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독일, 이탈리아가 챗지피티(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기반 기술에 대한 규제에 반대하면서 유럽연합이 세계 최초로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 규제법 입법이 표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챗지피티 개발사인 오픈에이아이의 로고. 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세계 최초로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규제법 최종안 마련 작업이 프랑스·독일·이탈리아의 막판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 이전까지 법 제정 절차를 마치지 못하는 등 입법이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법 세부안 마련을 위한 회원국 간 협상이 챗지피티(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기반 기술인 ‘기반(토대) 모델’(대규모 언어모델)을 규제할 것인지를 둘러싼 이견으로 막판 진통을 겪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온라인 등에서 수집한 많은 자료를 스스로 분석해 문장·이미지·영상 등의 자료를 만들어낸다. 유럽연합이 마련한 초안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유럽연합 법률에 위반되는 자료를 만들어내지 않도록, 훈련 과정 등에서 필요한 조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의회도 지난 6월 자체 협상안을 통과시키면서 이런 내용을 그대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은 생성형 인공지능 규제 방안이 무난하게 확정될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의 주요국들인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부가 기반 모델 같은 기초 기술 문제는 업계의 자율 규제에 맡기는 안을 제시하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0월30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경제 장관회의에서 프랑스가 독일과 이탈리아에 이런 제안을 해 동의를 얻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을 이끄는 세나라의 태도 변화는 기반 기술을 규제하면, 프랑스의 ‘미스트랄 에이’, 독일의 ‘알레프 알파’ 등과 같은 유럽 기업들이 미국의 인공지능 업계에 밀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정치 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의 기술 정책 분석가 닉 라이너스는 “미국 기업들이 클라우드컴퓨팅, 소셜미디어 등과 같은 분야에 이어 인공지능 생태계도 지배하는 걸 막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등에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의 개척자로 꼽히는 영국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 제프리 힌턴 등은 지난주 공개 서한을 내어 업계의 자율 규제는 “기반 모델의 안전을 보장할 기준에 크게 미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티에리 브르통 유럽연합 내부시장 담당 집행위원도 지난달 말 챗지피티 개발 회사인 오픈에이아이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 해고 및 복귀 사태를 거론하며 인공지능 기업들이 공익이 아니라 기업의 이익을 지키려는 게 분명해졌다며 규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유럽연합은 지난 2019년 집행위원회가 인공지능 규제법안을 처음 제안한 이후 오픈에이아이의 챗지피티 등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자, 이에 대한 규제도 법안에 추가한 바 있다.
그밖에 정부 기관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공공 장소에서 개인의 신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허용하는 조항에 대해서도 인권 운동가들이 정부의 감시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꼴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공지능의 위험 방지 운동을 펴는 비정부 기관인 ‘생명의 미래 연구소’의 정책 책임자 마크 브래클은 “6~7주 전이라면 핵심 쟁점들에서 타협이 이뤄지는 걸 보게 될 거라고 말했겠지만 이제는 이런 타협이 더욱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6일까지 최종 협상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내년 6월 6~9일 실시되는 유럽의회 선거 이후 의회가 새 집행위원회 지도부를 선출할 때까지 법안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고 에이피 통신은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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