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5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경마 행사에 참여해 손을 흔들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오펙 플러스’가 미국의 뜻에 반해 거듭 감산 결정을 내리면서, 이들의 ‘독자 외교’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수니파 맹주국인 사우디는 ‘앙숙’처럼 지내온 시아파 국가들인 이란·시리아와도 관계를 개선하는 등 중동의 전통적 질서를 뒤흔드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사우디가 5월19일 자국에서 개최하는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을 초청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이 몇주 내로 아사드 대통령에게 전할 공식 초청장을 가지고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방문한다면서, 사우디가 시리아와 관계 개선을 위한 논의를 진행한 지 1년이 넘었다고 덧붙였다. 사우디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달 23일 “사우디가 시리아와 영사 서비스를 재개하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랍연맹은 2011년 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 때 아사드 정권이 유혈 진압에 나서자 시리아의 회원국 자격을 정지한 바 있다. 이후 미국 등과 사우디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은 시아파의 일종인 알라위파가 이끄는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반군을 지원해왔다. 이에 맞서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중동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 등은 아사드 정권의 뒤를 받쳐왔다.
이에 앞서 사우디는 지난달 10일 중국의 중재로 ‘앙숙’인 이란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나아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을 초청하는 등 적극적인 대이란 외교를 펼치고 있다. 모하마드 모흐베르 이란 수석 부통령은 3일 기자회견에서 “사우디 국왕이 라이시 대통령을 리야드에 초청했고, 대통령이 이 초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사우디가 최근 선보이는 일련의 움직임은 오랫동안 이어진 중동 내 대립 구도를 흩어버리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 역시 2일 사우디의 최근 외교 움직임을 소개하며 이는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후 70여년 동안 미국과 단단한 ‘에너지 동맹’을 형성해온 사우디가 현재 자신을 둘러싼 안보 상황에 불확실성을 느끼며 새 외교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에 집중하기 위해 2021년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단행하는 등 중동에서 발을 빼고 있다. 또 2010년대 들어 본격화된 ‘셰일 혁명’과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탈탄소 움직임’으로 인해 중동의 지정학적 중요성 역시 이전보다 줄어든 상태다. 여기에 민주주의를 내세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가치 외교’가 절대 왕정 국가인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불편하게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시리아의 아랍연맹 복귀 가능성이 활발히 논의되는 것을 두고 “중동에서 진행 중인 광범위한 지정학적 재편의 신호”라고 했다.
2일 감산 역시 미국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결정으로 3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최근 1년간 하루 최대 상승 폭인 6%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로 인해 물가 잡기에 혈안이 된 바이든 행정부의 부담이 커지게 됐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하루 200만배럴 감산 결정이 나왔을 땐 “대가가 있을 것”(바이든 대통령)이라고 분노했지만, 이번엔 다소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현시점의 감산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사우디는 여전히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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