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제28 독립 기계화 여단에 속한 한 병사가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주변의 한 전선에서 40㎜ 수류탄발사기를 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시작된 지 일주일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이렇다할 군사적 성과를 내진 못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랫동안 준비했던 ‘대반격’이 시작됐음을 확인한 지 한주가 지났지만 러시아의 ‘방어선 돌파’와 같은 군사적 성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준비된 방어선에서 정예 병력을 투입하고 있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16일 영국 <가디언>에 “우리 부대들이 남쪽으로 공격하는 모든 구역에서 실질적으로 전술적 승리를 거두고 있다”며 “그들은 서서히 현재 각 방면에서 2㎞까지 전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치열한 전투의 중심지가 지난주 아조우해에 면한 도네츠크주 주요 도시인 마리우폴로 가는 도로 쪽으로 바뀌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천천히 밀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말랴르 차관은 이틀 전인 14일 텔레그램에 올린 글에선 우크라이나군이 바흐무트 주변에서 200~500m, 자포리자의 남동 방면에서 300~350m 전진했다며 “군은 극도로 치열한 전투에 직면해 적의 우월한 제공권 및 포격 속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다 해도 우크라이나가 최전선에서 부분적인 전진을 이뤄냈을 뿐 러시아군의 방어선을 뚫어내는 등 성과를 얻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러시아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3일 러시아의 전쟁 담당 기자들에게 “그들(우크라이나군)의 손실은 재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며 “우리 쪽 손실이 우크라이나군의 손실보다 10배나 적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도 푸틴 대통령의 이 발언을 인용하며 러시아 공군과 포병이 전진하는 우크라이나군을 공격해 이들이 반격 공세 초기에 탈환한 남부 몇몇 마을을 초토화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이 그동안 공급한 독일의 ‘주력 전차’인 레오파르트2나 미국 브래들리 장갑차를 다수 상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 타임스>는 17일엔 러시아가 ‘바흐무트 공방전’에서 보여준 인명 손실을 무릅쓰는 전투를 지양하며, 충분한 훈련을 받고 제대로 장비를 갖춘 정예 정규병력을 투입해 전략·전술에 적합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평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이번 대반격에 대비해 설치한 방어선이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9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이번 대반격에 맞서 매우 촘촘한 참호·지뢰지대·용치(대전차 장애물)를 설치했다면서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땅에서 이뤄진 가장 광범위한 방어 작업”이라고 평했다. 신문은 미국 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의 참호가 견고하게 구축돼 우크라이나가 이런 엄청난 도전을 극복할 수 있을지 판단하기 이르다”며 “러시아의 방공망 역시 (우크라이나의) 드론 송신을 방해하고 격추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위력적이어서, 이들이 전진하면서 러시아의 공중 지원에 더 많이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도 17일 “우크라이나군의 반전 공세에 대해 러시아군이 공격용 헬리콥터를 대량 투입하고 통신 방해 등을 통해 저항하고 있다. 남부 전선에선 중층적인 방위선을 깔아 적의 전진을 방어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동안 지원했던 주력 전차 등 중화기들이 대반격 초기에 소모되는 양상이 드러나자, 서방에선 우크라이나에 앞으로도 지속적인 무기 지원이 가능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폴리티코>가 16일 보도했다. 서방 군 고위층들은 “러시아군은 전반적으로 잘 준비된 방어 입지에서 좋은 방어를 하고 있다”며 “이런 ‘방어 위주 작전’은 우크라이나군에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고 인정했다고 영국 <비비시>(BBC)가 보도했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군은 피해를 보면서 계속 밀고 있고 전반적으로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