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뉴욕 맨해튼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들이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뜻을 담은 ‘무릎꿇기’를 하고 있다. 미국의 항의 시위는 지난주부터 폭력성이 확연히 줄고 평화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뉴욕/AP 연합뉴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 나는 방금 주 방위군에 대해 워싱턴 디시(DC)에서 철수 절차를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군 철수 명령을 내렸다. 수도 워싱턴 인근에 집결해 있던 연방군이 철수하기로 한 데 이어, 예비군 성격의 주 방위군마저 철수시키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시작된 이래, 지속적으로 군 동원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지난달 27일 “약탈이 시작되면 발포가 시작된다”고 트위트를 올리고, 지난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인 보호를 위해 모든 연방·지역 자산과 민간인, 군대를 동원할 것”이라고 압박했던 트럼프는 왜 뜻을 접은 것일까? 실제로 연방군이 투입됐던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사태 때와 이번 상황은 무엇이 달랐을까?
■ 1992년 폭동 때와 다른 시위 양태
1992년 4월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그 1년 전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해 기소됐던 경찰관 4명이 예상과 달리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시작됐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중심으로 항의 시위가 발생했고, 분노가 커져 폭력·약탈 양상으로 발전했다. 폭력 시위를 막아야 할 경찰이 일부 지역에 대한 방어에 손을 놓으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수십 명이 사망하고, 경찰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H.W. 부시는 반란법(폭동진압법)을 근거로 연방군 4천여명을 투입했고, 그 뒤에야 시위가 잦아들었다. 최종적으로 당시 사태로 50여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다쳤다.
이번 플로이드 추모 시위는 다르다. 시위 초반 일부 폭력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체포된 시민이 1만여명에 이르지만, 무차별적인 총격전이나 대규모 약탈 같은 명백한 폭동으로 흐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시위대 스스로 냉정을 되찾고 지난주 후반부터 평화 시위로 전환됐다.
1992년 4월29일 미 로스엔젤레스 시내 건물들이 불에 타고 있다. 흑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관들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시위가 발생했고 곧 폭동으로 번졌다. 50여명 이상 사망하고 수천명이 다쳤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반란법을 발동해 연방군을 투입했다. AP 연합뉴스
■ 주지사 요청 없는 연방군 투입 ‘전례’ 없어
미국에서 국내 사태에 연방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반란법을 발동해야 한다. 주지사가 대통령에게 연방군 투입을 요청(반란법 251조)해야 하지만, 급박한 경우 주지사의 요청 없이도 발동(252조)할 수 있다. 하지만 주지사 요청 없이 발동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1968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사망으로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폭동이 발생했을 때도 스피로 애그뉴 주지사의 요청으로 연방군이 투입됐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때 역시, 피트 윌슨 주지사가 부시 대통령에게 연방 군사 지원을 요청한 뒤 군 투입이 이뤄졌다.
1992년 이후 어느 주지사도 대통령에게 연방군 투입을 요청한 적이 없다. 2014년 퍼거슨에서 비무장 흑인 청년이 백인 경찰관의 총격으로 사망해 벌어진 소요사태 때나, 2015년 흑인 프레디 그레이 사망으로 인한 볼티모어 폭동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위 과정에서 폭력과 약탈 행위가 이뤄졌지만 주지사들은 군 투입을 요청하지 않았고,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주지사들과 화상회의를 열어 시위대를 “쓰레기”라고 비난하며, 주지사들에게 주 방위군을 더욱 동원하라고 몰아붙인 데도 이런 이유가 깔려 있다. 하지만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 등은 연방군 동원 요청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EPA 연합뉴스
■ 군 수뇌부 ‘군 투입해도 민간 지원 역할’이라 생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창의장 등에게 군 1만명을 동원하라고 요구했으나, 에스퍼 장관과 밀리 합참의장이 이를 반대했다고 <시엔엔>(CNN)이 고위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군 수뇌부들은 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군 문제로 비화되며, 시위대 내 폭력적 요소도 크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미군 안보 전문 매체 <저스트 시큐리티> 보도를 보면, 미군은 반란법이 발동돼 민간 작전에 투입되더라도 군사 규정에 의해 민간의 법 집행을 지원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이를 대신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군이 민간 영역에 끼어드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트럼프 ‘충성파’로 알려진 에스퍼 국방장관은 3일 국방부 기자회견을 통해 “법 집행에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위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내란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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