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반대하는 이들이 2022년 9월 야당인 노동당의 전당대회장 앞에서 대응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리버풀/EPA 연합뉴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브렉시트)한 지 만 3년이 지나도록 ‘탈퇴 옹호자’들이 내세우던 경제 개선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서 지역 균형 발전이 도리어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럽연합에 대한 반발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탈퇴 찬성률이 가장 높았던 50개 선거구 가운데 절대다수인 90%는 광역 런던 등 수도권과 경제·복지 격차가 오히려 커지는 등 더 큰 타격을 본 것으로 분석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31일 각 지역의 소득·생산성·범죄·공공지출 등 12가지 사회 지표를 바탕으로 650개 선거구별 상황을 자체 평가한 ‘지역 균형 발전 지수’ 결과를 제시하며, 영국의 균형 발전이 브렉시트 이전인 2019년에 비해 도리어 후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2016년 6월23일 유럽연합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탈퇴 찬성 51.9%, 반대 48.1%로 나타나자, 2020년 1월 말 유럽연합을 공식 탈퇴했다. 탈퇴 찬성률이 높았던 지역은 잉글랜드의 웨스트미들랜즈, 이스트미들랜즈, 북동부 잉글랜드 등이었다. 북서부 잉글랜드 랭커셔주 블랙풀, 북동부 잉글랜드 요크주의 헐 등은 탈퇴 찬성률이 65% 이상을 기록했다. 반면에 스코틀랜드(찬성 38%, 반대 62%), 광역 런던(찬성 40%, 반대 59.9%), 북아일랜드(찬성 44%, 반대 55.8%)는 탈퇴 반대가 우세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떠난 이후 경제·복지 상황은 탈퇴 지지자가 많았던 지역에서 특히 더 나빠졌다. 찬성 투표자가 더 많았던 선거구 중 런던, 잉글랜드 남동부 등 부유한 지역 평균치와의 격차가 줄어든 지역은 12%에 그쳤다. 상황이 나아진 지역도 대부분 광역 런던에 속하는 선거구들이었고, 나머지 지역 중에는 ‘이스트오브잉글랜드’ 일부 선거구, 북아일랜드 일부 선거구 정도만 상황이 나아졌다. 탈퇴 우세 선거구의 86%는 2019년에도 런던 등에 비해 경제 상황이 나빴는데, 4년 사이에 그 격차는 더 벌어졌다.
탈퇴 반대가 우세했던 지역 중 경제·복지 상황이 개선된 선거구는 29%였으나, 대부분은 광역 런던에 속한 곳들이었다. 나머지 지역 중에서는 이스트오브잉글랜드 6개 선거구와 북아일랜드 6개 선거구,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선거구 각각 1곳만 상황이 좋아졌다. 지난 4년 사이에도 유럽연합 탈퇴 이전과 별 차이 없이 경제적 혜택이 런던 주민들에게만 돌아간 셈이다.
경제·복지 지표 가운데 격차가 커진 지표로는 소득과 생산성 향상이 꼽혔다. 런던 등과의 ‘소득’ 격차가 4년 사이 더 커지거나 줄지 않은 지역은 탈퇴 찬성 선거구의 92%와 탈퇴 반대 선거구의 72%에 달했다. ‘생산성’ 격차가 커지거나 줄지 않은 지역은 찬성 선거구의 95%, 반대 선거구의 71%였다. 격차가 많이 줄어든 부문은 외국인 투자와 교통 투자 정도였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탈퇴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늘고 있다. 30일 발표된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의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45%는 유럽연합 탈퇴의 결과가 기대보다 더 나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는 2021년 6월의 28%보다 17%포인트나 높아진 것이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변화하는 유럽 프로젝트’ 담당 연구원 소피 스타워스는 “2016년에 (경제·복지에서) 뒤처져 있다고 느끼던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보고 있다”며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자신의 삶에 경제적 충격을 가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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