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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현장 ‘순례’

등록 2006-12-03 17:11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동대지진 때 재일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을 찾아 당시 참상을 되새기고 있다.  국민보호조례를 생각하는 스미다연락회 제공
일본 시민단체 회원들이 관동대지진 때 재일 조선인 학살이 벌어졌던 현장을 찾아 당시 참상을 되새기고 있다. 국민보호조례를 생각하는 스미다연락회 제공
일 스미다 주민들 “교훈 살려 인권 배려를”
2일 오후 일본 도쿄 스미다구 사회복지회관 회의실. ‘국민보호조례를 생각하는 스미다 연락회’라는 시민단체의 회원들이 숨을 죽인 채 비디오를 보고 있었다. 1983년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이 만든 1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 <숨겨진 할퀸 자국>이다.

1923년 9월1일 관동대지진 때 스미다 일대에서 벌어진 재일 조선인 학살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체험담을 기록한 필름이다.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약을 탔다거나,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면서 무고한 조선인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접한 이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비디오 상영이 끝나자 이들은 80여년 전 실제 학살이 일어난 현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미다와 고토구는 당시 요코하마와 더불어 조선인 희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군인들이 기관총으로 사살한 뒤, 주검을 무더기로 파묻은 곳도 있다. 이들은 그런 장소들을 차례로 찾으며 당시의 기억을 되새겼다.

이들이 방문한 또 하나의 뜻깊은 장소는 감사비가 있는 히가시무코지마의 절 호센지다. 관동대지진 때 자신의 아버지를 살려준 일본인 사나다에게 보은하기 위해 재일동포 정종석씨가 세운 것이다. 당시 사나다가 경영하는 철공소에서 일하던 17살인 그의 아버지는 사나다의 집으로 피신했다. 자경단이 거기까지 뒤지려 했으나 사나다가 위험을 무릅쓰고 지켜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뒤늦게 이 얘기를 들은 정씨가 수소문에 나서 사나다의 손자를 찾은 뒤 비 건립을 추진했다. 정씨의 지인이 한국에서 만든 비석을 비행기로 날라와 2001년 이 절에 세웠다.

이 단체의 모태인 ‘유골을 발굴하고 추도하는 모임’은 1982년부터 매년 9월1일 아라카와강 둔치에서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번에 현장 순례까지 기획한 것은 스미다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는 역사적 사실을 구청이 인정하도록 하려는 취지다.

스미다구는 비상사태 발생 때 국민 보호의 명분으로 추진될 국민동원체제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지자체다. 때문에 시민단체 회원들은 관동대지진의 교훈을 되살려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때 외국인, 특히 재일 한국·조선인의 인권을 배려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구청은 관내에서 그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이들은 당시 살인 가해자의 재판기록이 담긴 자료까지 제시하며 진정서를 냈으나 채택되지 않자 현장 순례에 나섰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주민 이케우치 아키노리는 “당시 학살은 조선인 멸시에서 비롯한 것이므로 일본인들에게 그런 생각이 아직 남아 있다면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며 “이런 우리의 마음이 스미다구와 교류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주민들에게도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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