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9일 첫 해외 순방에 나선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마드리드/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20일부터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를 계기로 추진됐던 한·일 정상회담을 보류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회담 개최 계획에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18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는 양국 정상의 정식 회담을 보류하는 쪽으로 조율하고 있다”며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눌 가능성은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어 한국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지난 15일 발표한 것에 대해 “일본 외무성이 ‘신뢰 관계의 문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발표는 삼가달라’고 한국 쪽에 항의했다”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한국 정부가 개최하겠다고 발표한 일·한 정상회담은 일본 쪽이 신중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총리관저에선 (한국 정부가 발표한) 정상회담 합의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일·한 접촉이 이뤄지더라도 서서 (간단히) 대화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한·일 정상회담 발표에 반발하는 데는 내부의 상황도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유엔총회 참석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현지시각 19일)이 겹치면서 정상회담 등 외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마이니치신문>에 “(영국 여왕 장례식 때문에) 이미 결정된 일정도 차례차례로 취소됐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도 조율 중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선 상당히 민감한 의제인 한·일 정상회담이 공식화되자, 강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19일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전세기를 타고 하네다공항에서 뉴욕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일 정상회담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일본 쪽 보도에 관해 <한겨레>에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 또한 “(양자회담을) 조율 중인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대통령실은 오는 20~21일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정상회담을 하기로 양쪽이 합의를 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서로 이번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흔쾌히 합의했다”며 “강제동원 문제 등 현안은 한국이 자체적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하고, 일본과도 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고 있기에 정상이 갑자기 체크할 필요도 없는 상태에서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현시점에서는 전혀 결정되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 발표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 바 있다.
한-일 정상의 대화가 정식 정상 회담 대신 ‘풀어사이드’(약식 회동)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풀어사이드는 공식 회담장 밖에서 격식 없이 진행하는 약식 회담이다.
한편, 이번 유엔총회에선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의 회담도 추진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민영방송 <제이엔엔>(JNN)은 “일·한 외무장관이 19일 뉴욕에서 회담을 갖는다”고 보도했다. 만남이 성사되면 한·일 정상회담과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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