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1시 도쿄 미나코구에 있는 절 ‘조죠지’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절 안쪽에 마련된 헌화대에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12일 오후 1시 일본 도쿄 미나토구에 있는 대형 사찰 ‘조조사’.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8일 거리 연설 중 총격으로 숨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장례식에는 부인 아키에 여사 등 유족들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 아베파 측근 의원 등 소수만 참여해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식이 시작되기 전 절 안쪽에 헌화대가 마련돼 시민들의 조문을 받았다. 영정사진 속 아베 전 총리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절 입구부터 수백미터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날이 흐렸지만 30도가 넘는 습한 날씨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흘렀다.
12일 오후 1시 도쿄 미나코구에 있는 절 ‘조죠지’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절 안쪽에 마련된 헌화대에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조문을 마친 한 80대 여성은 “‘일본을 위해 수고하셨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문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던 50대 남성도 “분명 공과가 있는 정치인이지만, 일본이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았다. 상실감이 크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운구차는 절을 나와 고인이 생전 총 8년8개월 동안 누비고 다녔던 총리관저, 자민당 본부, 국회 등이 위치한 나가타초를 한 바퀴 돈 뒤 화장시설로 향했다. 흰색 마스크를 쓴 채 운구차 안에 앉은 아키에 여사의 수척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59개 국가·지역 등에서 1700건 이상의 조의 메시지가 쇄도했다”며 “고인이 일본 외교에 남긴 큰 족적을 다시금 느낀다”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라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 미-일 동맹을 강화했고, 미국의 세계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 포위를 위한 협의체인 쿼드(Quad)의 기틀을 제시했다. 2015년 말엔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통해 역사 문제를 소거하고,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하려 했다. 2018~2019년엔 한국 정부가 힘을 기울이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전력으로 저지했다.
12일 오후 1시 도쿄 미나코구에 있는 절 ‘조죠지’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절 안쪽에 마련된 헌화대에 일반 시민들의 조문이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장례를 앞두고 11일 열린 추도행사(쓰야·밤샘)에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 등 외국 인사와 시민 등 2500여명이 다녀갔다. 라이칭더 대만 부총통은 아베 전 총리 자택을 방문해 유족을 위로했다. 그는 1972년 단교한 뒤 일본을 찾은 대만 최고위 관리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윤 대통령은 조문록에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고 아베 신조 전 총리님의 명복을 기원한다”며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 일본이 앞으로 긴밀히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라고 적었다. 정부는 향후 열리는 일본 정부 공식 추도식에 한덕수 국무총리,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의 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장례식을 앞둔 11일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필생의 과업’이라며 “정열을 기울여온 헌법 개정 등의 난제에 대응해 가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이날 도쿄를 울린 장례식은 고인을 위한 것인 동시에 일본 전후 평화주의가 쓸쓸히 막을 내렸음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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