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워싱턴/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백악관이 한-미 핵협의그룹(NCG) 구성을 담은 ‘워싱턴 선언’에 대해 “사실상의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날 한-미 정상회담 뒤 대통령실의 설명을 부인한 것으로, 대통령실이 과장된 홍보를 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선임국장은 27일(현지시각) 한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설명했는데 이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사실상의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케이건 국장은 ‘그러면 한-미의 시각이 다른가’라는 질문에는 “우리는 핵공유를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한국 대통령실이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관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정의하기로는 그건 분명히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핵공유를 어떻게 정의하냐’는 추가 질문엔 “그것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해, 유럽처럼 미국의 전술핵 배치가 핵공유의 기초 조건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미국 태평양함대사령부가 26일 공개한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의 괌 기항 모습. 태평양함대사령부는 한-미 정상의 워싱턴선언이 40여년 만의 전략핵잠수함 한반도 전개 방침을 밝힌 이날 사진을 공개했다. 출처: 태평양함대사령부 트위터
케이건 국장은 워싱턴 선언의 핵심은 북한의 도전에 대응해 한-미가 긴밀히 협의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확장억제 공약의 신뢰도를 높이기로 한 데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핵협의그룹은 정기적 협의 기구로, 핵과 전략 기획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중대한 비상사태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해 한국에 추가적 이해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핵협의그룹은 핵 위협 등에 대한 정보 공유를 강화하고 미국의 비상 계획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틀로서 핵공유와는 무관함을 다시 한번 분명히 설명한 셈이다.
이는 전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워싱턴 선언에 대해 “국민들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라고 평가한 것과 사뭇 다른 설명이라 할 수 있다. 백악관이 핵공유뿐 아니라 대통령실이 사용한 ‘사실상의 핵공유’라는 표현까지 부인한 것은 우선 그것이 워싱턴 선언의 내용 및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비슷한 핵공유 체제를 새로 만들어 비확산 공약을 거스르는 것으로 비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케이건 국장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할 수 없다는 것은 워싱턴 선언을 준비하면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포인트”였다고도 했다. 미국은 오히려 핵공유를 추진하지 않는 데 무게를 뒀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워싱턴 선언은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준수한다는 점도 강조하면서 한국 안에서 높아지던 독자적 핵개발 주장에도 쐐기를 박았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워싱턴 선언은 ‘사실상의 핵공유’와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한겨레>와 서면 인터뷰에서 워싱턴 선언으로 “양쪽이 정치적 이익을 거뒀지만,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을 억제하고 한국 대중을 안심시키는 실질적 안보 이익을 제공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제니 타운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도 “한국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중국의 부상과 미-중 대결 격화가 (한국 내의) 핵무장론을 부추기는 것이라면 (한국의 핵무장론을 봉인한) 워싱턴 선언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 선언이 정보 공유 확대 등을 약속해 의미가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핵공유나 그에 준하는 내용이 없어 나토의 핵기획그룹(NPG)에는 못 미친다는 데 대해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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