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EU) 회원국 시절 마련된 환경·노동·보조금 등 각종 규제 기준을 한꺼번에 완화·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유럽연합이 전면적인 ‘무역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영국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는 4일(현지시각) 유럽연합 지도자들이 이런 경고를 담은 서한을 영국에 보낸 걸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영국이 규제를 완화하면 영국의 2020년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이후 두쪽의 경제 협력 관계를 규정한 ‘무역과 협력 협정’(TCA)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2019년 연말 공정 경쟁을 위해 동등한 수준의 규제를 유지하는 걸 전제로 유럽연합 단일 시장에 수출되는 영국산 상품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유럽연합의 서한은 ‘무역과 협력 협정’에 따라 출범한 ‘유럽연합-영국 의회 포럼’의 나탈리 루아조 공동 의장과 유럽 의회의 다비트 매캘리스터 외교관계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작성됐다. 루아조 공동 의장 등은 영국 노동당 소속 스텔라 크리시 하원의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내년 1월1일 이후 유럽 단일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통제 채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은 영국에 대한 보복으로 ‘일방적인 재조정 조처’를 공언했다. 또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유럽연합의 상하원격인 유럽의회, 유럽연합이사회와 비공개 회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이 회의에서 영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처가 채택될 게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리시 수낵 총리가 올 연말까지 유럽연합 회원국 시절 제정된 법률 수천 건을 폐지하는 걸 뼈대로 한 ‘보유중인 유럽연합 법률(폐지와 개혁) 법안’ 통과를 서두르기 때문이다. 수낵 정부는 지난해 9월말 이 법안을 마련했고, 최근 의회가 본격 심의에 들어갔다. 수낵 정부는 이 법안을 ‘브렉시트 완수’의 상징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 법안이 최선의 규제 환경을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 대상 법률이 정확하게 몇개인지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영국 정부는 대상 법률이 2400개 정도라고 밝히고 있으나, 국가 문서보관소가 1400개를 추가 확인했다. 이 때문에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경우, 대체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내년 이후 규제 사각지대가 곳곳에서 발생할 여지가 크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