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핵, 생화학 보호 부대’ 지휘관 이고르 키릴로프 중장이 24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외국 대사관 무관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더러운 폭탄’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방사성 물질이 든 재래식 폭탄(이른바 ‘더러운 폭탄’) 제조 시설로 의심된다며 우크라이나 기관 2곳을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이 기관들에 전문가 방문을 요청했고, 국제원자력기구는 이 기관들을 조만간 사찰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 생화학 보호 부대’ 지휘관 이고르 키릴로프 중장은 24일(현지시각) 외국 대사관 소속 무관 등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을 열어 “우리가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두 기관이 이른바 ‘더러운 폭탄’을 만들라는 구체적인 지시 아래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통신은 앞서 이 폭탄을 만드는 곳으로 의심되는 기관이 우크라이나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에 있는 ‘동부 광물농축 공장’과 수도 키이우에 있는 ‘핵연구소’라고 전했다. 이 가운데 ‘핵연구소’는 우크라이나 국립 과학아카데미 소속으로, 옛 소련 시절인 1944년 ‘물리학연구소’로 출발한 곳이다. 이 연구소는 핵물리학, 원자력 에너지, 고체 물리학 등을 연구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더러운 폭탄’은 재래식 폭약을 사용하는 폭탄에 방사성 물질을 집어넣어, 방사능 오염을 유발한다. 핵폭탄은 핵분열 등을 이용해 폭발력을 크게 높이는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을 유발하는 반면, ‘더러운 폭탄’은 폭발력 강화와 무관하게 방사능 물질을 퍼뜨리려는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다.
러시아가 2곳의 기관을 지목한 이후 국제원자력기구는 2곳에 대한 사찰을 조만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자력기구는 이날 누리집에 공개한 성명에서 “러시아가 원자력 시설 두 곳의 활동 의혹에 관해 밝힌 성명을 인지하고 있다”며 “라파엘 그로스 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두 기관이 원자력기구의 안전보호 조처 대상이며 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이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정부가 두 기관의 활동을 검증하기 위해 원자력기구 전문가의 방문을 요청하는 내용의 서면 요청서를 보내왔다고 덧붙였다. 다만, 두 기관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로스 사무총장은 “원자력기구가 한 달 전에 두 곳 중 한 곳을 조사했고 우크라이나가 밝힌 (핵 물질) 보호조처가 제대로 이행되는 걸 확인한 바 있다”며 “공개하지 않은 핵 관련 활동이나 물질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원자력기구는 며칠 안에 두 기관을 방문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방문의 목적은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핵 관련 활동이나 물질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러시아가 ‘더러운 폭탄’을 만들고 있다고 거짓 주장을 펴고 있는 것과 달리 평화적인 (활동을 하는) 두 기관에 전문가들을 보내줄 것을 그로스 사무총장에게 요청했고 그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는 ‘더러운 폭탄’ 문제를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도 제기할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외교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과 안보리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키이우 정권의 ‘더러운 폭탄’ 사용을 핵 테러 행위로 간주할 것”이라며 “키이우 정권이 국제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위험한 계획을 포기하도록 서방 국가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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