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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기구·회의

반기문 차기 유엔총장 “유엔 문화 확 바꾸겠다”

등록 2006-10-31 18:55수정 2006-11-01 09:33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
대북특사 임명 핵문제 적극 해결 모색
반기문 차기 유엔사무총장은 30일 본지가 주선한 문정인 국제안보대사(연세대 교수)와 대담하면서 “유엔의 문화를 전부 바꾸겠으며, 지금보다 훨씬 더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는 기구로 태어나도록 하겠다”고 강력한 유엔 개혁 의지를 밝혔다. 또 “유엔을 21세기의 도전과 과제를 적합하게 처리해 가는 기구, 다자주의 외교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반 차기 사무총장은 한반도 핵문제에 대해 “국제적 신망이 있고, 남북한에 신뢰를 줄 수 있는 국제적 정치인이나 외교관을 대북특사로 임명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거듭 확인하면서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적인 역할도 할 용의가 있다.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그는 11월15일부터 뉴욕으로 가 사무총장 인수위 작업을 지휘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한국이 유엔에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유엔이 추구하는 3대 목표인 국제평화·안보 개발, 공동번영, 인권 신장 가운데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의 개발·공동 번영에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대담자로 문 대사가 나서 50여분에 걸쳐 북한 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서 유엔의 역할, 사무총장 취임 100일 안에 제기될 당면 최대 과제인 인사문제와 개혁을 비롯해 안보리 개편 등 유엔의 개혁, 사무총장의 리더십 문제에 대한 대처, 앞으로의 비전 등을 물었다.

반 차기 사무총장은 전통적으로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과의 갈등이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 “유엔이 미국을 필요로 하고, 미국도 유엔을 필요로 한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사무총장보다도 미국과 유엔의 관계를 조화롭게 처리해 나가겠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의 공과에 대해선 “개혁적인 이니셔티브를 많이 취했다”며 “조직을 좀더 투명하게, 윤리관을 확실하게 해 신뢰받는 유엔이 되도록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자면 무엇이 필요하냐는 물음에 “현재 16개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 9만2천명이 나가 있는데, 그 중 한국은 31명뿐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서 기여도와 의지 면에서 너무 약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국민들이 국제 문제를 보는 시야를 넓혀줄 것”을 당부했다.

강태호, 박민희 기자 kankan1@hani.co.kr


<인터뷰전문>

문정인 교수 벌써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을 순방하며 차기 유엔 사무총장 행보를 시작한 것 같다. 미국에선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미스터 랜드슬라이드(압승)’라는 얘기도 들었다는데 부시 대통령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반기문 장관 워싱턴 가서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을 만나려 했는데,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 때문에 정신 없이 바쁜 상황이었다. 우선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시간되면 잠깐 얼굴만 뵙자고 했는데 2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눴다. 부시 대통령은 앉자마자 ‘미스터 랜드슬라이드’라며 축하한다고 했고, 유엔 개혁과 북한 핵, 두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엔 개혁에 대해선 미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줄테니까 소신껏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핵 문제는 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고 <시엔엔> 등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설을 보도하고 있어 부시 대통령이 신경을 많이 쓰고 당혹해하는 이슈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럼에도 노대통령과 합의한 데로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으며, 노 대통령과 얼마 전에 전화통화를 통해 좋은 대화를 했고, 중국 국가주석과도 협의했다고 말했다. 북핵 해결, 유엔 개혁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전통적으로 유엔 사무총장과 미국은 항상 대립각이 강했다. 유엔의 다자주의와 미국의 일방주의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많았는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이 문제를 잘 다룰 수 있을 것으로 보나.

그 문제에 대해 외신으로부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과 미국의 관계를 예로 들면서 외신들이 유도심문 하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보다도 미국과의 관계, 유엔의 일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누가 뭐라해도 유엔 분담금도 가장 많이 내고, 현실적으로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유엔의 가장 중요한 회원국임에 틀림 없다. 유엔은 미국의 적극적인 참여와 도움 없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대신 미국의 입장에서도 민주주의 확산, 세계 공동번영, 인권신장 등 미국이 전세계와 함께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을 가장 잘 대변하고 이행해 갈 수 있는 도구가 유엔이다. 유엔이 미국을 필요로 하고, 미국도 유엔을 필요로 한다. 서로 필요로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사무총장보다도 미국과 유엔의 관계를 잘 조화롭게 처리해 나가겠다.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주석을 만났다. 이번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이 공동으로 (반 장관을) 지원한 것도 이례적이었다고 본다.

후진타오 주석도 유엔 개혁에서 신임 사무총장의 역할이 중요하며 중국 정부가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10월13일 노대통령의 실무방문 정상회담에서도 좋은 얘기를 나눴고, 중국 정부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실질적인 협력 관계, 두 나라의 역할을 더해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얘기했다. 리자오싱 외교부장, 탕자쉬안 국무위원과도 상당히 오랫동안 만났다.

리자오싱 부장이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되는데)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얘길 들었는데

중국이 공개적으로 지지하진 못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적극적으로 많이 도와줬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중 중국과 미국의 적극적인 도움이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 이번 방문에서 중국은 외교통상부 장관보다는 사무총장 당선자 자격으로 모든 예우를 했다. 정상들이 머물고,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머물렀던 댜오위타이(조어대) 11호각에서 머무르도록 하는 등 환대를 했다.

31일부터 프랑스와 러시아도 방문하는데 영국은 방문 일정에서 빠져 있다.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것 같은데.

한꺼번에 가려고 했는데 영국은 토니 블레어 총리와 일정이 안맞아서 뉴욕 간 뒤에 가기로 했다. 일정은 정해졌다.

프랑스, 러시아 방문에선 뭘 얘기할 건가?

안보리 상임 이사국 5개국(P5)의 적극적인 역할과 협조가 유엔 사무총장에게 중요하니 그런 문제를 협의할 것이다. 특히 프랑스가 유엔 평화유지군이나 국제정치에서 많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도움을 받으려 한다. 러시아도 특히 북핵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최근 북핵 문제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장관 자격으로도 방문하는 것이니 북핵 문제와 유엔 문제를 협의할 것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한국의 레바논 파병 문제를 요청할 가능성이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레바논 파병 문제는 우리가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고, 검토 중이다. 사실은 한국이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중동정세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다. 레바논 유엔임시군(UNIFIL)은 이라크 파병과도 성격이 다르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문제다. 현재 16개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이 9만2천명이 나가있는데 그 중 한국은 31명 뿐이다. 9만2천명 중 31명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로서 기여도와 의지면에서 너무 약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평화유지군에 재정 기여는 많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재정기여는 어차피 국력에 따라 하는 것이고, 실질적인 기여를 얼마나 하는지를 중시한다.

국제공헌국가의 개념이 필요한 게 아닌지. 한국이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우리 국민들이 국제 문제를 보는 시야를 넓혀야한다. 세상이 우리를 보는 눈은 머리 위 높이 와 있는데 우리는 중간, 배 정도를 보고 있어 엄청난 시각 차이가 있다. 언론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저녁 주요 뉴스를 보면 40분중 35분, 어떤 때는 거의 전체가 국내 뉴스만 나온다. 신문에서도 국민들의 국제적 안목을 높이고 국제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전하는 뉴스가 많지 않다.

다음에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를 늘려야 한다. 현재 1인당국민소득(GNI) 대비 0.06%를 내고 있으니 어디가서 말하기도 힘들다. 하위권이 아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최하위다. 11위인 국력에 상응하는 만큼 올려야 한다. 유엔의 목표는 2015년까지 국민소득의 0.7%로 늘리도록 돼 있다. 그런데 우리는 2015년에 0.25%를 목표로 잡고 있다. 2030년이 되면 0.3%로 한다는 것이다. 이미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0.33%인데 어떻게 25년 뒤인 2030년의 목표가 0.3%일 수가 있나? 우리가 재원이 없는 건 아니다. 정부 지도자들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외교부 조직을 지금처럼 몸으로 떼우는 식으로 놔두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외교부 예산이 정부예산의 280분의 1밖에 안된다. 유엔회원국만 192개국인데 한국의 공관수는 142개다. 외교부 직원도 1천704명뿐인데 인구 5백만의 덴마크보다도 적은 것이다. 한국 외교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공관은 중국보다 100개 적고, 일본보다 60개쯤 적다. 인구가 한국의 3분의 1인 네덜란드의 외교부 직원이 3천400명이다. 참여정부가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고쳐야 한다고 본다. 저 역시 지난 3년8개월간 계속 이걸 해결하려 했는데 지도력 부족을 절감한다.

국제기구 분담금 미납 문제도 있는데.

분담금을 안내면 내년부터는 제 명의로 대한민국 정부에 독촉장 보내야 하는 입장이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세무서장이 자기 동네 돈은 안내면서 다른 동네 가서 세금내라고 해야할 판이다.

사무총장이 된 것은 개인적 역량도 있지만, 참여정부가 강대국 외교, 다변화 외교, 문화외교에 거둔 성공으로도 볼 수 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장관이 북핵 문제를 해결해놓고 가야하는 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점이다. 북한이 핵실험까지 해버렸으니 이 문제는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뿐 아니라, 동북아 핵 도미노, 세계적 차원의 핵확산 위협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북핵문제는 한반도,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의 문제, 유엔의 주요 문제가 됐다. 장관이 책임지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매듭을 못 지었으니 유엔 가서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북핵문제에 대한 복안은 뭔가?

유엔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높은 관심을 갖겠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북한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대북특사를 임명하기도 했지만 임기 10년 동안 북한 땅을 한번도 밟지 못한 상황이 돼버렸다. 불행한 일이다. 모리스 스트롱 대북특사가 불미한 일에 연루돼 중간에 사퇴하고 현재 공석중이다. 국제적 신망이 있고, 남북한에 신뢰를 줄 수 있는 국제적 정치인이나 외교관을 대북특사로 임명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 6자회담이 부드럽게 진행되도록 촉진하는 역할도 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적인 역할도 할 용의가 있다. 관련국들과 협의를 해야겠지만 제가 직접 개입해야 할 때는 개입할 용의가 있다. 지켜봐달라.

한반도 정전 협정체제는 유엔이 만들었다. 한반도에서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만드는 과정에서 남북한, 미국, 중국 역할도 중요하지만 유엔이 참여해서 법률적, 제도적으로 종결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협정체제에 대한 복안은?

이 문제를 라이스 국무장관과도 협의를 했는데, 상황이 나빠져서 결과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기본적으로는 한미간에 이 문제를 검토해 나가겠지만, 유엔이 불가분 관여돼 있는 상황이니 유엔이 어떻게 이를 도울 수 있는지 정무적으로 판단, 유엔의 전문가들과 합의하겠다.

사무총장 인선 과정에서 영국쪽에서 반 장관을 삐딱하게 보는 일이 많았다. 3차투표 끝나고 <비비시> 서울 특파원이 인터뷰를 하러와서 영국에서는 반 장관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없어 유엔 개혁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반 장관은 ‘합의형 리더십’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카리스마적 리더십보다 유엔 개혁에 더 낫다고 이야기했다. 이 리더십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장관은 동양적 겸손을 강조하지만, 유엔은 무임승차한 관리들이 판치는 골치아픈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리더십 문제가 막판 쟁점이 됐고, 답변하기가 참 곤란한 문제였다. 동서양 전통과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문제라고 생각했고, 다른 문명과 문화 간에 이해를 높이려는 노력을 좀더 해야한다고도 생각했다. 38년 동안 공직에 있으면서 중요한 판단을 해야하는 일이 많았지만, 필요할 때는 결단력 있게 필요한 판단을 해왔다. 물론 나는 화합형이니까 여러 의견을 듣지만 필요한 판단은 내가 했다. 그쪽에서는 외유내강을 이해 못한다. 나는 책상이나 치고 목소리 높이는 게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겸손함이란 사람의 태도이지 비전이나 추진력과는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결국은 수락연설의 상당부분을 할애해 이 점에 대한 내 철학을 얘기했다. 그 뒤 그런 얘기는 별로 없다. 192개 회원국 유엔 회원국 간에 불신과 의혹도 많고, 의견들이 양분, 삼분, 사분 돼 있다. 남의 얘기를 많이 듣고 몸소 실천해서 화합을 이뤄내고 다른 의견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가겠다. 자신이 있다.

최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재미있는 칼럼이 실렸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반 장관의 성공은 취임 첫 100일에 달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무차장, 사무차장보 인선, 조직 개편 등의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첫 100일 동안의 구상은?

인수위가 11월1일부터 출범한다. 장관특보였던 김원수 대사를 우리쪽 팀장으로 보내 유엔과 협력할 것이다. 내년초에 100일 동안의 과제, 1년 과제, 5년 과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다. 급선무가 인선이다. 사무차장, 사무차장보급 인사들이 내년 2월28일부로 계약이 만료된다. 명단을 받아보니 대상자들이 많더라. 인사원칙은 인사가 만사라고 보고 사무국의 사기를 진작시키돼 실질적으로 전문성을 함양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하겠다. 남녀 양성간, 지역간 균형도 검토할 것이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처음 취임할 때 사무차장 등에 세계 국제정치학의 대가들을 포진시켰다. 코피 아난의 경우는 미국, 영국쪽의 대표적인 학자들 중심으로 진용을 짰다. 그런식의 구상도 있는가?

아직 구체적 인선 구상은 없다. 특별보좌관 형식으로 정책적인 면을 보좌할 수 있는 인원은 학계 전문가를 쓰려고 한다. 사무총장 특별보좌관도 유엔의 전문적 경험을 가진 사람을 두고 비서실을 구성하려 한다. 비서실장은 아시아인이 아닌 사람으로 고르라는게 유엔 방침이고, 몇명을 인터뷰 중이다. 비서실 차장과 국장급에는 현재 김원수 대사를 포함해 외교부 국장급 한사람, 과장급 두사람 정도를 우리 팀으로 데려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소문에 반 장관은 결벽주의자니까 한국 사람이 (유엔에서) 역차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웃음).

제 스타일이 원래 ‘제 사람’을 특별한 인연으로 쓰는 일은 안한다. 한국인이 사무총장이 됐기 때문에 균형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러 한국인을 역차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엔 개혁이 지금 큰 문제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최근 ‘유엔이 계속 무기력하고 무능하고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유엔을 해체하거나 버려버리고, 민주주의 연합체를 만들어 유엔을 대체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처럼 유엔 개혁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유엔 개혁은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유엔의 비효율 문제 때문에 아예 유엔을 대체할 기구를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유엔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현재 어떤 기구도 유엔과 같은 정통성을 가진 다자주의의 최고기구를 대체할 수는 없다. 유엔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고, 관료주의 등으로 신뢰가 떨어졌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개혁을 하겠다는 것이다. 아난 사무총장이 기존에 내놓은 개혁 프로그램 등을 실천에 옮기고 이를 위해선 지역 이기주의와 국가 이기주의를 해소해야 한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해결이 안된다.

유엔의 권력구조도 큰 쟁점이다. 192개 회원국들의 다수결 원칙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의 거부권 행사가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안보리 개혁과 관련한 가장 중요한 문제다. 지난 10년간 안보리 개혁에 대해 워킹그룹이 활동해 왔고, 지난해에는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안보리 개혁도 유엔이 분열되는 쪽으로 가면 곤란하다.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대표성 있게 처리하는 것이 대원칙이지만,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해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 해법이 나올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겠다.

올해 유엔 인권이사회와 평화구축위원회가 창설된 것은 사실 큰 성과다. 이런 상황을 발전시켜 나가고 총회의 권위와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한국이 2001년에 56차 유엔총회 의장을 맡았을 때 유엔총회 기능을 활성화하기 위한 역할을 많이 했다. 의장의 권위를 높이고, 의장을 3개월 전 선출해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56년 만에 한국이 처음으로 한 것이다. 그 뒤 5년 동안 총회 의장국이 상당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이 이번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서도 평가를 받았다. 사실 지난 60년 동안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 2개월반 전에 미리 뽑힌 것도 처음이다. 한국이 5년 전에 만들어 놓은 유엔 총회 활성화 조치의 영향이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준비기간을 갖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유엔에서 사무총장 당선자에 대한 규정이 하나도 없고 예산 뒷받침도 없었다는 것이 당황스럽다. 60년간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선자 사무실과 차량은 어떻게 하느냐도 유엔에서 논의중이다. 원칙적으로 앞으로는 사무총장 인수 과정도 제도화해야 한다. 이번 일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안보리 상임 이사국 확대와 일본의 안보리 참여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민감한 문제다. 사무총장의 역할은 불편부당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10년을 어떻게 평가하나?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도 아난 총장의 여러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가겠다고 얘기했고, 수락연설에서도 그렇게 밝혔다. 아난 총장은 개혁적인 이니셔티브를 많이 취했다. 개혁, 인권, 밀레니엄개발계획의 구호를 만들어냈고 총회 활성화, 인권이사회 등 역할을 많이 했다. 그의 공과에 대해서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고, 과에 대해서는 논할 입장은 아니다. 그의 잘못을 내가 속으로 알고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조직을 좀더 투명하게, 윤리관을 확실하게 해 신뢰받는 유엔이 되도록 만들어 가겠다. 개혁과 관련해 여러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발전시켜 가겠다. 그런 과제들이 나에게 승계되는 것이다.

10년 뒤 코피 아난의 10년과 반기문의 10년을 비교하게 된다면 반기문 10년의 특징은 무엇이겠는가?

(유엔 사무총장을) 5년 할지 10년 할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유엔이 지금보다 훨씬 더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는 기구로 태어나도록 하겠다. 유엔의 문화를 전부 바꾸겠다. 유엔이 21세기의 도전과 과제를 적합하게 처리해 가는 기구로 만들겠다. 다자주의 외교의 중심이 유엔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겠다.

평화, 빈곤 퇴치, 인권 등 유엔의 주요 과제가 있는데 임기 동안 이것 만큼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과제는 뭔가?

유엔의 3대 축이 국제평화안보, 개발·공동번영, 인권신장·보호인데 그중에 열쇠는 개발·공동번영이라고 생각한다. 절망이 있는 곳에 분쟁의 싹이 튼다. 절망이 있는 곳에서는 인권 신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모든 것의 열쇠는 개발이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카 개발, 밀레니엄개발 계획이 중요하다. 물론 분쟁이 계속되는 데서 개발을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모든 분쟁과 갈등의 씨앗이 절망과 가난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런 요소를 없애야 한다.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이런 점에 우선순위와 정치적 의지를 둬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은 회원국들의 정치적 의지와 모멘텀을 유지해가면서 이런 점에 대한 우선 순위를 높여야 한다. 거기에 한국도 앞장서야 한다.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많이 도와줬다. 물론 국민들에게 감사해야 하지만 누구에게 가장 감사하나?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로 지명해 주지 않았다면 후보로 나갈 수가 없었다. 출마해야 당선이 되는 거니까. 노 대통령께서 확신과 신뢰를 가져 주셨다. 사실 외교 보좌관이 돼서 임명장 받기 전까지 노 대통령 얼굴을 뵌 적도 없었다. 인터뷰 한번 안했다. 당시 대통령 인수위 2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장관 후보로 인터뷰를 한 것으로 신문에 보도가 됐는데, 저는 일체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무조건 임명장 받으러 오라고 통보가 와서 그때 대통령을 처음 뵀다. 그 이후로 보좌관, 장관이 됐다. 후보로 지명한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 뒤로도 대통령이 신뢰와 확신을 가지고 정상들 만나실 때마다 장만 열리면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국무총리 두분, 국회의장 두분, 외교관들, 문 대사님도 많이 도와주셨다. 언론도 많이 도와줬다. 여야 할 것이 없었다. 이번 사무총장 후보 중에 국내에서 정치 문제에 휘말리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다.

여야,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다같이 힘을 합쳐 반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드는 것을 보면서, 국내에서 힘을 합치면 북핵문제 등 모든 일들이 잘 해결될 것이라고 느꼈다.

맞다. 국론이 이렇게 같은 방향으로 가면 북핵문제, 남북관계 등 여러 문제가 좋아질 것이다. 솔직히 반기문이라는 이름은 국제사회가 아직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지난 두달 사이에 한국의 국가적 브랜드가 올라간 것이다. 앞으로 더 잘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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