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12월21일(현지시각) <한겨레>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오리건주 자택에 머물고 있는 윤 전 대표를 줌(zoom)으로 워싱턴과 연결했다. 화면 갈무리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오는 20일(현지시각) 출범하는 조 바이든 새 행정부가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군축 방식의 단계적 접근법’과 ‘중국을 포함시킨 남·북·미·중 4자 회담’을 검토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정부 말기부터 도널드 트럼프 정부 초기까지 대북특별대표를 지낸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접근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관여 정책이 나와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윤 전 대표는 새해를 맞아 12월21일 <한겨레>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바이든과 그 팀은 오바마 시절의 대북 ‘전략적 인내’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이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브이아이디(CVI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북한이 완전한 핵 포기를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평가에 기반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동시 진행 △스몰딜에서 시작해 빅딜로 가는 군축 타입의 단계적 접근 △한국·중국의 역할을 키운 4자 회담 등을 제시하면서 “바이든 팀도 이런 아이디어들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윤 전 대표는 “북핵 문제는 수십년이 걸릴 장기적 프로젝트”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겹치는 향후 1년5개월 동안 할 일은 “(북·미) 양자든 (남·북·미·중) 다자든 이 같은 대화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새로운 대북 전략들이 있더라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라며 “바이든 정부가 관여를 시작할 때까지 북한이 어떤 도발도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가능한 한 빨리 북한에 ‘외교를 믿고,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합의를 다음 단계를 위한 기반으로서 인정한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고, 북한도 바이든 대통령 취임 즈음에 축하를 보내주면 좋은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북·미 양쪽에 서로를 향한 메시지를 조기에 보내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2월 29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발언하고 있다. 윌밍턴/로이터 연합뉴스
―바이든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트럼프 정부와 어떻게 다르다고 보나?
“바이든과 트럼프는 스타일과 정책 두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스타일 측면에서 바이든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토니 블링컨과 제이크 설리번을 각각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했다. 바이든은 이들을 신뢰하고 재량을 줄 것이다. 정책 측면에서 바이든은 동맹과 다자외교를 신봉한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은 트럼프 때와 어떻게 다를까?
“트럼프 같은 톱다운 방식이 아닐 것이다. 바이든은 트럼프처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으로 점프하지 않고 국무부와 프로세스에 더 의존할 것이다. 중요한 점은 바이든 팀이 대북 압박만 하는 버락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는 선택지가 못 되며, 일정 부분 관여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안다는 사실이다. 내가 블링컨(당시 국무부 부장관)과 함께 있어서 안다. 바이든 팀은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 어떻게 북한을 관여시킬 수 있을지 훨씬 더 깊이 생각할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비판해왔는데.
“바이든 팀은 트럼프가 한 게 전부 다 틀리진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트럼프가 약간의 문을 열었고,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들에 유용한 부분들이 있다고 인정한다. 우리는 북한과 김정은, 그리고 김정은 팀에 대해 더 알게 됐다. 그런 지식을 잘 활용해 새로운 관여 정책이 나와야 한다.”
―새로운 관여 정책은 어떤 것인가?
“‘전략적 인내 시즌2’가 되면 안 되고 더 현실적인 평가에 기반해야 한다. 즉 시브이아이디(CVID: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바이든 팀도 이를 안다.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 비핵화에 상응하는 평화체제 조처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논의가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북한이 당장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군축 타입의 대화를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들도 나온다. 군축 방식이란, 북한을 핵국가로 인정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핵·미사일 시험 동결로 시작해서 핵물질 시설 제한 등 단계적으로, 작은 합의(스몰 딜)를 해서 더 큰 합의로 가자는 의미다. 또한 중국이나 한국에 훨씬 더 큰 역할을 줘서 (남·북·미·중) 4자 회담 같은 다자외교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바이든 팀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담이 실제 가능하다고 보나?
“그렇다. 북핵 문제를 미국 혼자서는 해결 못 한다. 미국은 중국을 참여시키면 북한 문제에서 더 큰 채찍과 당근을 갖게 된다. 중국도 북한 문제에서 더 큰 역할을 맡고 싶어 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병행을 강조하는데,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북한이 중국의 참여를 원하진 않겠지만, 미국은 못 해도 중국은 북한에 ‘이게 최선’이라며 설득할 수 있다.”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는 북핵 협상에 이란 핵합의를 모델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란 핵합의는 제한된 기간이 있고 더 큰 합의로 교체되기 전까지의 중간합의다.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 북한과 이란은 상황이 꽤 다르지만, 다자 틀을 강조하고, 단계적으로 진행하며, 더 큰 합의로 가는 입구라는 점에서 이란 핵합의는 북핵 협상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미 정부는 북한 관련해 어떻게 해야 하나?
“가능한 한 빨리 북한에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를 믿고 더 한 발짝 나갈 것이고, 트럼프·김정은의 싱가포르 합의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으로서 인정한다’고 말해야 한다. 바이든이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런 메시지를 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북한도 바이든 취임에 즈음해 축하해준다면 바이든에게 매우 좋은 신호가 될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가 올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싶어 할까?
“당장은 김정은을 만나는 걸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진실한 진전이 있다면 만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자.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원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안다. 이게 1~2년이 아니라 수십년 걸릴 문제라는 걸 바이든 팀도 안다.”
―바이든 정부는 이제 시작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1년5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앞으로 1년5개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양자든 다자든, 그 안에서 이슈들을 논의해서 작고 단계적인 진전을 이뤄내는, 남·북·미·중이 수용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셋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이 기간에 스몰 딜은 가능할 것이다. 즉, 비핵화와 동시에 평화체제에 대해서도 진전이 이뤄져야 한다. 종전선언도 그 선택지다. 대북 인도적 지원도 정치 의제와 분리해 개시돼야 한다.”
―바이든 정부가 손 놓고 있으면 북한이 도발할 걸로 보나?
“북한은 지금 경제와 코로나19 등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 바이든 팀이 어떤 관여 정책인지를 보여줄 때까지 기다릴 거라고 본다. 북한이 1년을 기다리진 않겠지만 바이든 취임 뒤 몇달은 기다려야 한다. 어떠한 도발도 필연적으로 바이든 정부 내에서의 토론을 관여에서 압박 기조로 돌려버릴 것이다.”
―한국이 할 일은 무엇인가?
“북한에 모든 채널을 열어놓고 ‘기다려야 한다, 어떤 도발도 하지 마라’고 말해야 한다. 미국에도 ‘북한이 기다리고 있으니 조기에 대북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한국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에 대해 미 조야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의회 청문회도 열겠다고 하는데.
“이 문제는 한국의 정치 이슈이지, 미국에서는 큰 이슈가 아니다. 미 의회 청문회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 열린다. 청문회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한국에 있는 일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미국을 끌어들이고 싶어 하겠지만 미국은 이 문제에 관여할 열의가 없다. 이 문제가 한-미 관계에 독이 될 것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노’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과 별개로, 인권 문제가 북-미 대화에 어려움으로 작용할까?
“그렇다. 대북 관여에 반대하는 공화당이 북한 인권 문제를 들고나올 것이다. 바이든도 인권을 믿지만 실용적이다. 인권 문제를 첫번째로 내세우면 북한이 대화하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유엔과 같은 다자기구가 주도하게 하는 등, 이 문제가 미국과 북한 사이의 문제가 되지 않게 하면서 안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