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조세영의 외교클럽
(9) 외교전문과 암호
(9) 외교전문과 암호
외교전문은 비밀등급이 엄격하게 매겨져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야 일반에 공개된다. 보존기한인 30년이 지나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는 외교전문 자료들(사진1).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1985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 하버드대학 연수생으로 있을 당시, 미국에 머물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동향을 국내에 보고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는 외교전문. 이 전문을 보낸 주미대사관에는 똑같은 내용의 전문이 ‘발신전문’ 형태로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사진2·맨 오른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90년대까지 송수신은 외신과가 전담
착신전문, 비밀등급 따라 종이색 달라
전보요금 아끼려 글자수 줄이기 고민
일반문서는 봉인해 항공화물로 발송 컴퓨터가 암호 전환·해독 처리하지만
예전엔 손으로 일일이 암호화 작업
초대 정부, 암호 작성에 사전 활용
외교부 외 청와대 등 주요부처 배포
전문 설득력있게 써야 효과 극대화 전보요금을 걱정하기는 외교부도 마찬가지였다. 초창기에는 상업 전신국을 통해서 외교전문을 보냈기 때문에 전신요금이 큰 부담이었고 전용회선을 빌려서 사용하기 시작한 후에도 요금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발신전문은 되도록 짧게 기안하는 것이 원칙이었고 외교전문에만 사용되는 독특한 용어들이 생겨났다. ▶사진1의 전문 3항에서 ‘동 서한은 접수되는 대로 파편 송부예정’이라는 것은 앞에 언급된 편지를 파우치(외교행낭) 편으로 보내겠다는 의미다. 파우치란 본부와 해외공관이 외교문서의 수발에 사용하는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자루를 말하는데, 급하지 않은 일반문서나 분량이 많아서 전문으로 보내기 어려운 자료를 넣고 봉인한 후에 매주 항공화물로 발송한다. ‘차파편 송부 위계’라는 생경한 표현도 있는데 이것은 ‘다음 주에 나가는 파우치 편으로 보낼 계획’이라는 뜻이다. 길고 복잡한 내용을 최대한 짧게 줄이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 빠지지 않도록 전문을 기안하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상당한 경험이 필요하다. 나도 결재를 받는 과정에서 상사들이 기가 막히게 군더더기 말을 걷어내고 분량을 줄이는 것을 보면서 감탄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문 시스템이 전산화되고 나서는 이러한 부담이 없어졌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전문 내용을 자세하게 쓸 수 있게 되자 자연히 전문의 분량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끝까지 내용을 다 읽지 않아도 한눈에 요점을 파악할 수 있도록 전문의 첫머리에 핵심요지를 먼저 써넣는 식으로 전문 형태도 바뀌었다. 프란체스카, 암호 전문 작성법 가르쳐 외교전문 시스템이 전산화되어 편리해졌다고는 해도, 외부 인터넷망과는 분리된 별도의 단말기에서 특수한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때문에 국제전화나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번거롭고 시간도 더 걸린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외교전문을 통한 소통을 원칙으로 하는 건 보안 유지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국무장관 시절에 개인 메일로 업무에 관한 연락을 주고받았다가 지금 크게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다. 지금은 전문 내용을 암호로 변환시키고 이것을 다시 풀어서 보통의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은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처리되지만, 예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암호 작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1995년 작고)의 회고록에 따르면, 1949년 6월 주홍콩 영사로 발령받고 부임 선서를 하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의 집무실인 경무대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별실에서 김용식 영사에게 영어사전을 한 권 주면서 암호 전문 작성법을 직접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암호작성법이 절대로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유의하라고 단단히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이 대통령이 외교관의 해외 출장비까지 따질 정도로 외교 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었고 프란체스카 여사도 외교 업무를 상당히 거들던 시절이어서 ‘경무대 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암호 작성에 영어사전을 사용했다는 것은 미리 약속된 규칙에 따라 일일이 숫자와 사전의 글자를 대조해서 암호를 조립하고 해독했다는 이야기인데, 대통령 부인이 직접 암호 작성법을 가르쳐주었다니 초창기의 한국 외교는 오늘날과 비교하면 거의 가내수공업 수준이었던 것 같다. 김용식 전 장관의 회고록에는 암호 전문을 해독하지 못해서 애를 먹은 이야기도 나온다. 홍콩에서 영사로 근무하던 중에 본부로부터 암호 전문을 받았는데 몇 시간이나 씨름을 해도 해독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Re Your Cable Unable Decode Please Advise’(수신 전문을 해독할 수 없으니 가르쳐달라)고 영어로 전문을 만들어서 본부로 보냈더니 본부에서는 ‘Please Disregard’(그냥 무시하라)라고 아주 간단한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김 영사는 수신 전문을 해독할 수 없다고 본부에 문의하는 내용 자체는 비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암호가 아닌 평문으로 문의 전문을 발송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본부가 암호 전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전문을 평문으로 회신해 주었다면 한국의 암호 전문 작성법이 외부에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앞서 발송된 암호 전문과 나중에 보낸 평문 전문을 서로 대조해보면 암호작성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 때문에 본부에서는 그냥 무시하라고 했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본부에 전문의 내용을 가르쳐달라고 평문으로 문의한 것 자체가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때 해독에 실패했던 암호 전문의 내용은 한국 정부가 공군의 재건을 위해 홍콩에 거주중인 미 공군 장성 셰놀트를 초청하려고 하니 그를 만나서 초청에 응하도록 하라는 지시였다고 한다. ▶사진1의 맨 아래쪽 전문 배포처를 보면, 외교부 이외에도 청와대와 안기부(국정원), 심지어 보안사에도 사본이 배포된 것을 알 수 있다. 경제 분야에 관한 전문일 경우에는 관련되는 경제부처에도 사본이 배포된다. 이처럼 외교전문은 그 내용이 청와대, 총리실, 관계부처에 실시간으로 폭넓게 공유되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이 큰 위력을 발휘한 사례가 2003년의 김포~하네다 셔틀 항공편 취항이었다. 1990년대 말 한-일 간의 인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일본 나리타공항의 수용 능력 한계 때문에 필요한 만큼 항공편을 늘릴 수 없었다. 김포~나리타 항공편은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렸고 주일 한국 대사관은 좌석 예약을 부탁하는 청탁 전화에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포~하네다 셔틀 노선을 개설하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했는데 정작 한국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는 2001년 3월에 개항한 인천공항을 하루속히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김포공항은 국내선 전용으로 용도를 제한하고 대신 인천공항에 힘을 모아주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김포~하네다 셔틀 이야기가 나오게 되니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가 이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포~하네다 셔틀 이끌어낸 외교전문 그러나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도심에서 가깝고 편리한 김포~하네다 노선에 훨씬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김포~하네다 셔틀로 인적 교류가 촉진되면 한-일 관계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에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주일 한국대사관도 일본 외무성과 의기투합해서 셔틀 노선 개설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김포~하네다 노선이 양국 국민들에게 가져다주는 이익과 한-일 관계에 가져오는 효과를 외교전문으로 설득력 있게 정리해서 본부로 보냈다. 원본 수신처는 외교부였지만 사본 수신처에 청와대와 총리실은 물론, 건설교통부와 그밖에 관계되는 모든 부처를 포함시켰다. 하나라도 많은 정부부처가 그 전문을 읽어보고 김포~하네다 셔틀편 개설에 찬동하도록 만들기 위한 의도였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청와대가 대통령 일본 방문의 성과사업의 하나로 김포-하네다 셔틀편 개설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건설교통부는 인천 공항 허브화 구상 때문에 계속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공급자보다는 이용자 중심의 시각에서 설득력 있게 정리된 논리가 이미 외교전문을 통해서 널리 확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부 내부에서는 찬성론이 대세였다. 결국 2003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서 양국 정부가 김포-하네다 셔틀편 취항에 합의했고 그해 11월부터 운항이 시작되었다. 외교 분야에서는 국민들의 실제 생활에 구체적인 영향을 주는 업무를 경험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데, 지금도 김포-하네다 노선을 이용할 때면 이때의 추억을 즐겁게 떠올려보곤 한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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