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과, 무지개 깃발의 색을 팬톤의 색상 코드로 대체한 깃발. ‘스톱 호모포비아’ 누리집
성소수자들은 카타르 월드컵을 즐길 수 있을까? 사상 처음으로 이슬람권 국가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에선 성소수자들이 새하얀 깃발을 내세워 눈길을 끌고 있다.
프랑스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스톱 호모포비아’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프라이드 플래그)의 카타르 월드컵 버전을 10일(현지시각) 공개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이 모여 있는 알록달록한 무지개 깃발과 달리 이들이 공개한 깃발은 온통 흰색이다. 대신 그 자리를 글로벌 색채 기업 ‘팬톤’의 색상 코드가 차지한 모습이다. 197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게이 프리덤 데이' 퍼레이드에서 처음 등장한 무지개 깃발은 이후 널리 쓰이면서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긍심 등을 상징하게 됐다.
카타르 월드컵 버전 무지개 깃발이 흰색이 된 이유는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가 동성애 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최대 사형까지 처할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카타르 당국은 공식적으로는 “모든 팬들이 차별 없이 환영받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카타르를 찾을 예정인 성소수자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무지개 깃발을 자유롭게 흔들 수 있을지도 성소수자인 축구 팬들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스톱 호모포비아는 “월드컵 개막이 다가오는 가운데 일부 국가에선 성소수자 권리가 퇴보하고 있다”며 “팬톤과 협력해 무지개 깃발의 색깔을 팬톤 색상코드로 바꿨다. 성소수자들은 당국(카타르)의 발견을 피해 자긍심을 가지고 깃발을 흔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흰색 무지개 깃발’을 “저항을 위한 묘책”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4월 <에이피>(AP) 통신은 카타르 월드컵 보안·안전 운영위원회를 이끄는 압둘아지즈 압둘라 알 안사리가 “카타르는 성소수자 커플을 환영할 것”이라면서도 “만약 무지개 깃발을 든다면 그들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깃발을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무지개 깃발 때문에 공격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지만 불안을 더했다. 6월에는 무지개 깃발을 흔드는 것만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퍼지기도 했는데, <로이터> 통신은 카타르가 공식적으로는 그런 처벌을 예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성소수자들은 카타르 당국이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9월22일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성소수자 축구 팬 단체인 ‘쓰리 라이언 프라이드’는 성소수자들은 “불안함을 느낀다”며 카타르 당국은 월드컵 기간에 성소수자가 안전하다고 명확하게 안심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엔엔>(CNN)은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카타르 월드컵이 성소수자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고 11일 보도했다. 런던 의회의 부의장인 앤드류 보프는 카타르가 성소수자들이 여행하기에 위험한 나라라며 “정부는 그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