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왼쪽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대안’을 지향하는 브릭스(BRICS)가 설립 14년 만에 중대 전기를 맞게 됐다.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르헨티나 등 6개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24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폐막된 브릭스 정상회의 마지막날 기자회견에서 브릭스는 아르헨티나·이집트·에티오피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 6개국을 새로운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결정을 “역사적”이라고 평했고, 화상으로 마지막 기자회견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새 가입국들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6개국은 오는 2024년 1월1일부터 정식 회원국 자격을 얻게 된다. 2009년 출범한 브릭스가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는 것은 2010년 남아공 가입 이후 처음이다. 앞서 블룸버그는 사우디·이집트, 로이터 통신은 아르헨티나·이란·아랍에미리트도 새 가입국이 될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이번 결정으로 브릭스의 성격과 앞으로 활동 방향에 큰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번 회의를 앞두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회원국 확대를 강하게 주장해왔다. 실제 회의를 앞두고 22개국이 공식 가입 신청을 한 것으로 확인된다. 가입을 신청한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튀르키예 등 대부분 국제 정치에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른바 미들파워(중견) 국가들이다. 이들은 지난해 2월 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 주도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등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왔다.
이런 속내를 드러내듯 시 주석은 이번 정상회의 기간 동안 “많은 개발도상국이 가입 신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푸틴 대통령도 “브릭스의 전략적 방향성은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세계 다수파의 희망과 일치한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과 ‘장기 대결’에 대비하기 위해 브릭스를 미국 주도의 ‘일극 질서’를 대체하는 반서방 연대체로 진화시키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반면, 미국 등과 직접 맞설 뜻이 없는 인도·브라질 등은 협력 확대를 ‘경제적 차원’으로 한정하기를 주장하며, 회원국을 늘리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남아공에 도착한 지난 22일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주요 7개국(G7), 주요 20개국(G20) 혹은 미국에 대한 대항마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조직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회원국 확대에 까다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은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호주)와 함께 쿼드에 참여 중인 인도였다. 로이터 통신은 브릭스 정상들이 23일에 11시간의 회의를 통해서 회원국 확대 원칙에 공감했으나, 최종적인 가입 틀에 대해선 인도의 이견으로 최종 합의 도출에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인도는 회원이 되려면 경제 제재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자격을 요구해, 이란·베네수엘라의 배제를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회원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등의 기준도 제시했다.
이번 회의에선 그밖에 미국 달러를 대체하는 결제 체제의 다변화 문제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보였다. 남아공 당국자들은 브릭스 공동성명에 회원국 상호 결제에 자국 통화 사용 조항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남아공의 브릭스 대표 아닐 수클랄은 이날 “정상들이 자국 통화의 사용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를 했다”며 “자국 통화에 관련된 결정에 대한 선언 조항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달러를 대체하는 결제 체제는 인도와 브라질도 적극적으로 추진한 사안이다.
이 문제에 특히 적극적인 브라질은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수출을 중국 위안화로 보장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페르난두 아다드 브라질 재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달러 부족을 겪는 아르헨티나로 수출하는 브라질 수출업자들의 대금 지급을 브라질 중앙은행이 위안화로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위안화로 보증되는 일정 규모의 신용자금을 조성해 수출입업자들의 결제와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질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과 교역에서 일부를 위안-헤알화로 결제하고 있다.
22~24일 열린 이번 정상회의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 정상급 인사들이 참석하는 등 총 69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브릭스 5개 회원국은 전세계 경제의 31.5%, 인구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브릭스는 2014년 자체 은행인 신개발은행(NDB)을 만들어 개발도상국의 사회기반시설과 기후 관련 프로젝트에 사용될 500억달러(66조원)의 자본을 조성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 은행에는 방글라데시,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도 참여해 2015년에만 약 300억달러 이상을 대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