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도 개도국들은 보건 예산까지 줄이는 어려움에 처했고,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도 5년 정도는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도의 임시 코로나19 환자 치료 시설. 뉴델리/AFP 연합뉴스
코로나19 대유행 2년여 동안 가난한 나라들의 절반 정도가 보건 예산까지 줄였고 앞으로도 당분간 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에 내몰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10일(현지시각) 공개한 ‘불평등 축소를 위한 헌신 지수(CRI) 2022’ 보고서에서 세계 161개국의 예산을 분석한 결과, 중·저소득국의 절반은 보건 예산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복지 예산을 줄인 개도국도 전체의 절반이었고 교육 예산까지 줄인 나라도 전체 개도국의 70%였다고 지적했다.
옥스팜이 비정부 연구 집단 ‘개발 금융 인터내셔널’(DFI)과 함께 작성한 이 보고서는 2021년에 저소득 국가들이 국가 예산의 27.5%를 외채 상환에 쓴 것으로 분석했다. 이는 교육 예산의 2배, 보건 예산의 4배, 사회 보장 예산의 12배에 달하는 것이다. 미국 등 부자나라들이 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어, 개도국의 외채 부담 또한 눈덩이처럼 불어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고서는 “금리가 1%포인트 오를 때마다 개도국들이 부자나라 채권자들에게 갚아야 하는 이자가 350억달러(약 50조원)씩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도국들이 내핍을 강요당하는 상황인데도 부자나라들은 외채 상환 요구를 지속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은 긴축을 요구하며 빈부 격차를 더욱 키우고 있다고 보고서는 비판했다.
보고서는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국가는 불평등을 줄이는 모범적 정책을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팔레스타인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사회 예산을 전체 예산의 37%에서 47%로 늘렸다. 네팔은 2019부터 2021년까지 보건 예산을 그 이전보다 절반가량 더 배정했다. 코스타리카는 소득세율 최고 세율을 10%포인트 높였고,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는 부자들에게 부유세·연대세를 새로 부과했다.
불평등 해소를 위한 헌신 지수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나라는 노르웨이였으며 이어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일본 순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불평등 해소 노력이 가장 저조한 나라로는 남수단이 꼽혔고, 라이베리아, 나이지리아, 아이티, 기니, 마다가스카르도 불평등 해소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프가니스탄, 토고, 온두라스, 예멘, 가이아나 등은 불평등 해소 노력이 후퇴한 대표 국가로 평가됐다. 이 지수는 각국의 공공 지출, 세금 구조, 노동권과 임금 등 3개 분야를 종합 분석해 나온 것이다.
보고서는 “세계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도 극도로 불평등했는데, 이제는 불평등이 더욱 심해졌다”며 “이런데도 전체 161개국 가운데 143개국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늘리지 않았고 11개 나라는 도리어 세금을 줄여줬다”고 비판했다. 옥스팜의 정책 책임자 케이티 채크러보티는 “이 지수는 전세계 정부들이 빠르게 늘고 있는 불평등을 줄이는 데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