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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충전포트 ‘C타입 전쟁’

등록 2022-10-09 09:00수정 2022-10-10 11:26

[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지구
유럽의회 ‘C타입 통일’ 법안 통과
애플 전자기기 전용 커넥터인 ‘라이트닝 케이블’로 아이폰을 충전하는 모습. DPA 연합뉴스
애플 전자기기 전용 커넥터인 ‘라이트닝 케이블’로 아이폰을 충전하는 모습. DPA 연합뉴스

유럽의회가 4일(현지시각)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 충전 포트와 커넥터를 유에스비-시(USB-C) 타입으로 통일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4년부터 애플 제품에만 쓰이던 독자적인 충전장치는 유럽에서 팔지 못하게 됐다. 애플은 2년 안에 제품 디자인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디지털 기기마다 충전장치가 달라서 C타입, B타입, 애플 타입 전선줄을 줄줄이 늘어놓고 살아야 했던 소비자들에겐 반가운 소리다. 유럽에서 ‘강제 통일’이 시행되면 다른 지역도 결국 뒤를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의회는 이번 조처가 “제품을 더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전자 폐기물을 줄이고, 소비자들의 삶을 더 쉽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의회는 충전기 타입을 통일하는 것이 2억5천만유로(3480억원)의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봤다.

 유럽연합 눈 밖에 난 ‘애플의 몽니’

시장조사 사이트 카운터포인트에 따르면, 독일에서 인기 1~3위 스마트폰이 모두 아이폰 모델이다. C타입을 사용하는 삼성 갤럭시폰은 4위와 5위다. 프랑스에서는 아이폰이 상위 4위였다. 애플의 인기가 높다지만 애플 제품을 쓰는 이들조차도 기기마다 제각각인 포트에는 불만이 많았다. ‘라이트닝’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커넥터를 고수해온 애플은 “한가지 커넥터만 의무화하는 규제는 혁신을 억압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애플도 ‘어차피 닥칠 일’임을 예견하고 있었기에, 이미 C타입을 도입한 아이폰 모델을 개발해 테스트 중이고 내년에 시장에 내놓을 예정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보도했다.

유럽의회의 법안은 당장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 애플에 충전 포트를 공급하는 인피니언 등 유럽 기업들의 주가가 올랐다. 이번 조처는 전자책 리더와 이어폰 등 여러 기기에 적용되기 때문에 삼성이나 화웨이 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로이터>는 예상했다. C타입 진영은 당연히 환영했다. 기술표준을 만드는 ‘유에스비 임플리멘터스 포럼’(USB-IF)의 제프 레이븐크래프트 회장은 <뉴욕 타임스>에 “열차는 이미 역을 떠났다”고 말했다.

지금은 충전용으로 많이 쓰이지만 애초 유에스비는 컴퓨터와 주변기기를 연결해 데이터를 전송할 목적으로 1996년 개발됐다. C타입의 시대가 시작된 것은 2017년 9월에 출시된 버전 3.2 때부터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였고 대역폭도 증가시켰다. 예전의 플러그들은 꽂는 방향이 정해져 있었지만 C타입은 위아래를 뒤집어도 상관없다. 

유에스비를 만들려고 처음 머리를 맞댄 것은 아이비엠(IBM),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엔이시(NEC·일본전기), 컴팩, 디지털이퀴프먼트(DEC), 노텔의 7개 회사였다. 컴퓨터 ‘종가’로 불리던 아이비엠은 2005년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을 포기하고 장비업체로 살아남았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도 건재하다. 일본 회사인 엔이시도 한때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피시 회사였다. 반도체로 주전공을 바꿨다가 나중에 분사시켰고 전자제품 시장에서도 십수년 새 거의 손을 뗐지만 클라우드 컴퓨팅과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으로 방향을 돌려 생존에 성공했다.

1990년대에 피시 시장의 최강자였던 컴팩은 델과의 치열한 시장 경쟁을 벌이다가 2002년 에이치피(HP)에 인수됐다. 1957년 설립된 디지털이퀴프먼트는 컴퓨터 시장의 원조 중 하나였으나 기술발전을 못 따라가 1998년 컴팩에 먹혔다.

캐나다 회사 노텔의 역사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창립된 ‘노던 전기회사’가 그 모체로, 한때는 토론토 증시에 상장된 모든 기업 평가액의 3분의 1을 이 회사가 차지했다. 하지만 아이티(IT)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내리막을 걷다가 2009년 파산했다.

이 회사들의 명운이 엇갈리는 동안 애플은 뭘 하고 있었을까. 유에스비의 전신 격인 ‘IEEE 1394’라는 것이 있었다. 고속통신과 실시간 데이터 전송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점은 똑같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애플이 주축이 돼 일본의 소니, 파나소닉 등과 협력해 개발했다. 애플은 이 표준을 쓰는 인터페이스에 ‘파이어와이어’라는 이름을 붙였더랬다. 하지만 나중에 개발된 유에스비에 밀려 시장을 빼앗겼다. 결국 유에스비로 옮겨간 애플은 몽니를 부리듯 독자적인 커넥터를 고집했으나 이마저 퇴출될 판이다.

사실 애플과 유럽 사이엔 그 말고도 갈등이 많았다. 유럽연합은 2016년 애플과 130억유로의 거액이 걸린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세금을 깎아주고 기업을 유치하는 것으로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는데, 그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것이 애플이었다. 유럽연합은 부당하게 세금을 면제해줬다면서 아일랜드가 130억유로를 환수하도록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액수가 큰 만큼이나 관심도 컸다. 투자를 받는다며 기업들 세금을 깎아줘 사실상 자국민 납세자들 돈으로 기업을 먹여 살리는 관행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내 법인세율이 이익의 1%인데 아일랜드에서 애플은 2014년 이익의 0.005%에 해당되는 세금만 냈다. 4년을 끈 이 소송에서 2020년 7월 애플이 승소했으나 유럽연합 쪽이 항소를 한 상태다.

2020년 6월 유럽연합 집행위는 거대 테크기업들의 독점을 막아야 한다며 아이폰의 ‘애플페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올 5월에 애플을 제소했다. 아이폰의 결제서비스 방식이 애플페이를 쓸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있어, 경쟁 서비스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싸움

명분은 반독점이지만 유럽 대 미국의 고질적인 경쟁 속에서 불거진 분쟁이었다. 애플페이의 최대 라이벌은 미국 서비스인 페이팔이지만 유럽에서는 덴마크의 모바일페이, 스웨덴 회사가 만든 스위시, 벨기에의 페이코닉 같은 결제서비스들이 경쟁하고 있다. 애플페이를 둘러싼 소송은 수십억유로의 벌금과 사업방식을 바꾸라는 명령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9년 스웨덴의 스트리밍 서비스회사 스포티파이는 애플이 인앱 결제에서 소비자들을 애플뮤직으로 유도하고 시장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4월 유럽연합은 스포티파이의 손을 들어주며 애플을 제소했다. 판결에 따라 애플은 연간 매출의 10%, 최대 270억유로에 이르는 벌금을 물게 될 수 있다. 당시 집행위는 제소 방침을 발표하면서 애플의 게임 정책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애플과의 싸움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브랜드라는 애플의 지난해 매출액은 3660억달러, 약 514조원에 이른다. 그중 41%를 미국에서, 24%를 유럽에서 벌었다. 유에스비 문제에서만큼은 애플에 명분이 없어 보인다. 꼬리를 문 소송과 신경전, 유럽과 애플의 싸움은 다음엔 어디로 향할까.

구정은 _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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