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대하다 지난 16일 피살당한 조 콕스 노동당 하원의원의 아버지 고든 레드비터(가운데)와 어머니 진 레드비터(가운데 오른쪽)가 18일 웨스트요크셔주 버스톨의 범행 현장 근처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을 바라보며 서로 끌어안고 있다. 버스톨/AFP 연합뉴스
영국에서 지난 16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대에 앞장서 온 노동당 조 콕스 하원의원이 피살된 이후 사흘간 중단됐던 찬·반 캠페인이 재개됐다. 영국 사회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은 극우 인사의 증오범죄를 기점으로 유럽연합(EU) 잔류 여론이 탈퇴 여론을 다시 근소하게 앞서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나흘 앞둔 19일 “(23일) 유럽연합 투표를 뒤집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콕스 의원 피살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 탈퇴를 선택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10여년간 (영국을) 쇠약하게 하는 불확실성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면, 브렉시트를 주장해 온 보수당의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은 이날 <텔레그래프>에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남으로써 진보의 지표가 될 수 있다”며 “민주주의에 투표하라”고 촉구했다.
영국 유력 언론들도 찬반 입장을 공개 표명하며 적극적으로 여론전에 가담했다. 진보 성향 일간 <가디언>의 일요판 ‘업저버’와 보수 성향 <데일리메일>의 일요판 ‘메일 온 선데이’는 18일 유럽연합 잔류 지지를 선언했다.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와 <더타임스>는 이미 공개적으로 잔류를 지지한 바 있다. 그러나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일간 <텔레그래프>와 함께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하고 나서, 영국 사회의 분열된 여론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브렉시트 찬·반 진영이 국가적인 슬픔 앞에서 잠시 자제했던 팽팽한 신경전을 재개한 가운데, 콕스 의원 피살 전 우세 추세를 보였던 탈퇴 의견이 줄어들고 잔류 여론이 다시 역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서베이션이 지난 17~18일 영국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45%로, 탈퇴 지지 의견 42%보다 3%포인트 앞섰다. 콕스 의원 사망 전날인 15일 서베이션의 여론조사에서는 탈퇴 지지가 45%로, 잔류 42%보다 3%포인트 높게 나타난 바 있다.
또다른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설문조사 결과도 엇비슷하다. 유고브가 지난 16~17일 실시해 1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럽연합 잔류가 44%로, 탈퇴 43%보다 1%포인트 우세했다. 유고브가 지난 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탈퇴가 46%로, 잔류 39%보다 7%포인트 앞섰다.
16일을 기점으로 유럽연합 잔류 여론이 탈퇴 여론을 역전한 현상과 관련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유고브는 “유럽연합 잔류 지지 상승이 콕스 의원의 사망과 연관이 있는지는 의문이며, 그보다는 브렉시트가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영국 주간 <선데이 미러>는 18일 “콕스 의원 사망 이후 유권자들의 표심이 유럽연합 잔류 쪽으로 기울었으며, 이번 사건이 국민투표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콕스 의원 살해범인 토머스 메어(51)는 18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법정에 처음으로 출석했다. 그는 판사의 신원확인 요구를 받은 뒤 “내 이름은 배신자들에게 죽음을, 영국에 자유를”이라고 대답했고, 결국 변호인이 그의 이름을 확인했다고 <가디언> 등이 전했다. 메어는 범행 이후 1마일 정도 도주했다가 경찰과 맞딱드렸을 때도 “(범인이) 나다”라며, 자신을 “정치 활동가”라고 소개한 뒤 체포된 것으로 전해졌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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