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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암호 못 풀겠다’ 보고하자 외교부가 답하기를…

등록 2016-07-01 19:28수정 2016-07-04 10:32

[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9) 외교전문과 암호
외교전문은 비밀등급이 엄격하게 매겨져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일반에 공개된다. 보존기한인 30년이 지나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는 외교전문 자료들(사진1).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외교전문은 비밀등급이 엄격하게 매겨져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일반에 공개된다. 보존기한인 30년이 지나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는 외교전문 자료들(사진1).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외교부 본부와 해외공관이 공식적인 지시와 보고를 주고받을 때는 전보의 일종인 ‘외교전문’을 사용한다. 외교부를 제외한 일반 행정부처가 ‘공문’을 사용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민간에서도 전화가 보급되기 전에는 긴급한 연락을 전보에 의존했지만 팩스와 인터넷,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 전보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어졌다. 통신업체인 케이티(kt)에서 축하카드나 위로카드를 보내주는 전보 서비스를 하고 있고 인터넷 우체국에 축하카드 배달 서비스가 있지만, 더는 전보라는 용어는 쓰지 않는다. 시대가 이렇게 변했는데도 외교 업무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전문이 주된 연락수단이다.

외교전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면 생산한 지 30년이 지나서 일반에게 공개된 외교문서를 살펴보면 된다. 올해엔 1985년에 작성된 문서들이 공개됐는데, 그중에서 큰 관심을 끈 것이 당시 하버드대학에 연수중이던 ‘반기문 참사관’의 이름이 등장하는 전문이었다(▶사진1). 발신은 주미대사이고 수신은 장관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장관은 외교부 장관을 뜻한다. 해외에서 보내는 모든 전문은 현지의 대사가 본부의 외교부 장관에게 보내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1985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하버드대학 연수생으로 있을 당시, 미국에 머물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동향을 국내에 보고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교전문. 이 전문을 보낸 주미대사관에는 똑같은 내용의 전문이 ‘발신전문’ 형태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사진2·맨 오른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1985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하버드대학 연수생으로 있을 당시, 미국에 머물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동향을 국내에 보고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교전문. 이 전문을 보낸 주미대사관에는 똑같은 내용의 전문이 ‘발신전문’ 형태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사진2·맨 오른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전보요금 아끼려 독특한 용어 등장

장관이라는 글자 옆에 괄호로 표시된 ‘미북’은 이 전문의 원본 수신처가 미주국의 북미과라는 의미다. 전문의 맨 아래쪽 점선 밑에는 전문이 배포된 곳이 표시되어 있는데, 맨 앞의 미주국이 원본 배포처이고 차관실부터 보안사까지 6곳은 사본 배포처를 나타낸다. 오른쪽 위에는 ‘착신전보’라고 쓰여 있고 ‘원본’이라는 사각형의 도장이 찍혀 있다. 이 전문은 본부에서 출력된 7부 가운데 북미과에 보관되어 있던 원본 문서라는 의미다. 이 전문을 보낸 주미대사관에는 똑같은 내용의 전문이 ▶사진2와 같은 ‘발신전보’의 형태로 보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사진1의 오른쪽 아래에 ‘외신 2과 통제관’이라는 글자가 있고, ▶사진2의 같은 위치에는 ‘외신과’라는 네모 칸 속에 접수자의 서명이 보인다. 요즈음은 전문 시스템이 완전히 전산화되었기 때문에 각 부서에 설치된 단말기에서 직원들이 직접 전문을 송수신하고 인쇄도 가능하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문의 송수신은 외신과가 전담했다. 각 부서에서 전문을 기안해서 결재를 마치면 그다음에는 외신과로 들고 가서 발송을 부탁했다. 착신전문을 수령할 때도 각 담당 부서가 외신과로 직원을 보내서 전문 꾸러미가 들어 있는 두툼한 봉투를 받아 왔다.

발신전문은 흰색의 얇고 반투명한 종이로 통일되어 있었고, 착신전문은 복사지와 같은 재질인데 비밀 등급에 따라 색깔이 다른 종이를 사용했다. 평문은 흰색, 대외비는 주황색, 3급비밀은 푸른색으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반 공문이나 참고자료가 함께 섞여 있는 두꺼운 문서철 속에서도 비밀전문은 금방 눈에 띄었다. 외교전문은 보통 종이에 인쇄된 일반 문서들과는 무게감이 다르다는 사실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고 업무 처리나 비밀 관리에도 편리한 점이 많았다. 전문을 포함하여 모든 문서가 프린터에 들어 있는 흰색의 복사용지에 똑같이 인쇄되어 나오는 요즈음에는 그러한 장점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전화가 없던 시절에 전보를 보낼 때의 고민은 글자 수를 줄이는 문제였다. 버스요금이 40원이던 1977년 당시 보통전보는 10자에 200원, 지급전보는 10자에 400원이었는데, 현재 가치로 보통전보는 6500원, 지급전보는 1만3000원이나 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하숙하고 있는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니 빨리 집으로 내려오라는 전보를 칠 때는 ‘조부위독급귀가’라는 식으로 줄인 말을 만들어서 보냈다. 시골의 어머니가 서울에 사는 딸을 보러 올라간다는 뜻으로 보낸 ‘모친상경’이란 전보 내용이 전신국의 실수로 ‘모친사경’으로 잘못 전달되어 서울의 자식들이 부랴부랴 시골로 내려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외교부-공관 연락에 ‘외교전문’ 사용
90년대까지 송수신은 외신과가 전담
착신전문, 비밀등급 따라 종이색 달라
전보요금 아끼려 글자수 줄이기 고민
일반문서는 봉인해 항공화물로 발송

컴퓨터가 암호 전환·해독 처리하지만
예전엔 손으로 일일이 암호화 작업
초대 정부, 암호 작성에 사전 활용
외교부 외 청와대 등 주요부처 배포
전문 설득력있게 써야 효과 극대화

전보요금을 걱정하기는 외교부도 마찬가지였다. 초창기에는 상업 전신국을 통해서 외교전문을 보냈기 때문에 전신요금이 큰 부담이었고 전용회선을 빌려서 사용하기 시작한 후에도 요금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발신전문은 되도록 짧게 기안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외교전문에만 사용되는 독특한 용어들이 생겨났다. ▶사진1의 전문 3항에서 ‘동 서한은 접수되는 대로 파편 송부예정’이라는 것은 앞에 언급된 편지를 파우치(외교행낭) 편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다. 파우치란 본부와 해외공관이 외교문서의 수발에 사용하는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자루를 말하는데, 급하지 않은 일반문서나 분량이 많아서 전문으로 보내기 어려운 자료를 넣고 봉인한 후에 매주 항공화물로 발송한다. ‘차파편 송부 위계’라는 생경한 표현도 있는데 이것은 ‘다음 주에 나가는 파우치 편으로 보낼 계획’이라는 뜻이다.

길고 복잡한 내용을 최대한 짧게 줄이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 빠지지 않도록 전문을 기안하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상당한 경험이 필요하다. 나도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상사들이 기가 막히게 군더더기 말을 걷어내고 분량을 줄이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 시스템이 전산화되고 나서는 이러한 부담이 없어졌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전문 내용을 자세하게 쓸 수 있게 되자 자연히 전문의 분량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끝까지 내용을 다 읽지 않아도 한눈에 요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문의 첫머리에 핵심요지를 먼저 써넣는 식으로 전문 형태도 바뀌었다.

프란체스카, 암호 전문 작성법 가르쳐

외교전문 시스템이 전산화되어 편리해졌다고는 해도, 외부 인터넷망과는 분리된 별도의 단말기에서 특수한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제전화나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번거롭고 시간도 더 걸린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외교전문을 통한 소통을 원칙으로 하는 건 보안 유지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에 개인 메일로 업무에 관한 연락을 주고받았다가 지금 크게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지금은 전문 내용을 암호로 변환시키고 이것을 다시 풀어서 보통의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은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처리되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암호 작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1995년 작고)의 회고록에 따르면, 1949년 6월 주홍콩 영사로 발령받고 부임 선서를 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별실에서 김용식 영사에게 영어사전을 한 권 주면서 암호 전문 작성법을 직접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암호작성법이 절대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유의하라고 단단히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 대통령이 외교관의 해외 출장비까지 따질 정도로 외교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었고 프란체스카 여사도 외교 업무를 상당히 거들던 시절이어서 ‘경무대 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암호 작성에 영어사전을 사용했다는 것은 미리 약속된 규칙에 따라 일일이 숫자와 사전의 글자를 대조해서 암호를 조립하고 해독했다는 이야기인데, 대통령 부인이 직접 암호 작성법을 가르쳐주었다니 초창기의 한국 외교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거의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던 것 같다.

김용식 전 장관의 회고록에는 암호 전문을 해독하지 못해서 애를 먹은 이야기도 나온다. 홍콩에서 영사로 근무하던 중에 본부로부터 암호 전문을 받았는데 몇 시간이나 씨름을 해도 해독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Re Your Cable Unable Decode Please Advise’(수신 전문을 해독할 수 없으니 가르쳐달라)고 영어로 전문을 만들어서 본부로 보냈더니 본부에서는 ‘Please Disregard’(그냥 무시하라)라고 아주 간단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김 영사는 수신 전문을 해독할 수 없다고 본부에 문의하는 내용 자체는 비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암호가 아닌 평문으로 문의 전문을 발송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본부가 암호 전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전문을 평문으로 회신해 주었다면 한국의 암호 전문 작성법이 외부에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앞서 발송된 암호 전문과 나중에 보낸 평문 전문을 서로 대조해보면 암호작성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본부에서는 그냥 무시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본부에 전문의 내용을 가르쳐달라고 평문으로 문의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 해독에 실패했던 암호 전문의 내용은 한국 정부가 공군의 재건을 위해 홍콩에 거주중인 미 공군 장성 셰놀트를 초청하려고 하니 그를 만나서 초청에 응하도록 하라는 지시였다고 한다.

▶사진1의 맨 아래쪽 전문 배포처를 보면, 외교부 이외에도 청와대와 안기부(국정원), 심지어 보안사에도 사본이 배포된 것을 알 수 있다. 경제 분야에 관한 전문일 경우에는 관련되는 경제부처에도 사본이 배포된다. 이처럼 외교전문은 그 내용이 청와대, 총리실, 관계부처에 실시간으로 폭넓게 공유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이 큰 위력을 발휘한 사례가 2003년의 김포~하네다 셔틀 항공편 취항이었다.

1990년대 말 한-일 간의 인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일본 나리타공항의 수용 능력 한계 때문에 필요한 만큼 항공편을 늘릴 수 없었다. 김포~나리타 항공편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렸고 주일 한국 대사관은 좌석 예약을 부탁하는 청탁 전화에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포~하네다 셔틀 노선을 개설하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는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는 2001년 3월에 개항한 인천공항을 하루속히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김포공항은 국내선 전용으로 용도를 제한하고 대신 인천공항에 힘을 모아주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포~하네다 셔틀 이야기가 나오게 되니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가 이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포~하네다 셔틀 이끌어낸 외교전문

그러나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도심에서 가깝고 편리한 김포~하네다 노선에 훨씬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김포~하네다 셔틀로 인적 교류가 촉진되면 한-일 관계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주일 한국대사관도 일본 외무성과 의기투합해서 셔틀 노선 개설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김포~하네다 노선이 양국 국민들에게 가져다주는 이익과 한-일 관계에 가져오는 효과를 외교전문으로 설득력 있게 정리해서 본부로 보냈다. 원본 수신처는 외교부였지만 사본 수신처에 청와대와 총리실은 물론, 건설교통부와 그밖에 관계되는 모든 부처를 포함시켰다. 하나라도 많은 정부부처가 그 전문을 읽어보고 김포~하네다 셔틀편 개설에 찬동하도록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청와대가 대통령 일본 방문의 성과사업의 하나로 김포-하네다 셔틀편 개설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교통부는 인천 공항 허브화 구상 때문에 계속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공급자보다는 이용자 중심의 시각에서 설득력 있게 정리된 논리가 이미 외교전문을 통해서 널리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는 찬성론이 대세였다. 결국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양국 정부가 김포-하네다 셔틀편 취항에 합의했고 그해 11월부터 운항이 시작되었다. 외교 분야에서는 국민들의 실제 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주는 업무를 경험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데, 지금도 김포-하네다 노선을 이용할 때면 이때의 추억을 즐겁게 떠올려보곤 한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외교부에서 30년 근무한 뒤 정년보다 8년 일찍 퇴직해서 실천적 문필가를 꿈꾸며 살고 있다. 일본, 중국, 예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했고 동북아시아국장을 지냈다. 저서로 <봉인을 떼려 하는가: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본 일본의 헌법개정 문제>와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가 있다. 거창한 외교론이 아니라, 외교라는 일을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려는 생각에 연재를 시작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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