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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국

중국판 손기정 ‘류창춘’ 외로운 질주 영화로 부활

등록 2007-05-13 21:46

중국 국기 고집한 스포츠 영웅 류창춘
중국 국기 고집한 스포츠 영웅 류창춘
32년 LA올림픽 때 중국 국기 고집한 스포츠 영웅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중국은 단 한 명의 선수를 내보냈다. 열강의 침략에 시달리던 처지라 대규모 선수단을 꾸릴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육상 단거리 100m와 200m에 출전한 이 선수의 이름은 류창춘(사진)이었다. 그는 중국인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지만, 올림픽 조별 예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쓸쓸히 귀국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만들어진다. 〈한 사람의 올림픽〉이란 제목의 이 영화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는 조국을 위해 단기필마로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던 한 풍운아의 삶을 그린다.

랴오닝성 다롄에서 태어난 그는 중국 최고의 단거리 육상선수였다. 1929년 전국대회 100m와 200m, 400m 경기에서 모두 중국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가 이때 세운 100m 기록 10초8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우승한 이의 기록과 같았다. 그는 보폭을 넓게 해서 성큼성큼 달려가는 독특한 주법으로 중국 육상계를 휩쓸며 영웅으로 떠올랐다.

일본이 그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쳤다. 1932년 만주국이라는 꼭두각시 나라를 세운 일본은 그를 만주국 대표로 올림픽에 내보낼 요량이었다. 그러나 그는 만주국 대표로는 올림픽에 나가지 않겠다고 성명을 발표한다. 일본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이 성명에 감동한 군벌 장쉐량이 그에게 1000달러를 주며 중국 대표로 나설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이를 기꺼이 수락한다.

그는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25일 만에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하는 고난의 항해였다. 몸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3일 뒤 올림픽 100m와 200m 경기에 출전한 그는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메달의 기대를 모았던 100m 기록은 11초1에 그쳤다. 200m에선 22초1로 자신의 기록을 경신했지만, 역시 올림픽의 벽을 넘는 데는 실패했다.

올림픽이 끝나자 그의 돈도 바닥났다. 그는 현지에 정착한 중국인들의 십시일반으로 겨우 배표를 사서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본의 서슬퍼런 눈초리였다.

그는 언젠가는 중국이 올림픽을 여는 날이 올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중국환경과학연구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그의 아들 훙량은 영화 제작발표회에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낙관주의와 애국심을 남겨줬다”고 말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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