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식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하는 국제사회의 ‘평화 중재자’가 될 수 있을까.
국가주석직 3연임을 확정하며 세번째 임기를 공식 시작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연속 회담에 나서는 등 본격적인 외교 행보에 나설 전망이다. 당에 이어 행정부까지 ‘시 1인 체제’를 완성한 뒤 바깥으로 눈을 돌려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와는 구분되는 중국 나름의 질서 구축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를 긴장시킨 시 주석의 깜짝 외교 행보가 전해진 것은 13일이었다. <로이터> 통신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시 주석이 이르면 다음주 러시아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도 잠시 뒤 ‘이 사안에 대해 잘 아는 인사’를 인용해 시 주석이 다음주 푸틴 대통령과 회담한 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화상 회담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장기화된 우크라이나 전쟁의 평화협상을 중재하는 데 중국이 적극 나선 모양새다.
지난해 2월 말 전쟁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를 적극 지원해온 서구와 달리 중국은 한발 떨어져 관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을 때도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하면 안 된다”는 원칙에만 합의했을 뿐 평화협상을 위해 적극 나서는 모습은 아니었다.
중국이 의미 있는 한발을 내디딘 것은 전쟁 1주년이 되는 지난달 24일이었다. 중국은 이날 ‘우크라이나 위기의 정치적 해결에 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문건을 통해 △주권 존중 △전쟁 중단 △평화협상 개시 △일방적 제재 중단 등 12가지 항목을 제안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반응을 내놨다. 중국 외교부는 고무된 듯 “계속 건설적인 역할을 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앞선 10일에도 ‘평화 중재자’로서 깜짝 실력을 뽐냈다. 시 주석의 국가주석 3연임이 확정된 이날 중동의 두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2016년 이후 7년 동안 단절된 외교 관계를 복원한다는 합의안을 중재해냈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악수를 나누는 무사아드 빈 무함마드 아이반 사우디 국가안보보좌관과 알리 샴하니 이란 국가안보회의 의장의 가운데 서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왕 위원은 합의 이후 “우리는 모든 국가의 바람에 따라 세계의 분쟁 문제에서 건설적인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주요국으로서 책임감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너선 풀턴 박사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이 합의는 중국이 역내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라며 “중동에서 미국의 우위에 도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연속된 외교 행보가 비상한 주목을 끄는 것은 미국 등이 해법을 찾지 못한 세계의 주요 갈등을 푸는 데 중국이 ‘인상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방치된 결과 예멘 내전이 9년째로 접어드는 등 중동 정세가 크게 불안해졌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5월 일방 파기한 이란 핵협정(JCPOA)으로 엉망이 됐고, 미국과 사우디의 ‘에너지 동맹’ 역시 2018년 10월 저명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와 지난해 원유 증산을 둘러싼 갈등으로 서먹해진 상태다. 미국의 외교가 작동을 멈춘 곳에서 중국이 큰 성과를 낸 것이다.
시 주석에게 더 큰 도전은 우크라이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등은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군사 원조를 쏟아부으며 러시아의 굴복을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핵을 가진 대국’인 러시아가 회복할 수 없는 국익의 손실을 감수해가며 패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로 인해 전쟁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시 주석이 합리적 타협안을 도출해내면 ‘평화 중재자’로서 중국의 위상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게 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중국의 최근 외교 공세는 군사력을 사용해 다른 나라의 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미국식 국제관계 모델을 상업적 관계를 통해 대체할 수 있다는 시 주석과 중국공산당의 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시 주석도 12일 전인대 폐막식 연설에서 “세계와 공동발전을 촉진할 것”이라며 △다자주의 실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 개혁 △개방형 세계 경제 건설 촉진 등을 주장했다. 미국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미국 중심의 ‘1강 체제’를 뛰어넘어 중국이 세계 질서 형성에 큰 역할을 하는 ‘다극체제’를 만들기 위한 외교 활동에 힘을 기울일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묘한 반응을 보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리시 수낵 영국 총리와 정상회담 뒤 연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과 곧 만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중국 새 지도부가 정비되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이 미래 어느 시점에 대화를 나눌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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