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주 주도 세인트폴의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대가 10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을 쓰러뜨린 뒤 발로 밟고 있다. 세인트폴/AP 연합뉴스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을 계기로 전세계로 번진 인종차별 반대 목소리가 서구 제국주의 시대 인물들의 기념물 철거 요구 등 ‘역사 청산’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서구 역사 기념물 철거 운동은 1950년대 이후 아프리카 등 옛 식민지에서 널리 진행됐으나, 이번 움직임은 ‘제국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유럽과 미국에서 번지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15세기의 신대륙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부터 20세기 인도 식민통치와 관련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까지 다양한 인물들의 동상 철거 요구가 미국과 유럽에서 터져나오고 있다고 <로이터> <에이피>(AP) 통신 등이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대표적인 ‘표적’으로 꼽힌 5명의 면면은 이 운동의 포괄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시기적으로 ‘서구 제국주의 유물’ 1호로 지목되는 이는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다. 1492년 첫 탐험에 나서 이른바 ‘신대륙’ 최초 발견자로 기억되는 콜럼버스는 유럽인들의 미국 원주민 학살을 촉발한 인물이라는 비판도 받아왔다. 미국 보스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공원’에 있던 그의 동상이 지난 10일 철거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마이애미 시내에 세워진 그의 동상도 붉은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했다.
17세기 영국 노예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은 서아프리카인 10만명을 미 대륙과 카리브해 섬나라에 팔아넘긴 주역으로 지목되며 영국에서 집중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영국 서부 항구도시 브리스틀에 있는 그의 동상은 지난 7일 시위대에 의해 철거돼 바다에 던져졌다.
미국 남북전쟁 시절 노예제도 존속을 주장한 남부동맹(아메리카연합국)의 제퍼슨 데이비스 동상도 지난 10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철거된 데 이어 13일에는 켄터키주 의회 건물에서도 철거됐다.
또 지난 9일 벨기에 항구도시 안트베르펜에서는 1865년부터 44년 동안 벨기에를 통치한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이 크게 훼손된 직후 철거됐다. 그는 1885년 아프리카 콩고에 ‘콩고 자유국’(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을 건설하고 현지인 수백만명을 살해했다는 비판을 받는 인물이다.
1941~45년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인종차별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1943년 인도 벵골의 대기근이 처칠의 쌀 수탈 정책 탓이라는 주장 등이 제기되면서 체코 프라하와 영국 런던에서 그의 동상이 최근 잇따라 훼손됐다.
이런 동상 철거 운동에 대해 폭력적인 역사 지우기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처칠 동상을 목표로 삼은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우리는 과거를 편집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토니 애벗 오스트레일리아 전 총리는 “과거 영웅들의 동상 철거 요구는 최악의 문화적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하지만 1776년 미국의 독립 선언 직후 혁명 세력이 영국의 조지 3세 동상을 철거한 것을 비롯해 소련의 철권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동상 파괴 등에 대해서는 역사 파괴라는 비판을 찾기 어렵다.
2015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의 입안자로 지목되는 세실 로즈의 동상 철거 운동을 이끈 라마바니 마하파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공공장소에 동상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역사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런 동상은 박물관에서 적절한 역사 배경 서술과 함께 전시되는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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