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 도쿄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열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 악수를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조, 웰컴 백 투 재팬.”(조, 일본에 다시 잘 오셨습니다.)
23일 오후 2시15분. 하얀 마스크를 쓴 미·일 정상이 이날 회담이 열린 도쿄 아카사카 영빈관의 기자회견장으로 입장하자, 장내를 가득 메운 기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들을 맞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부상 등 유럽과 아시아 ‘두개의 전선’에서 힘겨운 대치를 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듯 두 정상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영어로 짧은 인사를 건네자 잔뜩 긴장해 있던 장내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
엄혹한 현재 국제 정세를 반영하듯 기시다 총리와 바이든 대통령이 쏟아낸 말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두 가지 의미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중요하다”며 운을 뗐다. 그가 언급한 두 가지의 변화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라는 국제질서 근간을 뒤흔드는 위기”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란 문제였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미-일은 2개의 큰 민주주의 국가이자 두 경제대국으로, 우리의 협력은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잔혹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묻는 데 불가결”하다고 말했고, ‘대만 유사사태가 발생할 경우 미국이 군사적으로 관여하겠냐’는 질문에 “그렇다(Yes), 그게 우리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이후 두 나라가 공개한 공동성명을 보면, 중·러의 거센 도전에 맞서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지키겠다는 두 나라의 결의를 읽을 수 있다.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의 강화’란 부제가 붙은 공동성명에서 미-일은 “글로벌 파트너로서 미-일 양국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가 불가피하며, 어떤 장소에서 벌어지든 국제법과 자유와 공정한 경제 질서에 대한 위협은 우리의 가치와 이익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확인한다”고 선언했다.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지켜낸다는 명분으로 두 나라는 이번 회담을 통해 지난 70여년간 이어져온 미-일 동맹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긴 여정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1952년 4월 동맹이 결성된 뒤 미국은 외부의 적을 공격하는 ‘창’, 일본은 전수방위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자국을 향한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앞으로 두 나라 모두 상대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창’ 역할을 맡게 됐다. 공동문서에서 기시다 총리는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능력을 포함해 국가 방위에 필요한 여러 선택지를 검토하는 결의”와 “일본의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해, 그 뒷받침이 되는 방위비가 상당한 정도로 증액되는 결의”를 표명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강하게 지지”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1% 수준에 머무르는 방위비를 2%대로 대폭 늘리고, 그동안 갖지 못했던 ‘적기지 공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일본이 본격적인 재군비에 나서 중국과 북한의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미-일 동맹이 이 같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 직접적 원인은 중국의 부상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재균형 정책’을 시작했고,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발전했다. 바이든 대통령 2년차에 접어들며 미국은 영국·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함께하는 군사동맹인 ‘오커스’(AUKUS)와 이날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통해 안보·경제 양쪽 모두에서 ‘대중 포위망’을 완성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으로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지키는 수호자 위치를 확보해가고 있다.
이런 변화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더 큰 ‘안정’을 가져올지, 중국의 반발을 불러 더 큰 혼란을 가져올지 예단하긴 쉽지 않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각오를 다지듯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 그리고 자유롭고 열린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데 일-미가 불퇴전의 결의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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