을에 입촌한 그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몸과 함께 마음의 추위마저 녹은 듯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노동상담을 해준 변호사의 권유로 구청에 생활보호 신청까지 마쳤다.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일부터는 일자리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겠다.” 그는 어둠 속에서 헤매다 한줄기 빛을 찾은 사람처럼 희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유학까지 했던 화가 가와나카코 가오루(55)는 3시간을 걸어 히비야 공원까지 왔다. 3개월 전 파견노동 일자리에서 해고 통지를 받은 그는 수중에 100엔밖에 없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게 굉장히 어렵다. 약자를 위한 정치와 행정을 펼쳐줬으면 좋겠다. 5년 전에도 생활보호 대상자 신청을 냈는데 3차례나 거부당했다.”
해넘이 파견마을이 새해 벽두부터 일본 사회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4일까지 주최 쪽 예상의 3배가 넘는 400여명의 실직자가 입촌 등록했다. 새해 첫날 자살하려다 미수에 그친 46살의 실직자는 라디오에서 소식을 듣고 찾아오기도 했다.
이들 중 200여명이 변호사의 생활·노동 상담을 거쳐 구청에 생활보호 신청을 했다. 자원봉사자도 400명이 넘었다. 언론들도 매일 중계 보도를 하고 있다. 민주·공산·사민 등 5개 정당은 5일 임시국회가 개원되면 비정규직 고용과 숙소의 확보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의견의 일치를 봤다.
히비야 공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후생노동성도 이례적으로 지난 2일 밤 강당문을 열어 250여명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후생노동성은 직원들의 출근이 시작되는 5일 이후의 대책을 요구받은 뒤, 폐교된 학교 등 도내 4곳을 12일까지 제공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파견마을도 5일 이후 장소를 옮겨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파견마을 사람들의 사례는 한때 ‘종신고용’이라는 말이 당연시되던 일본의 명성을 무색게 한다. 후생노동성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통계를 보면, 내년 3월까지 일본 기업들이 경기 불황을 이유로 8만5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들 중 재취업이 확정된 사람은 10% 남짓이다. 특히 파견노동자들이 해고자의 67.4%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실직과 함께 회사 기숙사에서도 쫓겨날 상황이다.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신자유주의식 규제완화 조처의 일환으로 ‘노동자 파견법’을 개정해 제조업에까지 파견노동을 전면 확대했다. 거의 모든 기업체들이 정규직의 50~60% 수준의 낮은 임금을 주고 파견노동자를 3~6개월 단기 고용한 뒤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파견노동자는 384만명으로 1998년에 비해 4배 가량 늘어났다. 후생노동성 통계를 보면, 2007년 파견노동자는 전년도에 비해 19.6% 늘었으나 임금은 오히려 10% 정도 줄었다. 파견마을실행위원회는 3일 밤 후생노동성을 방문해 “조속히 노동자 파견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해 파견사원 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긴급 특별입법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당도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노동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등 파견노동자 문제는 올해 일본 총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2004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는 신자유주의식 규제완화 조처의 일환으로 ‘노동자 파견법’을 개정해 제조업에까지 파견노동을 전면 확대했다. 거의 모든 기업체들이 정규직의 50~60% 수준의 낮은 임금을 주고 파견노동자를 3~6개월 단기 고용한 뒤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파견노동자는 384만명으로 1998년에 비해 4배 가량 늘어났다. 후생노동성 통계를 보면, 2007년 파견노동자는 전년도에 비해 19.6% 늘었으나 임금은 오히려 10% 정도 줄었다. 파견마을실행위원회는 3일 밤 후생노동성을 방문해 “조속히 노동자 파견법을 근본적으로 개정해 파견사원 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긴급 특별입법 등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민주당도 제조업체에 대한 파견노동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등 파견노동자 문제는 올해 일본 총선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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