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용병 집단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반란을 일으킨 가운데, 24일(현지시각) 러시아 군인들이 로스토프나도누 거리를 지키고 있다. AP 연합뉴스
서방에서 기대했던 반푸틴 봉기의 시작인가? 아니면, 불만에 찬 용병 지도자가 일으킨 찻잔 속의 태풍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 전력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용병 집단 바그너(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24일 무장 반란을 주도해,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 체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이번 반란이 어떻게 끝나도 푸틴 체제에는 매우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무장반란의 규모와 현 상황
무장반란에 몇 명의 병력이 가담하고, 와그너 그룹 전체가 프리고진의 명령에 복종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프리고진은 24일 이후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에서 “2만5천명의 우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2만5천명은 와그너 그룹의 평소 정규 용병 규모이다. 만약 2만5천명이 무장 반란에 가담했다면, 와그너 그룹 전체가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와그너 그룹 전체 병력이 이번 무장 반란에 가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용병들의 특성상 러시아 정부에 맞서는 무장 반란에 가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프리고진이 이끄는 무장 반란 세력은 상당한 위력을 과시할 규모인 것으로 보인다. 프리고진은 러시아 남부의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본부를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고, 이는 사실로 확인됐다.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기지와 본부는 러시아 남부를 관할하는 큰 규모의 군사시설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병참 기지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비상 연설에서 이 도시의 군사 및 민간 기능이 “본질적으로 봉쇄됐다”고 인정했다. 프리고진도 소셜미디어에 올린 동영상 연설에서 “우리가 로스토프 시를 막고 있고, 모스크바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와그너 그룹은 또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500㎞에 불과한 보로네슈시도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알렉산데르 구세프 보로네시 주지사는 이날 텔레그램에서 이 지역에서 군 장비와 차량 대열이 지나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소문이라고 말해, 이 같은 주장을 부인했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와그너 그룹이 보로네시를 점령했다기 보다는 그 주변에 병력을 두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즉, 현재로선 무장반란에 가담한 프리고진의 주력 세력이 모스크바에서 약 1200㎞ 떨어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머물면서, 모스크바에 진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라 판단된다. 프리고진의 세력이 실제로 모스크바까지 진격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반란에 동조 세력이 규합될 경우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영국 국방부는 프리고진의 와그너 그룹 대원들이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기지에 있는 것과 관련해 “(러시아 정규군) 일부는 와그너를 묵인하며 소극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향후 몇 시간 동안 러시아군, 특히 러시아 국가방위대의 충성심이 이 위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열쇠가 될 것”이라며 이번 위기는 “최근 러시아가 맞게 된 가장 중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 용병집단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로이터 연합뉴스
바흐무트 전투 뒤 전략전술 곳곳 충돌
직접적인 계기는 와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과 러시아군 지도부 사이의 갈등이다.
와그너 그룹은 지난해 8월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바흐무트 전투에서 큰 희생을 치렀다. 프리고진은 10개월간의 소모전 끝에 지난 5월말 바흐무트를 점령한 뒤 와그너그룹 용병 2만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투가 한창이던 지난해 말부터 와그너 그룹이 큰 희생을 치르며 전투를 했는데도 러시아 국방부와 군 지도부가 탄약과 무기 등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다며 공개적인 불만과 비판을 제기해왔다. 구체적으로 표적을 삼은 이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 등 현 러시아군 지도부였다. 프리고진은 이들이 후방에서 안락한 생활을 하면서 관료주의와 무사안일한 판단으로 전선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고 직설적인 비판을 가했다.
프리고진의 이런 비판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전략·전술의 차이와 전쟁 주도권을 다툼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 지도부는 지난해 가을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동부 하르키우주와 헤르손주의 점령지를 빼앗긴 전열을 정비하면서 방어 위주의 소모전을 펼치는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면서 바흐무트 공략을 사실상 와그너 그룹에 맡겼다. 그러자 이 전투로 우크라이나 전력을 탕진시키면서 러시아 정규군 전력은 보전시키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와그너 그룹을 총알받이로 썼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프리고진은 와그너 그룹에 충분한 보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군 지도부에 도전하는 언행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푸틴 대통령에게는 충성심을 표해왔다. 하지만, 푸틴은 프리고진이 제기하는 군 지도부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바흐무트 전투가 끝난 뒤 자신의 병사 2만명이 전사했다는 것을 밝히면서, 푸틴까지 겨냥한 비판을 시작했다. 지난 13일 공개된 인터뷰에선 “특별군사작전은 비무장화를 위해 수행됐다. 비무장화와 관련해, 특별작전 초기에는 (우크라이나에) 500대의 탱크가 있었다면 지금은 5000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능숙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이 2만명이었다면, 지금은 40만명이다. 어떻게 비무장화됐나? 사실은 그 반대가 됐다”고 말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려고 이른바 ‘특별군사작전’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 결과를 가져왔다는 의미였다. 푸틴이 주창한 특별군사작전에 대한 도전이라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런 공개적인 도전은 바흐무트 전투 뒤 ‘토사구팽’이 되는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쇼이구 장관은 전투 이후 와그너 그룹을 포함한 모든 비정규군에 국방부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도록 지시했다. 와그너 그룹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조처를 내린 것이다.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 국방부의 방침을 지지한다고 밝혀, 프리고진이 결국 푸틴의 신임을 잃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결국 프리고진은 23일 밤 푸틴을 겨냥한 직접적인 비판을 하면서 ‘레드 라인’을 넘었다. 그는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에서 “왜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됐나. 전쟁은 수많은 ‘개자식’들이 자기 홍보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며 푸틴이 말하는 특별군사작전의 원인을 원천 부정했다. 또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와 헤르손 방면에서 퇴각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고진은 “우리는 피범벅이 됐고, 아무도 예비군을 불러오지 않는다”며 “그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가장 깊은 속임수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프리고진이 이런 메시지를 밝힌 것은 토사구팽 당하느니, 먼저 선수를 치겠다는 명분과 의지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몇시간 뒤 무장반란을 밝히면서는 러시아군이 미사일로 자신의 부대를 공격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그의 부대가 정말로 공격당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프리고진 반란의 의미와 파장
프리고진의 반란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든 이번 반란 사태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취약해지는 러시아 체제와 지도부의 균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고 지도자 푸틴이 최근까지 가장 신임하던 인물이 몇달 전부터 공공연히 러시아군 지도부를 비난하고, 급기야는 무장 반란은 선언했기 때문이다.
와그너 그룹은 러시아가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지에 무력 개입을 할 때나 중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바흐무트 전투 등에서 궂은 일을 도맡았다. 이런 전력이 러시아 당국에 도전하는 무장 반란을 일으킨 것은 향후 전쟁을 수행하는데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서방에선 이 전쟁이 장기화하면 러시아 내부에서 반푸틴 봉기나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푸틴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지지가 여전히 80% 내외를 유지해 ‘푸틴 체제의 균열’은 현실적 전망이 아니라는 반론이 우세했다. 푸틴이 가장 신뢰하고, 러시아의 대외정책에서 중요한 도구였던 프리고진은 반푸틴 봉기를 일으킬 가장 마지막 인물로 평가됐다. 그런 프리고진이 갑자기 무장반란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에 몰고 온 불확실성이 얼마나 큰 것인지 보여준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